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반도체 보조금 계약 유효...다른 행정명령 주시하며 대책 마련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급 약속 이행 요구 등 전략적 대응”
中 딥시크 돌풍, HBM 수요급감 우려...새로운 기회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한스경제=김태형 기자] 미국 상무장관 지명자 하워드 러트닉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조금 정책 변화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초긴장 하고 있다. 

CNN방송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지난 29일(현지시간)열린 상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반도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계약 이행 여부와 관련 "지금은 말할 수 없다"면서 "내가 읽지도 않은 것을 이행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 이행을 약속하려면 그 것을 읽고 분석해야 한다. 계약이 적정한지를 지금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칩스법'에 따라 미국에 공장을 짓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과 계약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 자금 집행 중단 의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작년 말 바이든 행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조금 지급을 확정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투자를 전제로 각각 47억4500만달러, 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지만 불확실성이 커진 셈이다.

두 기업은 당초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 보조금을 지원받아 미국 내 투자를 가속화할 계획이었다. 삼성전자는 2026년 테일러 공장 가동,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인디애나주 공장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이번 정책의 변화로 투자 계획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하는 만큼의 큰 타격은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반도체 보조금 등 외국 기업에 제공하는 모든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었고 보조금으로 투자를 유인하는 대신 관세를 동원해 알아서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와 최종 계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새 행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없던 일로 할 순 없을 것”이라며 “반도체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행정명령으로 무력화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보조금 집행을 중단하면 투자 지역의 상하원 의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므로 이미 결정된 보조금이 무효가 될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기 위해 370억달러(약 53조4000억원) 이상,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세우는 데 38억7000만달러(약 5조20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러트닉 후보자는 또 중국판 챗GPT 딥시크의 돌풍에 대해서도 "중국은 물건을 훔치고 침입해 우리의 지적재산권을 가져갔다"며 말했다. 이는 딥시크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AI를 개발하지 않았고 이는 중국과의 AI 전쟁에서 새로운 규제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딥시크 돌풍에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주력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당 5000만원이 넘는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가속기 사용이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성능과 비례한다는 기존의 법칙이 딥시크가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딥시크는 현존 최고 성능의 AI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데 반도체에 투자한 비용이 557만6000만달러(약 78억8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가속기를 쓰지 않아도 고성능 AI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면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 HBM의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들이 원하는 인간 수준의 범용인공지능(AGI)을 서비스 하려면 고사양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가 필수다. 또 저사양 AI 가속기에 탑재될 AI 메모리 수요가 늘어난다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새로운 기회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기업들과 다각적으로 협력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 행정명령을 통해 4월 1일까지 무역협정 재검토 등 조사를 지시한 바 있어 정부는 오는 4월 1일까지 관세 타깃이 될 수 있는 업종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산업부 측은 “각 업계와 비공식 간담회를 통해 미국과 다각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품목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하고 정밀하게 파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이 줄어들면 공장 착공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는 TSMC 등 다른 국가의 기업도 마찬가지로 모든 기업의 생산이 지연되면 미국 입장에서도 손해"라고 지적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면 기대했던 비용절감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 향후 투자 규모 조정 등에 영향이 미칠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기업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고 산업부와 외교부 등 정부 차원에서 보조금 지급에 대한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등의 전략적 대응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는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의 글로벌 진출 기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예상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진출이 국내 업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미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 변화로 이 또한 불확실해졌다. 국내 기업들은 향후 트럼프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하며 전략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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