업계 유인책은 전문성과 가성비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절 성장 곡선을 그렸던 골프 의류와 용품 시장이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과 함께 뚜렷한 하락세를 보인다. 업계는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탈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고 있다.
◆확연히 줄어든 의류·용품 구매 수요
업계에 따르면 주요 20개 골프 의류 브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2435억원이었다. 타이틀리스트, PXG, 지포어, 제이린드버그, 사우스케이프 등 백화점 입점 브랜드 중 매출 상위 20곳을 추린 수치다. 코로나19 확산 끝 무렵이었던 2022년에 20개 브랜드 매출이 약 1조3836억원에 달했다. 엔데믹이 본격화한 2023년은 매출이 약 1조3123억원으로 꺾였고, 이후 1년 만에 6.3%가 더 줄었다.
취재 결과 형지글로벌(구 까스텔바작)의 매출은 코로나19 확산 시절인 2021년(746억원)에 전년(672억원) 대비 성장을 이뤄냈지만, 지난해는 당시에 비해 크게 하락한 407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영업 손실은 93억원에 달했다.
파리게이츠, 핑, 세인트앤드류스 등 해외 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골프 의류를 판매 중인 크리스에프앤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2021년(3759억원)과 2022년(3809억원) 매출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지난해는 3313억원으로 전년(3670억원) 대비 10% 가까이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영업 이익의 경우 121억원으로 전년(461억원) 대비 73.67%나 하락했다. 다만 크리스에프앤씨는 올해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투어 메이저대회인 크리스에프앤씨 제47회 KLPGA 챔피언십을 5월 초 개최할 예정이다.
한세엠케이는 6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 손실은 214억원으로 전년 42억원에 비해 적자 폭이 커졌다. 지포어, 왁, 잭니클라우스, 엘로드 등 골프 의류를 운영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은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5%, 영업 이익은 64%나 감소했다.
의류, 용품 시장에서는 이미 사업을 철수한 곳도 여럿 된다. 2022년 스릭슨과 혼마가 어패럴 사업을 중단한 데 이어 2023년 미즈노골프도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미즈노골프 어패럴은 2020년 가을 시즌 론칭됐지만 약 3년간 버티는 데 그쳤다. 당시 미즈노골프 어패럴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본지에 “야심차게 시작해 2022년까지만 해도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 나섰지만 그해 연말부터 내부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경영진에서 효율성을 따져 봤을 때 더 이상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 외에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메종키츠네 골프와 LF의 랜덤골프클럽이 출범 1년 만인 지난해 시장에서 철수했다. 2030세대가 골프장을 떠나면서 의류와 용품 구매 수요도 확연히 줄어들어 관련 박람회는 이전보다 썰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실제로 한 골프업체는 2022년을 끝으로 용품 박람회 개최를 중단했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한창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에 비해 용품을 찾는 수요가 확연히 줄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개최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업계 유인책은 전문성과 가성비
명랑골프를 즐기던 젊은 세대가 대거 이탈하다 보니 이제 남은 건 진성 골퍼들이다. 이들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의류와 용품의 기능성과 전문성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불황과 함께 고려되기 시작한 가성비다.
어느 정도 기능성을 갖추면서도 가격이 합리적인 대체재에 시선이 집중된다. 스포츠 레깅스로 인기를 누린 젝시믹스와 안다르가 골프 의류 라인을 선보였는데 가성비족의 호응을 얻으며 지난해 역대급 특수를 누린 것으로 전해졌다. 젝시믹스의 골프 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92% 이상 증가한 25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젝시믹스의 매출은 262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 올랐다. 역대 최고치다.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은 54% 증가한 242억 원으로 집계됐다.
안다르 역시 러닝과 골프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안다르는 지난해 매출 2368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성장했다. 영업 이익은 78% 늘어난 328억원이다. 최대 실적이다. 골프 부문에서는 필드와 일상에서 모두 활용 가능한 라인을 2배 이상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물론 기존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업체들도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 오리진 골프 의류 브랜드 까스텔바작이 사명을 ‘형지글로벌(Hyungji Global)’로 변경하고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게 일례다.
형지글로벌은 까스텔바작의 글로벌 본사였던 프랑스의 PMJC 법인을 인수해 자회사로 운영하는 등 글로벌 진출을 위한 초석을 착실하게 다져둔 상황이다. 아울러 2023년 태국 최대 유통 기업인 센트럴그룹과 손잡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를 공략하고 있으며 중국, 대만 시장에 진출해 현지 패션유통 전문기업 등과 협력을 통해 다양한 채널에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 관광객 등 골프 여행 수요가 늘고 있는 두바이에도 현지 유통사와 손잡고 제품을 공급하는 등 향후 더욱 많은 유통 채널을 활용해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간다는 방침이다.
형지글로벌 관계자는 “글로벌 패션기업으로의 본격적인 도약과 함께 그룹사의 주요 계열사로서 해외 진출을 견인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사명 변경을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국내 골프 시장의 활성화에 일조하는 한편 K-패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코오롱FnC 역시 미국 지포어 본사로부터 일본·중국 마스터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다.
한편 골프 토털 플랫폼 기업인 골프존은 업계 흐름을 다소 반하는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끈다. 최근 골프존 어패럴을 론칭하며 골프 의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내부 검토 단계에서 일부 우려가 있었으나, 경영진의 강한 의지로 추진됐다는 전언이다. 골프존 브랜드로서 처음 선보이는 의류 사업이다.
골프존 어패럴은 ▲Reasonable(화려함과 멋에 치중하지 않는 베이직하고 합리적인 아이템) ▲Timeless(유행이 아닌 오래도록 멋스러운 시즌을 타는 절제된 디자인) ▲Borderless(구력, 나이, 장소에 상관없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스타일링이 가능한 아이템)을 브랜드 핵심 가치로 더욱더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쇼핑을 추구하는 골퍼와 골프 의류 시장 소비 트렌드에 맞춘 사업 전략을 펼쳐 나갈 계획이다.
골프존은 기존 골프 의류 시장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높은 가격과 디자인 및 기능성의 한계를 인식하고 기능성을 갖춘 고품질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어패럴 사업을 시작하는 건 리스크로 여겨지지만, 그 속에서 가성비라는 전략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계속되면서, 업계가 향후 불황의 터널을 끝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