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채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힌 남성. /연합뉴스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채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힌 남성.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서부 태평양 연안을 품은 온화한 날씨와 실리콘밸리, 빅토리아풍 건축물 등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도시임에 의심할 여지없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샌프란시스코는 좀비가 장악해버린 도시가 됐다. 노숙자를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마약에 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약 청정국이라고 불렸던 대한민국도 더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롤스로이스 사고를 비롯해 배우 유아인, 버닝썬 사태 등 나라를 충격에 빠트린 마약 관련 이슈가 하루가 멀다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다양한 사건사고 중 가장 씁쓸한 뉴스는 마약류를 다루는 의사들이 셀프(자가)처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 처방 의사와 환자의 이름 및 출생 연도가 동일하게 보고된 사례는 2018년 5월부터 2022년 6월까지 10만 5601건에 달한다.

셀프처방이 가능한 이유는 현행법상 마약류를 취급 가능한 업자(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수의사 등)는 진료기록부에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품명과 수량만 적는다면 직접 투약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마약류 처방도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처방정보 분석을 통해 지난 3월 의사 219명을 적발했고, 이 가운데 19명은 3개월간 추적관찰에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중독자들이 마약을 잘 처방해주는 병원을 공유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이른바 ‘마약 쇼핑’이다.

솜방망이 처벌도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부족하다.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위한 조치기준을 위반한 게 확인되면 취급 업무정지 1개월(1차) 처분을 받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내년 6월부터 시행된다는 것. 이에 따라 의사는 마약류 처방 전 환자의 투약 이력을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권고에 불과했다. 이번 시행으로 마약류 오남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국회는 오는 10월 예정된 2023년도 국정감사에서는 ‘의료인 마약류 자가처방 방지 방안’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그저 힐난에 급급한 국감이 아닌, 생명의 최전에서 사명감으로 노력하는 의료인들의 명예와 마약 청정국의 위상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대책 마련의 장이 되길 희망한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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