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호영 기자] 최근 몇 년 새 분양 경기 저하, 고금리 지속 등으로 인해 미분양이 늘면서 건설사의 공사 대금 회수가 지연되고 책임준공 약정에 따른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폭염·폭설 등 이상 기후에 따른 비작업 일수 확대, 주 52시간제 도입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인한 작업 일수 축소, 자재와 인력 수급 불안 등도 준공 허들을 높이고 있다.
향후 신규 수주에서는 저자본 고보증 구조의 기존 건설업 자금조달구조 변화뿐 아니라 관련 정책 변화도 예견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건설사의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지면 분양가 인하, 후분양제 도입도 가속화하리란 전망이 나왔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24일 열린 '한국기업평가(KR) 크레딧 세미나' 건설 세션에서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건설사 책임준공 리스크 확대와 시행·시공 구조 변화 가능성 등을 짚어봤다.
김현 책임연구원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부동산 개발 관련 대규모 대출)을 포함한 건설업 전반의 모든 리스크에 대한 원인이자 해결책은 분양률"이라며 "건설업의 책임준공 리스크는 사실상 미분양이 증가세로 전환하기 시작한 2022년부터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했다.
이어 "현재 시점에서 책임준공을 둘러싼 환경 변화, 그로 인한 산업구조 변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책임준공에 대한 공방의 확대는 결국 건설업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최종적으로 누가 지느냐는 문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최근엔 미분양 증가뿐 아니라 건설사의 준공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런 요인들과 함께 건설사들에게 부과된 준공 책임이 달라질 수 있을지, 시공 시행 구조 변화 등을 살펴보려고 한다"고 했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정해진 기간 내에 공사를 완료하고 사용 승인이나 준공을 보장하는 의무를 명시한 약속이다. 시공사는 어떤 경우에도 공사를 중도에 포기할 수 없다. 공사 지연이나 시공을 포기함으로써 시행사나 대주가 손해를 입으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완공된 건물이 있어야 투자자의 PF 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시공사의 책임준공 약정을 통해 준공위험을 통제하는 것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미분양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공사대금 회수 리스크가 커지면서 책임준공 의무를 제공한 건설사들의 운전자본 부담도 커지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어 "책임 준공은 기본적으로 개발 사업의 사업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계약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 금융 구조라는 한계가 있다"며 "분양률이 저조해 공사 대금이 지급되지 못하더라도 건설사가 책임준공을 확약했다면 자기자금으로라도 건물을 완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4년 초부터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채무인수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아직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재무 리스크를 신용도에 반영한 경우는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사례에서는 건설사들의 채무인수 규모가 자체 유동성으로 감내 가능한 수준이기도 했지만 책임준공에 따른 시공사의 재무 리스크를 분양률과 유동성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리스크가 높은 기업들은 이미 신용등급이나 전망 조정 등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위험이 인지되고 있다.
2024년 6월 말 기준 대부분 기업들이 자기 자본 대비 2배 내외의 책임준공을 제공하고 있다. 3배를 상회하는 기업은 코오롱글로벌, 롯데건설, 금호건설 정도다. 매출 대비 미수 채권 비중이 30%를 초과하는 기업은 코오롱글로벌과 롯데건설이 있다.
통상 책임준공은 이론적 최대 손실 범위가 시공비로 제한되고 자금 소요 기간이 공사 기간에 걸쳐 안분되기 때문에 연대보증이나 자금보충 같은 기존의 PF 우발 채무와는 구별해 리스크를 분석해오고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무엇보다 책임준공을 리스크가 높은 PF 우발채무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이 책임준공의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이 분양 시장의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2021년에만 해도 분양을 개시하자마자 초기 분양률이 100% 가까운 시장에서는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리가 높고 실물 경제가 둔화되면서 미분양 물량이 쌓일 때는 책임준공의 리스크 현실화 가능성은 급증한다.
미분양 이외에도 최근에는 폭염과 폭설 등 이상 기후와 주 52 시간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등도 준공을 지연시키는 요인들이다. 이들 요인이 건설업 평균 근로 시간 감소, 작업 일수 확대, 건설 공사 기간(공기)을 장기화시키고 있다.
일례로 이상 기후의 발생은 건설업의 성장성을 최대 0.4% 포인트 가량 낮춘다. 이 하락은 주로 비작업 일수 장기화에 따른 공정 지연 때문이다. 이런 비작업 일수 증가는 전체 공기 지연과 프로젝트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의 산재 예방 활동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도입 과도기에는 안전 관리가 책임 준공 의무와 충돌할 수 있다.
이외에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에 따른 건설자재 가격 급등 또한 공사 일정 차질 요인이 되고 있다. 건설업 내 기술 인력 부족과 고령화 같은 구조적 제약 요인도 건설업의 전반적인 생산성을 낮춘다. 생산성 하락은 공기 지연, 준공 기한 미준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건설사가 모두 떠안았던 리스크를 시행사와 금융사, 신탁사 등 시장의 이해관계자가 분담하는 구조가 되는 듯했지만 이런 분양 경기 저하 등 요인과 맞물려 건설사로 되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건설사들이 사업 형태를 자체 사업화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런 자체 사업화가 건설사의 리스크를 높이는 방향으로만 작용할지에 대해 김 책임연구원은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건설업 자금 조달 구조와 관련해 정책적 변화 등이 감지되고 있는 점 등을 꼽았다. 김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과거보다 강화된 규제 등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국내 PF 문제 해결을 위해 3%대 자기자본비율을 선진국처럼 30% 내외로 높이고 건설사 등 제3자 보증을 폐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건설사들도 본격적인 수주 경쟁보다는 책임준공약정 세부 내용을 기존 채무인수에서 손해배상 등 의무로 변경하며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시공 이외의 사업 보유로 포트폴리오 안전성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현 책임연구원은 "자기자본을 확충하고 보증 의존도를 낮추면 PF 중심의 금융 조달 방식이 바뀔 수 있다"며 "이로 인한 금융비용 절감은 분양가 인하 등으로 이어지고 선분양제 필요성을 낮추면서 후분양제 도입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신규 수주는 시공사와 시행사, 대주 간 관계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띨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야말로 건설업이 매번 생사를 위협하는 고질적인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지켜볼 때"라고 덧붙였다.
이호영 기자 eesoar@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