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 이나라 기자
경제부 이나라 기자

[한스경제=이나라 기자]  "빅테크 등 타 회사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고객의 호응에 따라 그것을 따라가는 상황으로, 내부에서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결제라인이 빼곡하다 보니 실행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는 데다 그 의미도 상당 부분 퇴색되는 것이 다반사다" 

거세지는 빅테크의 금융권 공세 속에 이른바 카드업계의 '혁신'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을 묻는 질문에 한 카드사 관계자가 한 말이다. 

지난해 간편지급(간편결제) 시장에서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등의 전자금융업자(핀테크) 점유율이 처음으로 절반인 50%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카드사들의 위치는 2위에서 3위로 다시 한 계단 추락했다. 

간편지급은 비밀번호나 생체정보와 같은 간편 인증 수단으로 지급이 가능한 서비스를 의미한다. 시장에서는 흔히 '간편결제'로 불리지만, 한국은행(한은)은 간편지급을 공식 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간편지급 서비스의 하루 평균 이용액은 9594억3000만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다. 카드업계는 불과 5년 전인 2019년 점유율 30% 이상을 유지했지만, 현재는 삼성페이를 비롯한 휴대폰 제조업자에도 밀려 3위로 내려앉은 상황이다. 

2년 전 금융권의 한 보고서에선 최악의 경우 카드사가 카드 발급과 결제 인프라를 제공하는 인프라 공급자로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카드사들을 향해 고객기반과 개방성, 데이터 분석 등에서 빅테크 간편결제사보다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면서, 우수한 인재 확보와 투자를 바탕으로 과감한 혁신과 디지털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이  같은 경고를 새겨듣고 혁신을 이뤄냈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다니고 있다. 때를 놓쳤다는 한 숨 섞인 이야기도 적지 않다. 

여전히 카드사들은 카드론을 비롯한 대출 수익에 의존하고 있으며,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신용판매의 수익률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카드 사들의 순이익은 해마다 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이자수익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형태의 이른바 '불황형 흑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카드업계는 빅테크 기업들과의 정책적 '기울어진 운동장'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업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여신금융업법에 적용을 받고 있어 수수료도 올리지 못하는 카드사들과 달리, 빅테크들의 경우 비슷한 결제업을 영위하면서도 전자금융업법에 따라 수수료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공정한 경쟁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정책의 공정함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나 동일업종·동일규제 만으로 카드업계가 이야기하는 '금융혁신'을 이뤄낼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카드업계는 정책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 정책상의 불평등으로 카드업계의 수익성이 주는 만큼, 투자의 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기준 신기술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는 카드사는 3곳(신한·국민·우리카드) 뿐이다. 더욱이 그 중 90% 이상의 금액을 신한카드가 차지하고 있다. 신기술금융업이란 장래성이 있지만 자본과 경영기반이 취약한 기업에 종합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 카드사 중 현대카드는 '테크기업'으로의 변화를 선언하고 자체 개발 플랫폼을 일본에 수출하는 등, 업계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대카드는 연간 영업이익의 30%를 인공지능(AI)에 투자하고 있으며, 데이터 사이언스와 AI에 투자한 금액이 1조원을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는 현대카드가 업계에서 유일하게 오너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 확대에 한 몫하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난 2016년 디지털 현대카드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당시 정장으로 획일화된 의복을 캐주얼로 교체하고 승진 확대 및 디지털 관련 부서 신설 등을 추진했다.

그의 이 같은 행보는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혁신이나 도전으로 불렸다. 그의 별명  역시 금융권의 이단아였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혁신이 새로운 노멀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코로나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 새로운 노멀을 당기는 기폭제가 됐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2022년 "시장은 우리를 '덩치만 큰 공룡'으로 보고 있지만 공룡은 결국 멸종했다"며 변화에 인색했던 금융권에게 일침을 가했다. 카드업계 역시 진화하는 세상과 함께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혁신을 이루지 못하는 기업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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