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은행으로부터 대출이 어려워진 해외 중소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눈길을 돌리며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사모신용펀드 시장을 키우고 있다. 아직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은 초기 단계인데, 이러한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향후 자산운용사들의 미래먹거리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 ESG·자산관리연구실의 김혜원 수석연구원과 김신진 연구원은 ‘사모신용시장의 성장과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의 대응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사모신용(Private Credit) 펀드란 자산운용사가 사모 형태로 자금을 모집해 기업에 대출하거나 회사채를 매입하는 등 이자수익 획득을 주목적으로 운용하는 금융상품을 가리킨다. 이 펀드의 투자대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직접대출이다. 글로벌 사모신용시장의 2022년 신규모집액 기준 운용자산별로 볼 때 직접대출이 37.1%를 차지하고 있다.
직접대출은 주로 일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로 가장 일반적인 운용방식이다. 대출 대상이 창업 초기거나 성장기 벤처기업인 경우 벤처대출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메자닌(19.5%), 특수상황(13.5%), 부실채권(11.9%), 부동산대출(9.2%), 일반대출(5.0%), 인프라대출(3.2%), 벤처대출(0.6%) 순으로 비중이 구분된다.
통상 사모펀드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PE(Private Equity)가 고위험·고수익을 지향한다면, 사모신용펀드는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한다.
사모신용시장의 확대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은행의 대출 기준이 강화된 탓이다. 미 연준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이후 미국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따라서 2022년 은행의 중소기업 신규 대출 규모는 2021년에 비해 30% 가까이 급감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중소·지역은행의 잇따른 파산 사태도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따라서 사모신용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니즈는 커졌다.
투자자의 입장에선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프레킨 아시아·태평양 패밀리 오피스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향후 1년간 비중을 확대할 자산으로 사모대출(63%)을 꼽기도 했다.
기존까지는 주요 투자자가 기관이었으나, 변동금리 구조를 채택해 금리상승기 수익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며 고액 개인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2022년 연평균 수익률을 보면 사모신용펀드는 14.7%이다. 투자등급 회사채가 4.5%, 하이일드 채권이 7.4%인 것과 대비된다. 또한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수익률 개선 폭 역시 3.3%p로,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2.1%p나 하이일드 채권 1.2%p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 수익률은 당해 투자자(LP)에게 지급된 분배금을 평균 운용자산(AUM)으로 나눠 산출한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은 투자금의 30~50%를 대체투자 자산에 할당하고 있는 것에 반해, 개인의 경우 그 비중은 약 2%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체투자 확산과 함께 사모신용시장 확대도 따라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사모신용펀드의 2022년 AUM은 1조 4000억달러로, 최근 5년 사이 연평균 19.0% 급성장했다. 블룸버그는 2027년까지 2조 3000억달러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역별로 보면 북미 시장이 현재 기준으로는 제일 크다. 전체 AUM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이 29%, 아시아는 6%이지만, 성장세는 유럽과 아시아가 더 크다. 지난 2008년에 비해 2021년 AUM은 유럽이 12배 커졌고 아시아는 8개 성장했지만, 북미는 4배 확대되는 데 그쳤다.
따라서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해외에서 추가 성장의 기회를 모색하는 데 이 시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럽시장의 공략이다.
2022년 유럽에서 은행의 중소기업 신규 대출 감소는 미국의 약 30%보다 훨씬 급격했다. 70% 가까이 급감한 탓에 사모신용 시장 확대가 가능했던 것이다.
가령 글로벌 최대 운용사인 블랙록은 벤처대출에 대한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사모신용펀드 출시를 위해 지난 6월 유럽 최대 벤처대출 기업인 크레오스 인수를 추진했다. 유럽의 2022년 말 기준 벤처대출 규모는 305억유로로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실 인지도와 위상에 비해 블랙록은 사모신용업계에선 후발주자다. 2018년 미국의 대출회사를 인수하며 시장에 진출했지만, 상위권 업체들에 비해 실적은 미진했다. 운용자산 규모로 볼 때 업계 상위 3개사 평균의 10%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블랙스톤의 경우 2021년 1월 개인투자자 전용 사모신용펀드(BCRED)를 출시하고, 고액자산가를 유치하기 위해 PB 판매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입 요건을 순자산 25만달러 이상이나 연수입 7만달러 이상인 고객으로 설정했다. 이 상품은 대부분 선순위 담보대출(97%) 형태로 500여개 기업에 분산투자해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또한 패밀리 오피스. 초고액자산가 대상 전담 영업조직인 ‘프라이빗 웰스 솔루션즈(PWS)’를 활용해 은행 PB나 자산관리사 등 담당 인력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며 판매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250여명의 PWS는 고객 수요 파악이나 상품설명회 개최 등의 영업지원 역할을 담당한다. 별개로 상품이나 시장환경 관련 전문 지식을 제공하는 온라인 기반 연수프로그램인 ‘블랙스톤 유니버시티’도 운영한다.
사모신용시장의 기존 투자자가 주로 기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 기관투자자의 포지션 처분을 돕는 세컨더리 시장을 조성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세컨더리 펀드란 거래 종료 전 청산을 원할 경우, 해당 딜을 할인해 매입·운용하는 형태로 유동성이 부족한 투자자산의 유통시장 역할을 수행한다.
2021년 4월 아폴로가 출시한 10억달러 규모 세컨더리 펀드가 대표적이다.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사모신용펀드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이 손쉽게 현금화(유동화)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들 투자자들이 내부적인 한도관리, 자산배분 재조정 등으로 기존 사모신용펀드에서 엑시트를 원할 경우, 할인 매입해 다른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결국 청산을 원하는 투자자에겐 유동성을 지원하고, 새 투자처를 원하는 이들에겐 신상품(세컨더리 펀드)을 제공할 수 있으니 기관투자자와 관계는 더욱 강화되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사모신용시장은 2021년 말 기준 AUM 170억달러로, 글로벌 시장의 1.3%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유형별 비중도 메자닌이 37%로 가장 많아 글로벌 추세와 좀 다르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규모가 3배 이상 급증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2021년 10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에만 허용됐던 규제가 사라져 시장 참여가 확대될 수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기존에 이 시장에 진출한 플레이어는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과 MBK파트너스를 꼽을 수 있다. 최근 10년 사이 아시아 지역 사모신용펀드 자금모집 규모 기준으로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34억달러로 3위 업체다. MBK파트너스는 27억달러로 6위를 차지했다. 국내 사무신용펀드 규모 역시 가장 큰 게 MBK파트너스의 특수상황펀드(18억달러)와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의 직접대출펀드(12억달러)다.
하지만 이후 IMM PE, VIG파트너스, 글렌우드PE 등이 새로 시장에 들어섰다.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 아폴로와 미국의 사모신용 전문운용사 몬로 캐피탈도 국내 시장에 들어왔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사모신용 투자에 대한 수요는 높다. 하지만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등은 아직까지 주로 국내보다는 외국계 사모대출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2년 과학기술인공제회가 골럽 캐피탈에 7000만달러, 노란우산공제회와 군인공제회가 안타레스 캐피탈에 1억 6000만달러의 자금을 집행한 게 대표적이다.
앞서 언급처럼 아직 국내의 사모신용시장이 초기 단계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 시장이 밟아온 과정을 뒤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사모신용펀드 시장에서 신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대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하나대체투자산운용의 경우, 금융지주 산하 은행권의 심사역량 등의 강점을 십분 활용해 ‘직접대출’ 부문에 차별화를 두고 있는 점 등은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또한 MBK파트너스는 기존 PE 계열 강력한 네트워크에 기반해 ‘특수상황’ 위주 사모신용펀드로 차별화한 것도 유의미하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