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기후과학 전문 기자' 제프 구델 "美정부, 흑인·유색인종 소모품 취급" 
美, 연방 차원 실내외 근로자들 폭염 보호 규정 無
"멕시코인은 더위에 강하다?…'아프리카 출신 노예 노동' 가치관과 유사"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이글 패스에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리오 그란데 강 유역을 따라 설치된 콘체르티나 철조망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 현지 언론은 콘체르티나 철조망과 새로 설치된 부표가 부유식 장벽으로 사용되면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는 것이 더욱 어렵고 위험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 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이글 패스에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리오 그란데 강 유역을 따라 설치된 콘체르티나 철조망 주변을 지나가고 있다. 현지 언론은 콘체르티나 철조망과 새로 설치된 부표가 부유식 장벽으로 사용되면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는 것이 더욱 어렵고 위험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겪고 있는 미국이 효과적으로 폭염에 대처하지 못한 배경에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일(현지시간)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프 구델(Jeff Goodell)의 이 같은 발언이 담긴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구델은 20여 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후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보도해왔다. 수년간 축적된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해 전문 언론인으로 입지를 굳혔으며, 해수면 상승을 다룬 다섯 번째 저서 '물이 몰려온다'는 2019년 미국 기상학회에서 수여하는 '루이스 J. 배턴 저술상'(Louis J. Battan Author’s Award)을 받기도 했다.

구델은 가디언과의 이번 인터뷰에서 농부·건축업자·배달 노동자 등 폭염에 시달리는 수백만 명의 이주 노동자를 포함한 유색 인종이 미국 정부로부터 소모품으로 간주돼 물과 휴식 등 적절한 조치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구델은 2021년 6월 미국 북서부 폭염이 시작된 첫날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쓰러져 사망한 노동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록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야외 근로자에게 그늘과 물, 휴식 시간을 보장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법안에 서명한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의 일화를 언급하며 "미국에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근로자의 열 노출과 관련되 연방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구델은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서) 더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투표층이 아니다. 노숙자·빈곤층·농업 및 건설 노동자들"이라며 "그들은 그저 소모품으로 여겨지고 보호받아야 할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종차별은 정부가 취약계층을 보호하지 못하는 데 절대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다. 

구델은 "텍사스의 농장주와 건설 노동자 대다수는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라며 "(그렉 애보트 주지사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고, 이는 우리 정치의 요점이 '잔인함'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델은 현재 흑인과 유색인종 노동자들이 직면한 위험을 과거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예들이 무더운 남부 지역에서 강제로 노동을 했던 사례와 비교하기도 했다. 

구델은 "현재 상황은 과거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힘든 노동을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던 '과학적 인종주의'의 연장선이기도 하다"며 "예전에는 '아프리카인은 두개골이 두꺼워 열을 차단한다'는 등 온갖 종류의 잔인한 인종차별적 발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지만 방식만 바뀐 것"이라며 "최근에는 멕시코 사람들이 42도(℃)의 폭염에도 도로를 포장하는 일을 하는 것을 두고 '멕시코 출신이기 때문에 더위에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이것은 (폭염에 대처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과 관계없이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리처드슨에서 울타리 설치자 햇볕 아래에서 작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리처드슨에서 울타리 설치자 햇볕 아래에서 작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델은 폭염도 기상학자들이 태풍에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분류하는 것처럼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다. 

현재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폭염을 태풍이나 토네이도처럼 재난으로 선포하거나 대응할 수 없다. 또, 폭염과 관련된 메시지와 경고가 연방 차원에서 일원화돼 있지 않아 지역 기상청의 판단만으로 경보나 주의보를 발령해야 한다. 

구델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폭염에 이름을 붙이고 순위를 매기는 것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는 시도해봐야 한다"며 "허리케인의 경우에도 이름을 붙였을 때 사람들이 앞으로 닥칠 위험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가디언은 "실제 스페인의 세비야 등 일부 도시에서는 폭염에 순위를 매기고 이름을 붙이는 프로그램을 시범운영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제기상기관은 이에 대한 확신을 아직 갖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델은 에어컨에 대해서는 "개인의 안락함을 위한 기술이자 망각의 기술이기도 하다"며 "복잡한 문제를 기술력으로 해결하려는 미국식 발상이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더위 불평등' 격차를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인구 7명당 한 대꼴인 10억 대 이상의 1인용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 이는 건물에서 사용되는 전체 전기의 약 20%를 차지해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 온실가스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이는 다시 에어컨 수요 증가로 이어져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 

구델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에어컨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면 2050년에는 45억 대 이상이 보급돼 오늘날 휴대폰 만큼 보편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가디언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마찬가지로 폭염은 주택·임금·의료 등에 대한 접근성에서 기존의 구조적·인종적 불평등을 드러내고 악화시킨다"며 "구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세계가 코로나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에 경계심없이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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