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 "재벌 개혁이 밸류업 핵심...시장 투명성 강화해야" 목소리
[한스경제=이호영 기자] 최근까지 기업들의 '밸류업(기업 가치제고 계획)' 공시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에 앞서 해결돼야 할 가장 큰 걸림돌로 50%(30억원 이상)에 달하는 고율의 상속세가 꼽히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월 말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발표, 기업들이 자율 공시토록 함으로써 자본 시장 활성화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에 나서고 있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 시장은 상속세를 한국 증시 저평가 주범으로 지적해왔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11일 밸류업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상속세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초반인데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면 그 부분을 적극 해소해야 한다"며 "이게 안 된다고 이를 놔두고 기업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에 예측 가능성을 주려면 방향의 일관성과 명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본 시장을 활성화한다고 해놓고서 그 과정에서 상속세 등 제도 개선이 잘 안 된다고 방향을 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방향성을 그렇게 잡고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밸류업 프로그램 방향성이 자본 시장 활성화인지, 지배 구조 개선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정 정책부회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자본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나 기업 성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 등이 있다면 이를 명확히 규정하고 시작하는 게 필요해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에 초점을 맞춰 밸류업을 통해 재벌 개혁,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재벌 개혁이 밸류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재벌은 국가 주도의 지원을 통해 성장해오면서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불투명한 지배 구조가 이뤄졌고 이는 다시 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정책부회장은 "또 무엇보다 상속세 등 논의는 개인 대 개인의 어떤 부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기업 존속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대차그룹도 상속 재원 마련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상황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한창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인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고리를 가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의 지분 상속과 맞물려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축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 합병 등에 2018년 나섰다가 시장 반대로 무산됐다. 이 방식이 아니라면 정 회장은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7.5%를 인수해야 한다.
이외에 승계가 현재진행형인 한화, GS, CJ그룹도 현대차그룹과 마찬가지 상황이 돼가고 있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그룹도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 그룹 경영 환경과 맞물려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율(할증으로 60%)의 상속세를 이건희 선대회장이 별세한 2020년 이듬해인 2021년 4월부터 5년 간 6차례에 걸쳐 연부연납 방식으로 이자를 붙여 내고 있다. 그룹 오너가(홍라희·이부진·이서현, 이재용 지분 매각 없음)는 올 상반기까지 지주사격인 삼성물산 지분(이부진)을 거듭 처분해오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까지 신저가를 갈아치우며 5만원대까지 주가가 추락한 삼성전자와 맞물려 대출금 담보 부담 확대 등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2조6188억원 가량 대출을 받은 상태다. 담보유지비율은 140%로 이를 위해 주가는 5만원대 후반~6만원선을 유지해야 한다. 심지어 외국인 순매도세가 이어지며 주가가 바닥을 기자, 삼성 오너가 상속세 부담을 틈타 경영권 탈취를 노린 작전 세력론까지 불거지는 상황이다.
실제 상속세가 불러온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미 상속세를 납부 완료한 넥슨그룹(2022년부터 2년 반에 걸쳐 5조3000억원 완납)은 세금의 30% 가량을 물납(엔엑스씨)하면서 정부가 2대 주주에 올랐다. 현재로선 정부가 주식 처분에 나서면서 경영권이 불안정한 상황이 됐다.
한미약품그룹(2020년부터 5400억원 연부연납식 5년 간 6회 분납 예정)은 상속세가 경영권 분쟁 발단이 됐다. 이 분쟁으로 생긴 거버넌스 이슈로 주가는 떨어지고 있다. 자본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고려아연도 애초 상속세 부담에 지배 구조가 취약해진 틈을 사모펀드(MBK파트너스 연합)가 비집고 들어왔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외 승계가 남은 덩치가 작은 중소·중견 기업들 경우엔 이익을 충분히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사주 매입, 배당을 확대하지 않는 식으로 일부러 주가 부양에 나서지 않는다며 소액주주들 성토에 직면하고 있는 게 시장 현실이다. 주식 시장 기업(2600여개) 대부분은 이들 중소·중견 기업이 이루고 있다.
◆ 한국거래소 5월부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70개 기업 자율 공시 나서
밸류업 논의(2월)가 시작돼 시행(한국거래소 5월)된지 5개월 남짓 지나는 동안 현대백화점과 현대지에프홀딩스 등 현대백화점그룹(배당 확대·자사주 소각)과 케이티앤지, 한미사이언스까지 40개 기업이 밸류업 자율 공시를 완료한 상태다. 이외 SK스퀘어와 아모레퍼시픽그룹, LG이노텍 등 30개 기업이 공시를 예고했다.
지난 9월 한국거래소는 시장 대표성과 수익성, 주주환원 등 5개 항목을 기준으로 삼성전자·현대차 등 업종 대표 종목을 포함해 코스피 67개, 코스닥 33개 100종목(1000포인트 기준 지수)으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속세율 인하 등을 골자로 하는 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엔 스스로 밸류업에 나선 기업에게도 세제 혜택이 주어질 전망이다. 이 개정 세법안에서는 가업 상속 공제가 최대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2배 확대된다.
정부는 1999년 이후 25년만에 상속세 손질에 나섰지만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앞서 올 7월에 정부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40%로 낮추고 최대 주주 할증평가 폐지도 추진하는 내용 등으로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것이다.
정우용 정책부회장은 "현재 기업 상속세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주식 평가액 20%를 가산하는 최대 주주 할증 평가"라고 봤다. 이 할증으로 상속세율은 10%가 추가된다.
이어 "세율뿐 아니라 납부 방법도 중요하다"며 "자기 지분 매각 없이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호영 기자 eesoar@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