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은행, 기업가치 훼손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상생금융 고민해야
/한스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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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코로나 이후 실적 갱신을 이어온 은행권이지만 올 연말 체감 경기는 한파 수준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상생금융' 슬로건 아래 은행들의 이익분 출연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이보다 한 발 나아가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가리키는 것이다. 횡재세(windfall tax) 성격의 부담금을 신설하고 징수된 재원을 금융 취약계층 및 소상공인을 포함한 금융소비자 부담 완화에 쓰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횡재세는 딱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명확하게 정의된 것도 아니다. 운 좋게 많은 이익이 발생한 산업이나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급증한 이익이 혁신활동 등의 정상적 영업행위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기에 횡재세 부과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과거 두 차례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 시기처럼 매우 예외적 시기에 제한적으로 부과됐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방비 지출 부담이 커진 준전시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상당한 반사이익을 누린 화석연료 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 부과를 권고한 바 있다. 헝가리, 체코, 리투아니아 등은 이를 금융회사에까지 확대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와 접경국이거나 가까운 거리의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국가에서 은행에 대한 횡재세가 도입된 것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정치권에서 난국 타개용 수단의 일환으로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전 세계적인 금리인상 시기에도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해 왔다. ECB는 11년 간 제로 수준에서 유지해 오던 정책금리를 지난해 7월 처음 인상하기 시작해 2023년 9월 4.50%까지 인상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팬데믹 긴급매입 프로그램, 은행 대출 관련 유동성 공급 등의 정책도 병행했다.

따라서 유로지역 은행들은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던 시기에도, 예금금리 인상을 통한 자금조달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은행 예금금리 인상으로 반영되는 정도를 가리키는 지표인 예금베타를 보면 횡재세를 도입한 이탈리아(11%)나 리투아니아(21%)의 경우, 그렇지 않은 미국(25%), 영국(43%) 등에 비해 낮다.

그러나 정책금리 인상을 반영해 대출금리는 크게 상승했다. 은행의 입장에선 이자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를 겨냥해 횡재세를 도입한 것인데, 그 내막을 한꺼풀 더 들여다보자면 스페인의 경우 코로나19 시기 정부 대처가 미흡했던 점에 대해 유권자들의 불만이 표출되며 집권당이 각종 선거에서 고전을 하고 있었으며, 이탈리아의 경우엔 심지어 총리가 교체되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면이 지속됐다는 특징이 있다. 횡재세 도입은 결국 포퓰리즘 전략이라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상황은 조금 차이가 있다. 물론 코로나 기간 유럽 은행과 마찬가지로 이자이익이 늘어난 것은 팩트다. 유럽의 은행들은 정책금리가 1%p 상승할 경우 이자이익이 8% 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 정책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최근 2년 동안 이자이익이 36.0% 증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은행 역시 이자이익이 2021년 46조원 대비 2022년 55조 9000억원으로 21.5% 증가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ECB와 달리 금리인상 시기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국내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해 예금금리 역시 꾸준히 인상했다. 2022년 예금베타는 신규취급기준 118.2%, 잔액기준 62.2%로 유로지역 은행에 비해 월등히 높다.

아울러 국내 은행권은 최근 4년 동안 서민금융지원 등의 목적으로 각종 법정 부담금과 특별 출연금 24조원, 사회공헌 관련 2조원 등 약 26조원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 역시 취약계층 지원 등을 강화했다.

금융 당국과 은행연합회, 20개 은행들은 ‘민생금융 지원방안 TF’를 구성하고 내년 상생금융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당국은 올 하반기 들어 각 업권 CEO들을 차례로 불러모아 각종 이슈 대응 촉구와 함께 상생금융에 적극 참여를 주문한 바 있다.

구체적인 지원 금액과 방식 등은 아직 확정된 바 없으나, 금융권 전반에선 약 2조원 수준일 거란 얘기가 지배적이다. 이는 참여 은행의 당기순이익 약 10% 가량이다. 앞서 언급한 금소법 개정안 등에 따라 은행들에게 부과될 초과이익분에 대한 횡재세 역시 이와 비슷한 규모인 1조 9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EU 의회는 횡재세 부과 권고를 내린 바 있지만 중앙은행인 ECB는 당시 횡재세 도입을 반대했다는 점 역시 우리나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석기 연구위원, 이영경 전문위원, 임형석 선임연구위원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ECB의 횡재세 반대 논리의 핵심은 ▲이자이익의 경기순환적 특징 ▲금융회사의 회복력(resilience) 확보의 중요성 ▲신용공급 축소 가능성 등을 감안한 것이다.

우선 경기순환의 국면에 따라 이자이익이 달라지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들의 이익발생 시점과 횡재세 납부 시점 간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 완화 기조로 전환되며 오히려 이자이익이 감소하는 시점에서 횡재세 납부 부담이 발생하면서 지속가능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경제 충격이 발생할 경우에도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 은행이 충분한 회복력을 사전적으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ECB는 강조했다. 충당금 적립이나 자본 적립을 강화해 어려운 시기에 대비해야 할 시점에서 횡재세 부과로 은행의 기업가치가 하락할 경우, 자본여력 확보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영향은 국내 은행들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기준 글로벌 100대 은행에 포함된 국내 은행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 평균치는 0.32배다. 이는 영국(0.56배), 일본(0.57배), 미국(0.98배) 등 비슷한 영업모델을 가진 해외 은행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결국 이런 부담 아래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위축될 수 있음을 ECB는 중앙은행 차원에서 경고했다. 즉 은행이 횡재세 기준에 근접하는 경우 전략적으로 규제회피적 영업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신용할당이 늘어나면서 정책적 지원 필요성이 높은 취약차주의 경우 금융 접근성이 제약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발의된 개정안은 법적 리스크도 갖고 있다. 재산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경우, 헌법상 입법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법익의 균형성, 침해의 최소성 등 과잉금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개정안에선 직전 5개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이익을 횡재세 부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하지 않는 적정 기준인지는 법적 불확실성이 높다.

아울러 재산권 제한은 법률에 따라 명확한 요건에 따라야 하는데 초과이익 산정방법, 기여금 납부방법 및 절차, 미납시 조치사항, 불복절차, 감면방법 등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어 명확성 원칙 위반 가능성도 제기된다.

게다가 이미 법인세를 부과한 상황에서 추가로 초과이익 분을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 금지 원칙에 위반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개정안에는 기여금(부담금) 징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4년 이중과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담금이란 형식을 남용한다면 조세에 관한 헌법상의 특별한 통제장치가 무력화될 우려가 있으므로, 부담금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그밖에도 타 산업의 일부 기업 역시 우연적인 이유로 큰 이익이 발생할 경우가 있는데, 금융사에만 횡재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헌법 제11조 평등권이나 조세평등주의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나 재산권이나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는 현 개정안이 입법화된다면, 위헌적 법률제정으로 주주에게 손실이 발생했음을 이유로 해외투자자 등 주주에 의한 소송제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권의 사회적책임 이행은 그 규모 면이나 활동폭, 사회적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일개 기업이나 업권의 사회공헌활동 수준을 뛰어넘는 파급력을 갖는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고금리 시국에서 금융부담이 늘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상생금융'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은행권 역시 공감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업이라도 본연의 기업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사회공헌에 매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은행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곳간을 여는 게 사회적책임과 기업가치 유지에 가장 균형점인가에 대해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러한 상생금융 지원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 우리 사회 일부에만 한정될 수 있다는 점을 두고 외려 사회갈등과 분열의 소지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장 먼저 대두될 것이며, 또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가능성이 있다.

가령 상환 한계까지 쫓겨있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의 채무액 대부분은 비은행권 중심이다. 나이스신용평가 자료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연체로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 한계 자영업자의 은행권 채무액은 1조 2532억원으로, 이는 전체 9조 1343억원의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상호금융권 등 비은행권 채무 비중이 5조 2706억원으로 90%에 달한다.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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