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실적 위주 미봉책보다 산업 큰 그림 그릴 필요 커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 환율 변동성 확대와 내수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추세는 곧 보험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고령화 심화와 인구감소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보험산업이 장기적으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 보험 판매 주력으로 자리잡은 GA, 과열 양상에 당국도 브레이크
최근 수년 새 보험모집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는 전통적인 영업 방식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법인보험대리점(GA)을 중심으로 한 비전속 영업조직의 영향력이 커지며 이는 업계의 주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2023년 기준 개인형 생명보험 매출액의 69.6%, 장기손해보험 매출액의 64.4%가 이러한 비전속 채널에서 발생했다. 이에 원수 보험사들은 단기적 매출 확대가 용이한 GA채널 확보를 위해 모집수수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12월 16일 제5차 보험개혁회의에서 논의했던 것처럼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17이 2023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보험사들의 사업비 집행 부담은 감소됐다. 사업비 상각기간이 기존 7년에서 전 보험기간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에 2023년 사업비 집행은 전년에 비해 4.9조원(14%) 늘어난 39.8조원을 기록했다. 2024년의 경우 증가폭이 이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사업비 증가액 4.9조원 중 판매채널에 선지급되는 신계약비 증가액은 3.7조원으로 74% 수준에 달한다.
보험상품에 부과되는 사업비는 계약체결비용과 계약관리비용으로 구성된다. 계약체결비용이란 판매수수료, 광고비 등 신계약 체결 비용의 재원으로 표준해약공제액 제도로 과도한 비용 부과를 간접 규제하고 있다. 계약괸리비용은 임직원 급여나 전산비 등 계약의 유지·관리비용 재원인데 별도의 한도 규제가 없어 보험사가 자율책정하고 있다.
판매수수료는 비례, 시책 등으로 나눠 지급하고 있는데, 중장기 계약 기간 중 나눠서 지급해야 할 계약 유지·관리비 대부분은 시책비로 대부분 선지급하는 게 업계 경향이다.
따라서 '좋은' GA채널 확보를 위한 판매수수료 선지급과 같은 원수사들의 경쟁은 부당승환과 잦은 설계사 이직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결국 보험계약 유지율 저하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당승환이란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보장내용이 비슷한 새로운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승환' 과정에서 새로운 계약과 기존 계약의 중요사항을 비교해 알리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비단 GA채널만의 문제는 아닌데, 보험 판매채널 대부분에서 1~2년차에 수수료를 집중 지급하고, 그 이후엔 사실상 수수료 지급이 없거나 미미하기 때문에, 설계사 입장에선 계약을 유지·관리하기보다는 신계약 판매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짙다.
보험사가 지급하는 이러한 판매수수료 한도는 계약 1차년도에 월 보험료의 1200% 이내로 제한하는 룰이 있다. 그런데 GA 소속 설계사들에게는 이를 미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계약체결 실적과 연동한 조건부의 고액 정착지원금 등이 지급되고 있기에 앞서 언급한 문제점이 더욱 심화되는 실정이다.
생명보험과 장기손해보험의 13회차 유지율을 보면 2023년 기준 각각 83.2%, 96.3%로 주요 선진국과 차이가 크지 않다. 그러나 25회차 유지율은 각각 60.7%, 71.6%로 떨어지면서 차이를 보인다. 25회차 생명보험 계약유지율로 비교해 보면, 미국·일본·대만·싱가포르가 각각 89.4%·90.9%·90.0%·96.5%로 매우 높다.
금융 당국도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현 상황은 보험소비자 입장에선 부당승환과 같은 소비자보호 이슈를 낳는다. 또한 보험사 입장에서도 과도한 수수료로 인한 보험료 인상과 건전성 저해 우려가 생긴다.
보험사의 수익을 크게 분류하자면 투자영업이익과 보험영업이익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국내·외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투자영업이익의 장기적인 담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보험영업이익의 관리가 중요한데, 소비자들에게 지급할 보험금을 건드릴 수는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영역은 사업비 관리다.
요컨대 판매수수료 중심의 과당경쟁은 보험사의 장래이익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금융 당국은 판매수수료 분할 지급 확대를 골자로 한 보험 판매수수료 개편 방향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1~2년차 선지급 경향을 제한하고 보험계약의 장기적 유지·관리를 유도하는 방향의 규제다. 아울러 현재는 보험사가 전속 설계사나 GA에 지급할 때만 적용되던 1200% 룰을 GA가 소속 설계사에게 지급할 때에도 적용되도록 확대하는 방안도 시행 가능성이 높다.
규제 당국의 시선이 주로 '장기' 보험 상품에 맞춰져 있는 만큼, 한화생명이 지분 88.9%를 보유하고 있는 한화생명금융서비스에도 눈길이 쏠린다. 지난 2021년 영업조직 분할로 출범할 당시 1만9000여명의 설계사를 보유한 국내 최대 GA로 탄생했다. 2025년엔 설계사 수를 2만6000명으로 늘리고, 순이익 2100억원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 자동차·실손보험 지급도 곳곳이 난제
보험 판매와 관련한 채널 이슈 외에도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선 자동차보험이나 실손보험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량이나 초고가 차량이 늘어나면서 사고 발생에 의한 수리비가 증가하고 이에 과실비율 분쟁이 늘어나는 추세다. 차량과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실비율이 낮더라도 상대방 차량이 고가이면 부담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사고 가운데 과실비율 분쟁으로 이어지는 비중은 약 3%로 추산된다고 한다. 지난 2021년 약 370만건의 사고 중 과실비율 분쟁은 11만380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6만1406건에서 2019년 10만2456건으로 늘어났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2021년 11만3804건으로 연평균 16.7% 증가했다.
고가 자동차는 사고 건당 수리비가 평균의 120%에 달한다. 고가차는평균 신차가액 8000만원을 초과하는 차량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고가차는 2018년 28.1만대에서 2022년 55.4만대로 늘어났다. 이에 고가차량 사고도 2018년 3600건에서 2022년 5000건으로 증가했다.
높은 수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보험의 대물배상 한도금액 상향, 보험료 할증제도 등을 개선했지만, 과실비율 분쟁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면 제도개선 효과가 제한적으로 보인다는 게 보험연구원의 견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분쟁 심의를 신청한 당사자의 82.8%가 본인이 피해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55.7%는 무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사고의 과실비율은 사고 당사자들의 인식 차이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자동차사고가 발생하는 것 자체는 물론, 사고예방과 분쟁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이에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는 과실비율 단순화로 분쟁을 억제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보험연구원은 국내 실정을 감안해 "불필요한 수리비 억제를 위해 도입된 경미손상 수리기준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고, 수리비의 30%를 차지하는 공임비의 효과적 관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품질인증 부품 활성화, 고가차의 부품 재고관리를 통한 수리비 인상 압력 억제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자동차보험과 함께 대중적으로 '필수' 보험으로 여겨지는 것이 실손의료보험이다. 그러나 최근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 재정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강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는 저수익·고위험의 성격을 띤다. 이는 사회보험인 국민건강보험 급여 항목이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실손보험 기반의 고수익·저위험 비급여 영역은 최근 '과잉'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비중증 과잉 비급여 병행진료에 대한 이슈는 개별 보험사만이 아니라 보험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 나아가 우리나라 사회보험제도의 가장 근간 중 하나인 국민건강보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에 보건 당국 등은 비급여 정보 제공 확대, 비중증 과잉 비급여 병행진료 급여 제한 등 의료개혁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과거부터 각 세대별 실손의료보험의 특성을 눈여겨 봤다면, 최근의 4세대 실손의료보험이 급여와 비급여 모두에서 자기부담비율을 상향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등 '과잉' 우려가 큰 일부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장도 축소했고, 비급여 진료량에 따라 보험료도 차등 적용하고 있다.
이처럼 실손보험은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억제하기 위한 방향의 개편을 추진해 왔으나 여전히 손해율이 100%를 상회하는 실정이다. 2023년 전체 손해보험회사의 지급보험금 11.9조원 중 10대 비급여가 3.7조원으로 3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도수·체외충격파·증식치료 지급금은 2조원을 넘어섰다.
2025년은 4세대 실손 요율이 조정된다. 그러나 보험료 조정은 연간 ±25%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여 손해율 수준에 부합하는 적정 보험료 반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업계 의견이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