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노루페인트가 지난 2022년 환경부와 국내 주요 페인트기업들이 체결했던 자발적 친환경 협약을 위반했는지 여부가 논란이다. 노루페인트를 제외하고 협약에 참여했던 업계가 9일 공동명의로 이를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기 때문이다.
구설수에 오른 노루페인트를 포함해 강남제비스코·삼화페인트공업·유니온화학공업·엑솔타코팅시스템즈·조광페인트·케이씨씨·씨알엠·PPG코리아·한국페인트잉크공업협동조합 등 국내 페인트 제조기업들은 2022년 8월 5일 환경부와 '휘발성 유기화합물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수성 페인트로 전환을 독려하고 유성 페인트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내용이다.
또한 해당 협약서 제8조에선 "참여한 기업 중 협약 내용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에는 환경부는 협약 내용 미준수 업체, 내용 등을 최종확인하고, 이외 업체는 공동명의로 언론 등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협약 위반사실을 공개하고, 협약 내용을 위반한 업체는 관련 제품을 전량 회수 조치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논란이 된 것은 2024년 3월 노루페인트가 자동차 보수용 베이스코트 '워터칼라플러스'를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베이스코트란 차량을 보수할 때 마지막에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칠하는 페인트를 말한다.
해당 제품을 출시하며 노루페인트는 수용성 페인트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가 이는 실제로 유성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해 8월부터 9월 사이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KIDI),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에 수용성 제품이 맞는지 확인하는 실험을 의뢰했다.
노루페인트를 제외한 여타 업계의 주장은 실험 결과 문제가 된 워터칼라플러스에 수용성 바인더와 전용 희석제를 섞었을 경우, 색상 편차가 13.7로 나타나 확연히 색상이 달라졌지만, 노루페인트가 제조하는 유성수지 및 제품명 'HQ'인 유성 희석제와 섞었을 경우엔 색상 편차가 0.5에 불과했다. 색상 편차 수치가 클수록 해당 색상의 재현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요컨대 수용성이 아니라 유성으로 써야 정확한 색상이 구현된다는 결과가 도출됐다는 의미다.
해당 페인트의 색상 편차가 0.5일 때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함량은 766g/L를 기록했다. 지난 2021년 1월 환경부는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베이스코트의 VOC 함유 기준을 420g/L에서 200g/L로 강화하도록 법개정을 추진한 바 있다. 따라서 해당 결과라면 대기환경보전법에서 정하는 기준의 3.8배에 달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페인트 업계는 노루페인트가 워터칼라플러스를 대리점에 공급하면서 유성 수지와 유성 희석제를 사용하라고 권장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은 환경부가 12월 16일 주요 제조업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노루페인트의 워터칼라플러스의 실험 결과를 공개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환경부는 현장에서 유성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으며, 노루페인트가 판매대리점에 유성수지를 대량으로 공급한 것은 유성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조한 것이며 즉시 회수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업계는 유성 베이스코트 편법·불법 유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환경부는 VOC 대기 배출을 줄이기 위해 법으로 기준을 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중 베이스코트는 전 세계적으로 수용화 기술이 개발되며, 유성에서 수성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환경부는 지금과 같은 VOC 200g/L 함유 기준을 2020년 이후부터 적용하려는 계획이었으나, 해당 법안 입법 과정에서 노루페인트가 기술수준 도달 기간을 감안해 1년의 유예기간을 요청했고, 결국 2021년 1월부터 기준이 강화됐다.
대다수 페인트 제조업체들은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수성 페인트로의 전환을 목표로 공장 신설, 설비투자, 신제품 개발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제조사들의 편법 유통 정황이 포착되자, 환경부는 이듬해인 2022년 9월 주요 제조시업들과 자발적 협약 체결을 추진했던 것이다.
참고로 함유 기준이 제한되고 있는 VOC란 대기 중에서 질소산화물(NOx)과 함께 광화학 반응으로 오존 등 광화학 산화제를 생성해 광화학 스모그를 유발하기도 하고, 벤젠과 같은 물질은 발암성 물질로서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스티렌을 포함한 대부분의 VOC는 악취를 일으키는 물질로 분류된다.
이와 같은 논란에 노루페인트도 반박자료를 배포하며 해명에 나섰다.
우선 오는 1월 20일~24일 사이 환경부가 실험했던 것과 동일한 조건으로 페인트 제조업체 관계자들을 초청해 자체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왜냐하면 노루페인트의 내부 검사 결과 색상 편차 값은 정상 수치며, 이는 환경부가 의뢰했던 실험 결과에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루페인트는 워터칼라플러스 수지와 조색제, 희석제를 사용할 때 색상 편차 13.7이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에 제품 회수 요구는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참고로 노루페인트가 기존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테스트를 해보니 색상 편차는 평균 0.58로 측정됐다고 한다.
아울러 워터칼라플러스는 수용성바인더(조색제)와 전용 희석제를 사용할 경우 VOC 함량은 167g/L로 법적 규제에 못미친다고 주장했다. 환경부가 발표한 766g/L는 전용 제품이 아닌 유성 제품과 결합했을 때 결과라는 해명이다.
편법이나 불법으로 유성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공업용 유성 도료가 자동차 보수용 대리점에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 도료가 자동차 정비소로 넘어가면 법을 어기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노루페인트는 자동차 보수용 대리점에서 공업용 도료를 유통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공업용 도료 공급을 원하는 대리점에 단계별 확인 절차를 진행한다. 대리점의 요청이 있으면 노루페인트는 사업자 확인 및 현장실사 등 수요처를 확인하고, 용도 외 사용불가 확약서를 작성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설명이다.
또한 노루페인트는 ▲시켄스 ▲워터큐 ▲워터칼라플러스 등 3개의 수성 브랜드를 출시하고 운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타 기업은 한 가지 수성 브랜드만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보수용 수성 브랜드를 3가지로 운영하는 것은 노루페인트가 유일하며, 이는 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성 전환 가속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의미다. 설비·인적자원·제품연구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수성 시장 확대에 반하는 행위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노루페인트의 논리다.
구체적으로 경기도 평택 포승공장에 수성 제품 개발을 위해 500억원의 설비투자를 진행했고, 수성 전환 확대를 위해 전국 공업사 1500명을 대상으로 자사 수성 제품 교육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한 매년 수성 컬러칩을 제작·배포하는 등의 노력도 병행했다.
향후 공업용 제품이 페인트 대리점을 통해 자동차 보수용 시장으로 유통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면, 노루페인트는 해당 대리점에 공급을 즉시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리점에서 하부유통을 위해 요청하는 경우, 실제 수요처를 확인 후 확약서까지 받고 있다는 해명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간담회에서 환경부는 2025년 1~2월 중 대기환경보전법 시행령을 강화해 자동차 보수용 대리점 및 공업사에서 베이스코트 유성 제품을 진열만 하더라도 제조, 판매, 사용자가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당 내용이 시행된다면 워터칼라플러스 논란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노루페인트의 주장이다.
아직 결론이 지어진 사안이 아니지만, 노루페인트측의 해명은 옹색한 부분이 없지 않다. 논란의 사실관계를 가름할 실험 결과에 대한 반박이 가장 그러하다. 환경부가 외부 3개 단체에 위탁해 진행한 실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자체 검사를 진행하겠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향후 관련 법규제가 강화되면 논란이 불식될지도 미지수다.
환경부와 페인트 업계는 법 개정 이후에도 유성 페인트 유통의 다양한 편법 유형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가령 ▲페인트 제조일자를 법개정 이전인 2020년으로 허위 표기해 강화된 기준 적용을 회피하는 방식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제품사양서나 라벨에는 수용성 바인더 및 전용 희석제를 사용하도록 기입하고 실제 현장에서 영업사원이 유성을 사용하라고 유도 ▲제품 라벨에 실제 용도인 자동차 보수용이 아닌 VOC 함유 기준이 높은 공업용 용도로 표기하고 판매 대리점에 납품 ▲경쟁 업체의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의 빈 용기를 구해 유성 제품을 재포장하는 '캔갈이' 판매를 하는 것 등의 유형이 있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