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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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양세훈 기자] 1970년대에 들어서자 우리 경제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전쟁 후 기나긴 보릿고개를 넘어섰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나마 농림어업과 종합상사의 도소매업, 섬유, 백색가전 등을 중심으로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던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중동국가 간 4차 중동전쟁이 반발한다. 석유의 무기화는 군사력을 압도할 만큼 절대적이다. 국제유가가 수직 폭등하면서 전 세계가 불황 속 물가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으로 몸살을 앓았다. 우리나라 역시 4개월 만에 무려 25% 가까이 물가가 폭등한다. 잘 알려진 1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이다.

경제가 멈출 위기에 처했지만 뾰족한 수도 없었다. 결국 이듬해 1월 정부는 전시에 준하는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조치 3호’를 발령한다. 여객기는 물론 시내버스마저 운행을 중단해야만 했고, 전 국민이 석유파동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사명감에 똘똘 뭉쳐야 했다. 에너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정부는 그해 11월 또 다른 대책을 내놓는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그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이야기다. 

저소득층 보호와 전기 절약이라는 미명 하에 누진제가 도입된 지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첫 도입부터 3단계로 시작한 전기요금 누진제는 그동안 10번의 개편을 거쳤다. 1979년 2차 석유파동 당시에는 12단계 19.7배라는 무시무시한 누진제율이 적용되기도 했다.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강화 또는 완화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그리고 2005년에 6단계 11.7배로 조정된 후 2017년에 이르러서야 3단계로 다시 완화됐다. 현재는 3단계 약 2.56배의 누진배율을 적용받고 있지만, 징벌적 누진제라는 오명은 여전하다.

세대가 변했고 기후도 변했다. 절약이 국력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어르신 세대와 욜로(YOLO)를 추구하는 MZ세대가 공존한다. 뚜렷한 4계절은 희미해지고 한반도는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냉장고가 전부였던 시대에서 지금은 스마트폰, 컴퓨터, 냉난방 시스템 등 가전제품이 보편화됐고, 전기차와 같은 새로운 전력 소비원이 등장했다. 더 이상 소수의 고사용자만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전은 “전기요금이 낮다 보니 전기 낭비가 심하다”라는 시대에 뒤처진 논리로 누진제를 옹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1인당 가정용 전기사용량은 OECD 평균 대비 약 60%에 그친다. 더구나 가정용 전력소비량은 약 13%에 불과하다. 반면 산업용 전기소비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할 만큼 높다. 생산된 전기 대부분이 산업용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에게 ‘전기 절약’을 강요하는 것은 지금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1970년대 군부시대도, 석유파동 시절도 아니기 때문이다.

8월 폭염청구서가 날아올 예정이다. 누군가는 전기요금 걱정 없이 시원하게 보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은 장식품에 그쳤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력 사용 패턴을 보다 세분화해서 가구별, 상황별로 맞춤형 요금제를 적용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주택용에 대한 계절별·시간대별 선택요금제를 시범 시행하고 있고, 정부와 한전은 전국 확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극한 기후를 견뎌야 하는 시대다. 전기요금은 이제 주거와 에너지와 기후 불평등을 말해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누진제는 여전히 선택권이 없는 일방통행이다. 

                            양세훈 ESG경제부 부장.
                            양세훈 ESG경제부 부장.

 

양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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