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본)=한스경제 이정인 기자] 한국 야구가 또 국제무대에서 고개를 숙였다. 2020 도쿄올림픽 ‘노 메달’에 이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맛보며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이후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는 한국 야구는 ‘도쿄 참사’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강철(57·KT 위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13일 중국과 경기를 끝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승 2패로 B조 3위를 기록했다. 2위 안에 들지 못해 2라운드(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 2017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대표팀은 14일 귀국길에 올랐다.
이강철호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된 원인은 다양하지만, 특히 전지훈련지 선택, 호주전 경기 운영, 벤치의 용병술 부재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 ’약속의 땅’ 아니었던 애리조나
이강철호는 지난 2월 중순 지구 반대편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대표팀 전지훈련지로 애리조나를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강철 감독이 지휘하는 KT가 투손에서 훈련한다는 점, KT를 포함해 프로 10개 구단 중 6개 구단이 키노 스포츠콤플렉스에서 가까운 편인 애리조나주에서 시즌을 준비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그러나 애리조나 전지훈련은 ‘악수’가 됐다. 올해 애리조나는 이상 기후 문제로 예년처럼 따뜻한 날씨가 유지되지 않았다. 투수들은 예상치 못한 추위때문에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애를 먹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제대로 된 피칭 훈련을 할 수 없었다. 실전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대표팀은 투손에서 5차례 연습 경기를 계획했지만, 일정대로 소화한 경기는 3경기뿐이다. 또 대표팀 선수들은 이동 및 시차 적응 문제로 고생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에 선수들은 녹초가 됐다. 투수 박세웅(28·롯데 자이언츠)은 “애리조나 날씨가 추웠고, 이동 및 시차 적응 문제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땐 비행기 문제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보통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팀들은 개최지 혹은 개최지 인근에서 현지 적응 훈련을 하고 실전 대회에 돌입한다. 같은 조 일본 대표팀은 일찌감치 일본 미야자키에 캠프를 차리고 컨디션 조절에 집중했다. 호주 대표팀도 한국보다 약 열흘 먼저 일본으로 이동해 현지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이동 및 시차 적응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일본과 호주는 1라운드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했다.
◆ ‘올인’하지 않는 호주전
호주전은 8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했던 경기다. 일본전을 놓치더라도 호주전을 잡으면 3승 1패로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대표팀도 엔트리를 구성할 때부터 1라운드 첫 경기인 호주전에 초점을 맞췄다. 이강철 감독은 “호주전 올인(All-in)”을 외쳤다.
하지만 대표팀은 호주전에서 총력전을 펼치지 않았다. 승부처에서 에이스 김광현(35·SSG 랜더스)을 기용하는 것을 주저했다. 한일전을 염두에 둔 채 소극적으로 마운드를 운용했다. 김광현은 선발 고영표가 흔들리던 4회부터 몸을 풀었으나 끝내 등판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표팀은 7회와 8회 연거푸 3점짜리 홈런을 맞으며 호주에 7-8로 무릎을 꿇었다. 호주전 패배로 큰 부담을 안게 됐고, 결국 다음날 열린 한일전에서 4-13으로 대패했다. 어설프게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 셈이다.
◆ 실종된 ‘강철매직’
통산 152승 투수 출신의 이 감독은 KBO리그에서 투수 조련과 마운드 운용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2017 아시아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대표팀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2021년 KT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며 지도자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단기전에선 선수 개개인의 능력만큼이나 벤치의 용병술이 중요하다. 투수 전문가인 이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서 전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호주전에선 한 박자 늦은 투수 교체 타이밍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전에선 이해하기 힘든 마운드 운용으로 대패를 자초했다.
대표팀의 마운드 운용은 치밀하지 못했다. 선발 로테이션 자체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발 순서를 정해놓은 일본과 큰 차이를 보였다. 특정 투수들에게 의존하는 마운드 편중 현상이 심각했다. 이 감독도 중국전이 끝난 뒤 ‘과거 WBC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와 이번 대회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때는 선발과 불펜을 확실하게 정했다. 이번에는 야수보다는 투수 성적이 안 좋았다. 제가 생각한 대로 뽑았으나 어긋나지 않았나 싶다. 확실한 선발을 정했어야 하는데, 제가 부족해서 성적이 안 나온 것 같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정인 기자 lji20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