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호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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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류정호 기자]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를 강타한 잔디 논란은 한국 축구의 심장으로 불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파릇파릇한 잔디가 ‘논두렁 잔디’가 된 것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최근 잔디 상황은 축구장으로 불리기 민망할 정도다. 앞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K리그1(1부) 3라운드 경기에서 열악한 잔디 상태 탓에 선수들의 부상과 불만이 속출했다. 공은 균일하지 못한 잔디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튀어 올랐고, 뿌리 자리 잡지 못해 들뜨기 일쑤였던 탓에 선수들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지난 2021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약 4개월에 걸쳐 10억 원을 들여 천연 잔디 95%와 인조 잔디 5%를 섞은 하이브리드 잔디로 새롭게 바꿨다. 바꾼 잔디는 장마철의 많은 강수에도 훌륭한 배수 능력 등을 보였다. 프리시즌을 맞아 방한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시티는 하이브리드 잔디에 엄지를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2023년 8월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엉망이 됐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K-POP 콘서트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면서 큰 비용을 들여 새롭게 장만한 잔디는 심하게 훼손됐다. 공단은 여러 차례 잔디 보수 공사를 진행했지만 그 이후 두 번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특히 잔디가 훼손되면서 배수 능력이 크게 떨어졌고, 잇따라 열린 대형 공연 역시 잔디 생육에 방해가 됐다. 이 기간 공단이 잔디 관리에 지출한 금액은 2억5327만 원에 불과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지난해 1~8월 서울시설관리공단이 경기와 공연 등으로 벌어들인 총 82억550만 원의 수입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비중이다.

결국 공단의 안일한 대처는 고스란히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들과 축구 대표팀에 돌아왔다. 열악한 잔디 상태는 경기력 저하를 가져왔다. 지난해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열악한 잔디 상태로 이라크와 2026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홈 경기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치렀고, 이달에 있을 두 번의 예선 경기도 고양, 수원에서 할 정도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서도 조처는 미흡했다. 공단은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를 긴급 복구한다. 오는 29일 열리는 K리그1 서울의 홈 경기 전까지 잔디 상태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시즌 중에 작업이 이뤄져 잔디가 얼마나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다.

아마추어도 아닌 프로 경기서 매 경기 ‘잔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심히 비정상적이다. 그러나 공단은 언제나 근시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잔디를 긴급 복구하겠다고 나섰으나 한국영 공단 이사장은 “추운 겨울이나 뜨거운 여름에는 경기 수를 줄이면 된다”거나 “인조 잔디인 효창운동장을 대체 장소로 정하면 된다”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대책이라고 내놓으면서 팬들의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축구 전용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서 이번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얼마나 버텨낼지 우려가 된다.

류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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