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호주 야구 대표팀. /연합뉴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호주 야구 대표팀. /연합뉴스

[도쿄(일본)=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8일 개막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출전국들 기량의 상향평준화다.

이번 대회에선 압도적인 약팀이 거의 없다. 16일 오전까지 1승도 올리지 못한 팀은 B조 중국과 D조 니카라과(이상 4패) 두 팀뿐이다.

A조에서는 쿠바, 대만, 네덜란드, 이탈리아, 파나마 5개 나라가 모두 2승 2패로 타이를 이루는 역대급 대혼전이 발생했다. WBC 조직위원회는 세 팀 이상 승패가 같으면, 해당 팀 간 승자승-최소실점률-최소자책점률-팀 타율 순으로 순위를 정한다. 5개 팀이 물고 물린 바람에 승자승 원칙은 무의미해졌고, 최소 실점률(실점/수비 아웃카운트 총합)로 8강 진출 팀을 가렸다.

호주는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세계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2006년 제1회 대회부터 참가했으나 그간 WBC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번 호주 대표팀에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는 외야수 애런 화이트필드(27·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단 한 명뿐이다. 호주프로야구(ABL)의 수준은 세미프로급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호주는 예상보다 강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홈런(7개)을 기록할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했고, 투수력도 기대 이상이었다. 1라운드에서 한국을 8-7로 꺾는 등 B조 2위(3승 1패)로 사상 첫 8강 진출을 일궜다. 8강전에서도 ‘아마 최강’ 쿠바에 3-4로 패했지만, 대등하게 싸웠다. 이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됐다.

야구 변방으로 꼽히던 유럽 팀들의 선전도 눈에 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포수 출신 마이크 피아자(55)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는 1라운드에서 강호 쿠바와 네덜란드를 제압했다. A조 2위(2승 2패)로 2013년 대회 이후 10년 만에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사상 첫 WBC 본선 무대를 밟는 체코 대표팀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 /체코 야구협회 제공
사상 첫 WBC 본선 무대를 밟는 체코 대표팀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주를 이뤘다. /체코 야구협회 제공

체코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유럽에서도 야구 불모지로 꼽히며, 아마추어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려 대회에 출전했다. 선수들 대부분이 생업이 따로 있는 '투 잡러'였다. 체코 대표팀을 이끈 파벨 하딤(52) 감독의 본업은 신경과 전문의고, 에이스 마르틴 슈나이더(37)는 소방관이다. 외야수 아르노슈트 두보비(31)는 고등학교 지리 교사, 투수 마레크 미나르지크(30)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한다.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체코 선수단은 유럽 지역 예선에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을 제치고 사상 첫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10일 중국과 경기에서 8-5로 이겨 WBC 본선 첫 승리를 신고했고, 일본과 한국전에서도 선전하며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일본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는 체코전을 마친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체코 대표팀 사진과 함께 'Respect(존경)'라고 적었다.

또한, ‘축구 종가’지만 야구에선 약체로 여겨지는 영국도 14일 콜롬비아와 1라운드 C조 경기에서 7-5로 승리하며 역사적인 WBC 첫 승을 올렸다.

WBC는 ‘야구의 세계화’를 표방하며 출범한 대회다. 취지에 맞게 전체적인 대회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 간 실력 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홀로 퇴보한 한국 야구에 경종을 울린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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