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전 산업이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해 바쁘게 태세전환에 나서고 있다. 특히 건설 부문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37%를 차지하는 만큼, 갈 길이 멀다. 이에 상업용 부동산 시장 역시 향후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색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같은 와중에 부동산 투자가 전문인 이지스자산운용의 투자전략실은 ‘부동산 탄소중립 활동의 그린 프리미엄과 브라운 디스카운트’라는 제목의 이슈보고서를 발간, 눈길을 끌고 있다. 보고서는 상업용 부동산 업계도 탄소중립 규제에 대해 단순히 방어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비즈니스와 투자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그린 프리미엄’이란 단어를 통해 짐작되는 것처럼 탄소중립을 비롯한 녹색활동에 동참했을 때 얻게되는 유무형의 이득을 가리킨다. 그에 반해 ‘브라운 디스카운트’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유무형 손실 리스크를 뜻한다.
건설·부동산 시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산업을 망라해 이와 같은 그린 프리미엄과 브라운 디스카운트는 각각 녹색활동 참여 여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와 패널티 △수익가치 변동 △자산가치 변동 등으로 산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소들도 비즈니스 영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자금조달기회’ 차원에서 판도가 바뀌었다는 게 ESG 경영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실질적 이유다.
다시 말해 글로벌 대형 투자자들을 비롯해 금융기관 등이 ESG 요소, 특히 탄소중립과 녹색활동 강화 허들을 높이며 본격적으로 돈줄을 틀어쥐겠다고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동향에 발맞춰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 선언을 비롯해, 2022년 탄소중립기본법 시행 등,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연평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17%로 설정하며, EU 1.98%, 미국·영국 2.81%, 일본 3.56% 등 여타 선진국에 비해 도전적으로 높은 수준을 천명한 바 있다. 아울러 주요 기업들도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넷제로 가이드라인 수립을 진행 중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5%,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37%가 발생하는 건설부문에 대해선, 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에서 2018년 수치를 기준으로 2030년까지 건물의 탄소배출량의 32.8%를, 2050년까지 88.1%를 감축하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자금조달-개발시행 및 설계-건설자재 생산-시공-운영 및 유지보수-리모델링 등으로 건설부문 생애주기를 구분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97%를 차지하는 것은 건설자재 생산과 운영 및 유지보수 부문이다. 건설자재 생산과 관련한 부분은 약 28.3%를 차지하는데, 시멘트 생산과정에서의 에너지 사용이 대부분이다. 또한 68.6%를 점유하는 운영 및 유지보수 부문은 건물 사용 및 개보수에 따른 에너지 사용에서 배출량이 늘어나고 있다. 즉, 전자는 내재탄소이며 후자는 운영탄소인 셈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곧 개발단계와 운용단계에서 온실가스배출 감축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도입된 제로에너지빌딩(ZEB)과 그린리모델링 제도가 국내 부동산 시장에선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ZEB 제도는 의무화 대상을 현재 공공건축물에서 2025년엔 연면적 1000㎡ 이상 민간건축물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국내 상업용 부동산의 핵심 거점인 서울시는 올해부터 1000세대 주거시설과 10만㎡ 이상의 비주거시설 대상으로 ZEB 제도를 조기 시행할 예정이다. ZEB는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1++이상 △에너지 자립률 20% 이상 △건물 에너지 관리시스템(BEMS) 설치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린리모델링 제도는 에너지 성능 개선을 위한 건축물 리모델링 시 이자지원사업 등을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의무 사항이 아니므로 단기적인 영향은 작을 수 있으나, 탄소중립 기준 및 규제의 강화로 임차인과 투자자의 자산 선택 기준과 대응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상업용 부동산 업계가 그린리모델링 제도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보고서는 상업용 부동산 업계가 탄소중립 규제 강화에 단순히 방어적 대응에만 나설 게 아니라 사업과 투자의 일환으로 그린 프리미엄 기회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글로벌 부동산 투자자들은 다양한 친환경 인증제도를 활용한 탄소중립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증 활동으로 ESG 관련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개선해 에너지 비용 절감 등 실질적 효과를 누리고 있다.
특히 투자의 관점에서 녹색금융, 지속가능금융 등 다양한 신규 자금조달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도 대표적인 그린 프리미엄이다. 환경개선 목적을 위한 녹색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녹색채권’은 낮은 비용에 장기간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가령 AA- 등급 회사채 3년물의 올해 상반기 평균 금리가 4.00% 수준이라고 할 때, 녹색채권은 1% 후반~2% 중반 사이다. 또한 장기채 비중을 보더라도 녹색채권은 5~10년이 40%, 10년 이상이 54%에 달하는 데 반해, 회사채는 7~10년은 15%, 15년은 5%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국내 녹색채권 발행 사례를 보면 롯데물산이 롯데월드타워&몰 지분 인수를 위해 40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2021년 6월 발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총 인수비용의 29% 가량에 해당되며, 2.01% 금리에 조달기간 3년이다. 톡색건축인증 최우수(1등급) 완료, 신재생에너지를 전체 필요 전력량의 16% 공급 등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같은 해 10월에는 신세계가 장충동의 친환경 도심 연수원 건축에 활용하기 위해 6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총 사업비의 25% 수준으로, 2.39% 금리에 마찬가지로 조달기간은 3년이다. 이 역시 녹색건축인증 예비인증 그린2등급 완료와 함께 올해 12월 준공 전 녹색건축인증 본인증 완료 예정 등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린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가 아니더라도 이제 더더욱 ESG를 배제한 자금조달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외 부동산 투자자들 중 큰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주요 연기금과 운용사들은 이미 위탁운용사나 증권사 등을 선정할 때부터 각 단계별로 ESG 및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점수화하고 있다.
위탁사 선정 후 투자 심사단계에서도 ‘배제전략(네거티브 스크리닝)’이 적용된다. 실 투자 단계에선 앞서 언급처럼 녹색채권, 녹색대출, 녹색펀드 등의 금융상품 개발과 공급이 늘어나고 있으며, 운용단계에선 투자자산(Scope 3)의 탄소배출량을 직접 산정·공시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천명하며, 실제 감축을 위한 전략까지 수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동산 및 건설 관련 데이터 기업인 닷지 컨스트럭션 네트워크가 전 세계 79개국 1207명의 부동산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월드 그린 빌딩 트렌드 2021’ 서베이에 따르면, 이들의 42%가 2024년 그린프로젝트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의 경우 이보다 적은 36% 수준의 응답이었는데, 글로벌 선진국들의 경우 운영비용 절감이나 옳은 일이라는 차원에서 그린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한 반면, 아시아 국가에선 환경규제 등의 의무요소로 인식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이는 추후 글로벌 투자자 풀 확대 등을 위해서는 지금 보다 적극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구체적 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고서를 발간한 이지스자산운용은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발맞춰 투자하는 것이 운영수익 및 자산가치 증대 등 더 나은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길이다”며 “회사가 먼저 준비하지 않으면 브라운 디스카운트를 피할 수 없겠지만, 적극적으로 친환경 체질로 개선한다면 그린 프리미엄 기회를 창출해 투자자와 임차인 모두와 탄소중립시너지를 공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