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초유의 '당선무효' 사태 이후 내홍 지속

[한스경제=박종훈 기자] 금융노조의 집행부 공백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초유의 '당선무효' 사태가 벌어지며 보궐선거 이후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난 4월 22일부터 24일 사이 제27대 임원 보궐선거를 진행했다. 이는 박홍배 전 위원장이 총선 출마로 사퇴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 임원선거는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후보가 러닝메이트를 이뤄 출마한다. 선거에는 박홍배 전 위원장과 러닝메이트며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위원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김형선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과 진창근 한국씨티은행지부 위원장, 김재범 전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상대는 현재 KEB하나은행지부를 대표하는 윤석구 위원장과 신동신 우리은행지부 부위원장, 김명수 금융노조 부위원장이었다.

조합원 직선으로 치러진 보궐선거 결과는 기호 2번 윤석구-신동신-김명수 후보조가 51.88%의 지지를 얻으며 48.12%의 지지에 그친 기호 1번 김형선-진창근-김재범 조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상대였던 김형선 후보조가 선거 과정에서 금품 제공 등이 있었다는 제보를 근거로 이를 문제 제기했다. 이에 금융노조 선거관리위원회는 금융노조 선거관리 규정 제52조에 의거해 5월 20일자로 당선무효 처분을 내렸다.

윤석구 후보조 측에서도 이에 반발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아울러 제기된 의혹에 대해선 법률자문을 거쳐 '통상적 노조 활동'으로 검증을 받았으며, 오히려 선관위가 편파적이며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거에도 금융노조 선거 과정이 과열되고, 후보들 간에 법적 공방이 오간 적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선관위가 당선무효 결정을 내린 것은 초유의 사태다. 금융노조 규약에 따르면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선거는 가능한 한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선거관리규정에서는 이를 구체화해 사유가 확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실시해야 한다고 거명한다.

선거 진행을 위해선 지부대표자회의와 중앙위원회 등의 회의체계 의결이 필요하므로 이는 빠듯한 시간이다. 따라서 재선거가 치러진다면 위원장 후보로 나왔던 윤석구, 김형선 후보가 다시 한번 경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당선자인 윤석구 후보측이 금융노조 중앙선관위의 당선무효 결정이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후보측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진다면, 지금의 사태는 이제 본격적인 법정싸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며, 내홍은 더욱 크게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측은 재선거를 치르더라도 누구의 주도 하에 선거를 치를 것인가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낙선한 김형선 후보측은 "당선무효 결정이 있기에 윤석구 후보조의 집행권한은 즉시 중단되는 것이며, 재선거를 치르는 것은 위원장직무대행을 맡았온 김형선 후보를 중심으로 이전 집행부가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당선인으로 금융노조에 자리잡은 윤석구 후보측은 호락호락 방을 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임 집행부의 출입정보(지문인식)를 삭제하고, 업무시간 외 금융노조 사무실의 출입문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봉쇄했다. 무단 침입에 대한 경고장도 함께 게재하고 있다.

이에 금융노조는 중앙위원회를 열고 차후 일정 등과 관련해 절차적 의결을 추진할 방침이다. 명목상 총회를 갈음하는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 다음의 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는 규약상 위원장이 소집하거나, 중앙위원 또는 회계감사위원 과반수 이상 소집요구가 있을 때 열린다.

통상 위원장은 지부대표자회의에서 의결하고 이를 중앙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며, 사안에 따라서 대의원대회 의결까지 마쳐 결정을 내린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에 대한 사항 등의 안건은 중앙위원회에서 다뤄지지만, 대의원대회 의결까지 필요한 사안은 아니다.

중앙위원회 소집에 대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당선 위원장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중앙위원들과 산하 지부 등에 전날 공문을 보내 다음날 열릴 중앙위원회 의결은 적법하지 않은 의결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해당 공문의 발행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윤석구로 돼 있다.

이에 대해 김형선 후보측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의 이름으로 당선 무효된 상태기에 어떤 권한도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 윤석구 후보측이 금융노조 불법점거와 집행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가 어떻게 판단하든 일단 금융노조의 집행이 공백인 것은 사실이다. 금융노조 사무처에는 전문 채용간부 외에도 집행부를 중심으로 주요 산하지부에서 파견간부들이 나와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집행 공백 상태라는 의미는 위-수-사 임원 자리만 공백인 게 아니라, 각 분야의 실무를 담당할 파견간부들의 공백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례로 올해 산별중앙교섭도 과연 제 시기에 진행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비록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각 지부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교섭단이 꾸려지긴 하지만, 원활한 협의와 결정이 제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 20일 진행된 제2차 교섭에서도 금융 노사는 서로의 입장차만 재확인했다. 금융노조는 올해 임금 8.5%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이에 대해 수용 불가의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서로가 방 '주인'임을 내세우고 있기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사무총장 후보로 나섰던 김재범 전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의 경우, 재선거 도전 의사는 접고 본래 직장인 신용보증기금으로 복귀를 결정했다. 그런데 업무복귀를 위해 필요한 직인날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윤석구 후보조측이 법인인감과 직인, 법인카드와 통장 등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한번 선거를 치르기 위한 과정에도 잡음이 많지만, 최근의 상황을 감안하면 재선거 결과에 대해 불복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이번 선거가 치열한 경합이었으며, 표 차이도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의 이번 제27대 보궐선거의 경우 재적 조합원 수가 9만 519명, 총 투표자 수가 6만 7007명으로 집계됐다. 전국 단위에서 조합원 직선제로 치러지기에 선거 결과에 대한 예상이 쉽지 않다. 게다가 이번에 두 후보조의 표 차이는 2517표에 불과했다.

따라서 재선거 결과에 따라 보궐 집행부가 짧은 임기 내 이처럼 불거진 갈등을 봉합하고 예전의 위신을 수습하는 것은 매우 큰 과제라고 볼 수 있다.

금융노조는 위원장이 이번 22대 국회에 입성한 만큼, 정치권과의 시너지 창출에도 기대가 클 것으로 보인다. BC카드 출신으로 민주노총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김현정 의원도 여의도에 입성하므로, 양대 노총 금융 노동계 대표가 나란히 정치권에서 친노동계적 목소리를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금융노조는 고용노동부장관을 지내기도 한 김영주 전 의원, 외환은행노조와 금융노조 위원장을 지냈던 김기준 전 의원, 구 상업은행노조와 금융노조를 거쳐 한국노총 위원장도 두 번을 지냈던 이용득 전 최고위원 등, 위원장이나 임원 출신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임기 중 위원장이 뱃지를 달게 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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