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보이스피싱’이 갈수록 고도화·지능화되고 있는 데 반해 관련 법 대응아 너무 느려 문제화되고 있다. 특히 신속한 피해구제와 관련한 부분은 피해자의 억울한 마음을 고려하면 더욱 변화속도가 답답해 보인다.
그렇다고 관련 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11년 우리나라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피해금을 신속하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피해금 환급절차 등을 규정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범죄 수법의 진화로 최근에는 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기 범위를 벗어나, 법 제도의 구제를 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종전의 보이스피싱 유형은 피해자가 사기범의 계좌로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유형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 유형은 최근 감소 추세에 있다. 지난 2019년 이 같은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은 피해금액이 672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0년엔 2353억원, 2021년 1682억원, 2022년 1451억원 등,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피해자 수 역시 2019년 5만 372명을 기록했지만, 2020년 1만 8265명, 2021년 1만 3231명, 2022년 1만 2816명으로 줄고 있다.
하지만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서 정하고 있지 않은 유형의 보이스피싱 피해는 증가하고 있다. 국무조정실과 경찰청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에는 앞서 언급한 계좌이체형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3만 1585건으로 93%를 차지하고 있었고, 대면편취형이 2547건으로 7%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2021년에는 오히려 비중이 역전돼 계좌이체형이 8230건으로 27%였으며, 대면편취형은 2만 2752건으로 73%를 차지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에 대응하지 못하는 제도의 사각지대 발생으로 21대 국회에선 법개정이 추진됐다. 지난 5월 16일자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이 이뤄졌으며, 이는 오는 11월 17일부터 시행된다.
개정법의 핵심 골자는 △대면편취형·출금형·절도형 보이스피싱까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위 확대 △새로 포함된 보이스피싱 유형의 피해 구제를 위한 절차개선 △전기통신금융사기에 대한 처벌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범죄 유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자면 대면편취형은 말 그대로 사기범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자금을 편취하는 걸 가리킨다. 출금형은 사기범이 피해자로부터 통장이나 카드 등을 전달 받아 자금을 출금하는 것이고, 절도형은 피해자에게 자금을 특정 장소에 두도록 해서 사기범이 절도하는 유형의 보이스피싱을 의미한다.
기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선 제2조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전기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기망(欺罔)·공갈(恐喝)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게 하는 자금을 송금·이체하도록 하는 행위 또는 개인정보를 알아내어 자금을 송금·이체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계좌이체형이나 개인정보취득 송금·이체형 보이스피싱을 법의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 현실의 변화에 따라 개정법에선 범죄 행위 유형에 맞춰 “자금을 교부받거나 교부하도록 하는 행위” 또는 “자금을 출금하거나 출금하도록 하는 행위”를 추가했다. 또한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를 확대해 범죄의 객채를 “재산상의 이익”에서 “자금 또는 재산상의 이익”으로 변경했다.
또한 기존의 법 제3조에선 피해구제 절차를 위해 피해자가 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 또는 사기이용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에 지급정지 등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면편취형·출금형·절도형 보이스피싱은 사기범을 직접 만나 자금을 전달하거나 사기범이 출금·절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사기이용계좌를 알 수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정법에선 사기이용계좌를 특정할 수 있는 수사기관이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처벌 역시 대상을 “전기통신금융사기를 행한 자”로 규정에 법이 규율하는 모든 유형의 범죄가 처벌 대상이 되도록 개정했다. 형량 역시 기존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었는데,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倂科)”할 수 있도록 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최대 30년까지 유기징역이 가능하도록 하고 범죄수익도 박탈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이와 같은 법 개정에도 불구, 범죄 유형은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가령 최근엔 가상자산이나 간편송금 등을 이용한 새로운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가상자산을 범인의 전자지갑으로 전송하거나 선불업자를 통해 피해금액을 송금하는 등의 사례이다.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응해 지난 2월 28일 △가상자산사업자 및 가상자산에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적용하는 방안 △가상자산을 개인이 생성한 전자지갑 또는 다른 가상자산거래소로 전송할 경우 숙려기간을 도입하는 방안 △금융회사와 간편송금업자 간 보이스피싱 관련 계좌정보를 공유하는 방안 등의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법적으로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에선 관련법 적용 대상에 가상자산사업자나 전자금융업자를 추가하는 등의 신종 보이스피싱 대응을 위한 다수의 개정안이 ‘아직’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입법조사처 이수환·정혜진 연구원은 “보이스피싱 신고를 받은 통합신고대응센터가 보이스피싱 유형을 불문하고 피해자를 대행해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직후 피해금이 단기간에 다수의 계좌를 거쳐 이전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초기 대응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