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으로 인한 불황 업고 수요 견인…새 엔진 개발중
[한스경제=정영희 기자]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 상반기 판매한 차량 가운데 하이브리드차(HEV) 비중이 몸집을 크게 불렸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틈을 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의 HEV 입지가 더욱 탄탄해진 모습이다.
5일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올해 1∼6월 두 회사가 판매한 HEV 차량은 총 40만8799대로, 전체(361만9631대)의 11.3%를 기록했다. 반기 기준 현대차·기아 HEV 판매 대수가 40만대를 넘긴 것은 최초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는 총 206만3934대, 기아는 155만5697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1.0% 줄었지만 반대로 HEV 판매는 21.2% 증가했다. 전체 판매량에서 HEV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이상으로 집계된 것 또한 사상 처음이다.
현대차의 HEV 판매량은 22만155대, 기아는 18만8644대로 각각 전년 대비 21.8%, 20.4% 늘었다. 양사의 실적 견인 주역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차종이다.
현대차 투싼 HEV는 올 상반기 8만5000대 팔렸다. 이는 전년 동기(4만2000대)와 비교할 때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싼타페 HEV도 80.0% 급증한 4만5100대의 호실적을 냈다. 기아차 가운데선 스포티지와 쏘렌토가 효자 역할을 했다. 스포티지 HEV는 6만7600대, 쏘렌토 HEV는 4만5300대 판매되면서 공통적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이상 판매율 상승을 이끌어냈다.
자동차업계에선 HEV의 인기 상승 배경엔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가격이 비싼데다 얼리어답터들의 영향력도 상당부분 빠진 상태라 수요가 더욱 줄어든 실정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수입차 포함)은 15만7823대로 전년(15만7906대)보다 줄었다. 본격적인 전기차 도입 이후 연간 판매량이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지난해가 유일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판매 부진의 대안으로 빠르게 HEV를 내세운 것이 실적 방어의 비결"이라며 "승용 모델인 아반떼나 그랜저부터 카니발, 스타리아와 같은 미니밴까지 HEV 모델을 추가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HEV 선호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예측을 내놨다. 지난 1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 140여대의 차량이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전기가 끊겨 주민들이 대피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도 하나의 이유로 지목됐다. 전기차를 둘러싼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고 일부 아파트에선 화재 시 진압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충전기 사용을 아예 금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민재 서정대 스마트자동차과 전임교수는 "전기차는 지구 온난화나 환경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대책이지만 화재 위험은 아직까지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지금까지 소비자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며 "내연기관차에서 곧바로 전기차로 넘어가기엔 보완해야 할 문제가 다수 있어 그 중간 단계인 HEV에 대한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HEV에 한계가 있다. 출력이 낮은 탓에 대형 SUV나 픽업 트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 차에 전기 동력을 추가해 연비 효율에 초점을 둔 기술이어서 전 차량 모델에 반영하기 위해선 더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임은영 삼성증권 EV·모빌리티팀 팀장은 "미국 시장의 경우 고출력이 필요한 대형 SUV와 픽업 수요가 40% 이상 수요를 차지한다"며 "GM과 스텔란티스(크라이슬러)가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새롭게 2.5L 가솔린 터보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2025년에는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기아 텔루라이드 하이브리드 모델이, 2026년에는 제네시스 하이브리드 모델이 각각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