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두산그룹은 지난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옮기는 사업 재편을 추진했으나 철회
시장은 두산이 사업 재편을 재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음
두산밥캣은 탄탄한 실적과 현금을 보유한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적자를 지속
상법 개정 이후 주주들이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주대표소송 가능성 있어
사업 재편이 재추진될 경우,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의 반발이 다시 거세질 전망

"이사가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규정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개정안은 시행에 돌입한다.

변화의 핵심은 지배주주의 이익에 충실하지만 소액주주를 외면한 이사 개개인의 결정이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렸던 한국 자본시장과 지배구조 개선의 분기점이 될지가 관심사다.

이에 본지는 '상법 개정의 파장' 시리즈를 통해 재계 주요 그룹사들이 지닌 법적 리스크를 짚어보는 순서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LS 자회사 '줄줄이 상장'에 제동 걸릴까 
② 두산에 남은 '밥캣-로보틱스' 재편의 불씨
③ 한화 '승계 퍼즐'맞추려면 '에너지' 상장
④ 하이텍 잘 나갈수록 불안한 DB 지배구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두산로보틱스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박 회장 왼쪽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 사진=두산그룹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두산로보틱스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박 회장 왼쪽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 사진=두산그룹

[한스경제=정우성 기자] 지난해 두산그룹은 '사업 재편'이라 불리는 계열사 간 지분 이동을 추진했다. 핵심은 알짜 계열사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에서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옮기는 것이다.

◆ 박정원 두산 회장 "시장 어려워도 기회 온다"...사업 재편 재추진 의지

소액 주주들과 기관 투자가들도 반발했다. 금융당국도 합병 비율 정정을 요구하며 퇴짜를 놓았다. 6차례나 합병 비율을 고친 끝에 당국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다 작년 말 주주총회를 앞두고 두산그룹은 사업 재편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계엄 사태가 터졌고 두산그룹은 물론 주요 기업 주가가 급락했다. 상법에 따라, 사업 재편에 반대하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회사가 주식을 사갈 것을 요구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이 발생했다.

두 회사 주주들은 당시 급락한 주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 청구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 규모가 두산로보틱스가 정한 한도인 5000억원과 두산에너빌리티의 6000억원을 가볍게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시장은 두산그룹이 사업 재편을 포기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올해 1월 신년사를 통해 "우선은 안정을 기조로, 기회가 오면 기민하게 대응하자. 당장 시장 여건이 어려워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며 "회사나 부문 간 경계를 넘는 협업을 위해서는 활발한 소통과 더불어 새로운 시도가 적극 장려돼야 한다"고 했다. 시장은 이 역시 재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오는 31일, 두산밥캣은 26일 정기 주주총회가 예정됐다. 다만 세 기업 모두 사업 재편과 관련된 안건은 이번 주총에 올리지 않는다.

21일 기준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에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 3951명의 1.58% 지분이 결집된 상태다. 두산로보틱스 0.28%, 두산밥캣 0.37% 지분도 액트에 모여있다. 다만 사업 재편 논의가 진행되던 지난해에 비해 주주들의 목소리는 잦아든 모양새다.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연도별 영업이익 *두산로보틱스는 증권사 전망치 없음.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연도별 영업이익 *두산로보틱스는 증권사 전망치 없음.

◆ 현금 부자 밥캣이 로보틱스 M&A 지원할 듯

다만 최근 제출된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두산그룹이 사업 재편을 재추진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8714억원을 달성했다. 보유한 현금및현금성자산도 12억6312만 달러(1조8465억원)에 달한다.

두산그룹에 2007년 인수된 두산밥캣은 세계 10위권 건설장비 업체다. 매출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시장인 북미 지역의 건설장비 수요 증가가 양호한 실적을 이끌고 있다.

반면 협동로봇 전문 기업 두산로보틱스는 412억원 규모 영업손실을 이어갔다. 현금및현금성자산도 2655억원으로 집계됐다. 결국 현금 부자 두산밥캣이 적자 기업 두산로보틱스를 지원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두산로보틱스는 활발한 인수합병(M&A)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두산은 그룹의 핵심 사업을 '클린에너지(Clean Energy)', '스마트 머신(Smart Machine)', '반도체 및 첨단소재(Advanced Materials)'라는 3대 부문으로 정하고, 계열사들을 사업 성격에 맞는 부문 아래 위치하도록 조정하기로 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결합은 스마트 머신에 해당한다.

무인화, 자동화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어플리케이션을 보다 다양화할 수 있게 되고, 두 회사의 기술을 접목한 신개념 제품 개발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의 유럽·북미 지역 진출에도 두산밥캣의 영업망이 도움이 되리라는 명분이다. 

올해 초 드론 제조업체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이 건물용 수소연료전지 생산업체인 두산퓨얼셀파워를 인수한 것 역시 클린에너지 사업을 묶는 재편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로 해석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사업 재편과 관련해 정해진 바가 없다"며 "조심스러운 문제로 차선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두산·두산에너빌리티 주가 흐름 / 자료=네이버 증권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두산로보틱스·두산밥캣·㈜두산·두산에너빌리티 주가 흐름 / 자료=네이버 증권

◆ 밥캣·에너빌 주가 빠지면 주주들 행동 가능성↑

상법 개정 이후에는 사업 재편 재추진이 각 계열사나 지주회사 주가에 미칠 영향이 관심사다. 사업 재편 포기 후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는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개정 상법이 시행되면 주주들은 '총 주주의 이익'에 위배한 결정을 내린 이사들에게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그 책임 수준은 주가 상승으로 증발한 시가 총액에 비례해 커진다.

그 경우 사업 재편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두산로보틱스보다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들이 개정 상법 조항을 근거로 주주대표소송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는 대규모 해외 원전 수주 기대감에 오른 주가를 반납할 가능성이 크다.

두산밥캣이 없는 두산에너빌리티는 '앙금 없는 찐빵'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연결 실적에는 두산밥캣 실적이 반영된다.

지난해 두산에너빌리티 연결 매출에서 두산밥캣이 차지하는 비중은 50.78%에 달했다. 영업이익의 두산밥캣 비중은 78.05%였다. 총 자산도 40.01%가 두산밥캣의 몫이었다. 

정혜정 KB증권 연구원도 "그룹사 지배구조 개편 시도 재개에 따른 불확실성이 두산에너빌리티 투자의 리스크 요인"이라고 말했다.

두산밥캣 주주들도 다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지난해 두산밥캣을 대상으로 한 주주 행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사업 재편 계획이 나와 두산밥캣 주가가 휘청이던 작년 11월 ▲두산밥캣의 미국 나스닥 상장 ▲이사회 독립성 확보 및 이해상충 우려 해소 ▲주주환원율 정상화 및 자본구조 효율화 ▲밸류업과 연동된 경영진 보상 체계 도입을 요구했다. 

당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이사 등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주주대표소송 제기 가능성도 시사했다. 하지만 사업 재편 계획 철회 이후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두산밥캣에 별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주회사 ㈜두산 주주들이 상법 개정 이후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거론하지만, 주주대표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두산 입장에서는 두산밥캣이 손자회사 위치에 있는 점은 사업 재편 전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알짜 기업인 두산밥캣에 대한 실효 지분율이 올라간다.

한편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된다면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 두산과 같은 지주회사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된다"면서 "지주회사의 경우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중복상장으로 유동성 할인이 불가피한 상황하에서 태생적으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간의 이해 상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우성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