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07년 시행 이후 꾸준히 잡음 이는 총액인건비···공공기관 직원 불만 누적
중소기업 지원 확대에 은행 실적은 사상 최대···성과 분배 요구 본격화
통상임금 요건 완화에 공공기관 지침도 바뀔까
IBK기업은행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사상 첫 단독 총파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집회를 위해 본점 로비에 모여있는 조합원들. /최대성 기자 dpdaesung@sporbiz.co.kr 2024.12.27.
IBK기업은행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7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사상 첫 단독 총파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집회를 위해 본점 로비에 모여있는 조합원들. /최대성 기자 dpdaesung@sporbiz.co.kr 2024.12.27.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IBK기업은행(은행장 김성태) 노사관계 역사에 새 발자국이 찍혔다. 한국노총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위원장 김형선)는 27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산별노조 총파업 참여를 제외하고, 기업은행 노조 단독으로 총파업에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노조는 "이번 총파업을 단행하는 이유는 '차별 임금'과 '체불 임금'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금융노조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형선 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동일노동을 제공하는 시중은행보다 30% 적은 임금을 직원에게 지급하고, 정부의 총인건비 제한을 핑계로 직원 1인당 약 600만원에 이르는 시간외근무 수당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전자가 차별 임금이고 후자가 임금 체불이다"라고 말했다.

◆ 공공기관 경영 유연화 위해 도입한 제도가 지금은 가장 경직

기타공공기관인 기업은행은 인건비 운용에 있어서 사실상 기획재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매년 말 다음 연도 인건비 예산안을 금융위원회에 올리면, 금융위는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 지침'을 준용해 예산안을 확정·승인한다.

과거에는 각종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의 정원과 급여, 복리후생 등 인력 운용과 관련한 사안들을 개별 법령에 따라 통제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경직성과 비효율성이 커지는 관료제 특유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에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공공부문에서도 민간부문의 경영 자율화와 효율화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로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총액인건비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는 관공서나 공공기관 등이 매년 쓸 인건비 총액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집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개별 기관 특성이나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제도 도입 당시 유행하던 표현처럼 공공부문 '경영 유연화'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경직된 모습이다.

◆ 은행은 2.7조·기재부는 1.1조 가져가는 동안 직원 성과급은 0원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과 더불어 3대 국책은행이며 정책금융기관인 기업은행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대응부터 이미 5년여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기관 특성에 따라 중소기업과 서민금융지원에 주력했다.

가령 2020년 코로나 대응만 보더라도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대출 27만건, 총 7.8조원을 집행했다. 이는 전 은행권 소상공인 대출액의 72.8%에 해당하는 규모다.

은행이 자평하는 '금융지원'이란 공짜로 퍼주는 게 아니다. 엄연히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걸 가리킨다. 이처럼 대출(지원) 규모가 크게 늘어나다보니 은행의 수익도 커졌다. 당기순이익 2.7조원을 거둬들이고, 또한 기업은행의 지분 60% 가량을 보유해 최대주주인 기획재정부는 3년 동안 1.14조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기업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2.4조원, 2022년 2.8조원, 2023년 2.7조원을 기록했는데, 기재부의 배당금은 2021년 2208억원에서 2022년 4555억원으로 껑충 뛰어오르고, 2023년 역시 4668억원에 달했다.

기업은행의 당기순이익이 이처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은행 직원들의 노고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단순히 업무량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주로 서민지원을 위한 정책금융 규모가 크게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은행 일선 현장의 고충은 그동안에 비해 훨씬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고액자산가나 대기업 중심의 '세련된' 영업전략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닌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은행은 '실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여타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익성과 건전성에 대한 평가는 받으면서도 정책금융 할당치는 채워야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완료되고, 비교 대상인 시중은행들이 최근 십수 년 사이 임직원 평균 임금을 크게 올려왔던 것에 비하면 기업은행은 이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23년 말 기준 은행권 평균 임금을 보면 KB국민은행·하나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1.2억원~1.12억원 수준이며, 대구(iM)·부산·경남·전북·광주은행과 같은 지방은행도 1.12억원~1.01억원 사이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85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평균적으로 2021년 2.4%, 2022년 3.0%, 2023년 2.0%씩 임금을 인상해 왔을 때, 기업은행은 0.9%, 1.4%, 1.7% 인상에 그쳤다.

앞서 언급처럼 은행의 성과는 쌓여갔지만 이에 대한 임직원들의 배분은 없었다. 2021년부터 2023년 사이 기업은행 직원들에게 돌아간 초과이익에 대한 성과급은 0원이다.

같은 기간 마찬가지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주요 시중은행은 특별성과급 규모만 해도 놀랍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2021년 기본급 300%를 특별성과급으로 지급했다.  NH농협은행은 350%를 줬다.

2022년 KB국민은행은 기본급 280%와 현금 340만원을 지급했다. 신한은행은 기본급 361%(우리사주 61%)를 줬다. NH농협은행은 통상임금 400%와 현금 200만원을 지급했다. 하나은행은 기본급의 350%, 공적자금 회수가 채 끝나지 않았던 우리은행도 기본급의 292.6%를 줬다.

2023년엔 경기 상황을 감안해 규모가 조금 줄었다. KB국민은행은 통상임금 230%를, 신한은행은 기본급 281%(우리사주 51%)를, 하나은행은 기본급 280%를, 우리은행은 기본급 180%를 지급했다. 다만 눈에 '팍' 띄는 성과급 규모를 줄이는 대신 직원 불만을 고려해 결혼지원금, 경조금 등 복리후생을 강화했다. 

특별성과급 외에도 노동조합은 시간외수당 미지급 부문이 직원 1인당 600만원, 총 780억원 가량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지급 요구에 은행측은 총인건비 제도 하에 이를 예산으로 편성할 수 없다고 맞서며 접점을 찾을 수 없다. 이번 쟁의 절차를 밟으며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보상휴가(시간외수당) 적체는 은행의 이익 규모를 봤을 때 큰 문제라고 거론되기도 했다. 또한 기업은행의 실태를 조사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도 시간외수당 적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다.

◆ 통상임금 범위 확대됐으나 인건비 상한에 미봉책만 반복

비단 기업은행만이 아니라 대부분 공공기관 사측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밀고 있는 총액인건비제도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2023년 "노사의 자유료운 단체교섭권을 제약하니 이를 보완하기 위한 협의·조정 메커니즘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번 기업은행 사태서도 보여지는 것처럼 단체교섭권과 관련해 운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요건으로 볼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조건부로만 주어지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기업은행과 같은 공공부문에서도 향후 파문이 예상된다.

현행 총액인건비 제도를 그대로 두면 향후 다양한 공공기관에서 노사관계가 갈등의 연속으로 치닫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범주를 확대한다는 것은 총인건비의 증가를 의미하는데, 이를 제도가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기획재정부는 지금까지 통상임금 소송에서 미지급 임금을 인정하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통해 무력화해 왔다"고 비판했다.

총액인건비 제도가 포함된 기재부의 예산운용지침 등을 위반하면 해당 기관은 예산·경영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기관장의 인사상 평가는 물론, 경영평가 결과로 공공기관 구성원들에게 돌아가는 성과급도 깎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실적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가령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며 직원들에게 해당 임금손실분을 지급해야 했다. 그런데 총액인건비 한도 내에서 이 금액을 지급하면 법정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에 대해 노사는 초과근무를 축소하고 연차 지급방식을 조정해야 했다. 그래도 모자란 예산 일부는 서울시의 정책지원비에서 조달했다.

황수선 서울교통공사노조 대외협력국장에 따르면 이와 같은 미봉책은 올해 임금 교섭에서도 반복됐다. 내년 통상임금 지급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총인건비 항목을 조정하고,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노동조건을 쥐어짜는 방식이다.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기에 언제든 노사갈등이 불거질 소지는 다분하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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