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위병과 탈레반, 그리고 팬덤. 셋 사이 공통점은 광기다. 문화대혁명(66~76) 시기 홍위병은 근대 중국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권위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분이었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2~3년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짧은 동안 수많은 지식인은 죽고 문화유산은 파괴됐다. 광기 아래서 모든 합리와 상식은 부정됐다. 마오쩌둥에 맞선 지식인과 예술인, 정치인은 조리돌림 당하며 수모를 겪었다. 유소기(劉少奇) 국가 주석부터 홍위병이 다니던 학교 교장까지 예외는 없었다. 문화유산과 유적도 때려 부셨다. 공자 사당을 허물고 책을 불살랐다. “시골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있고 나서야 멈췄다. 5000년 역사는 회복하기 힘들 만큼 파괴된 뒤였다.
중학생부터 대학생이 홍위병으로 활동했다. 공교롭게 탈레반도 아프가니스탄어로 ‘학생들’이다.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비(非) 이슬람문화 배척, 문화유산과 유적 파괴, 여성인권 유린을 일삼았다. 이들에게 테러와 폭력은 신념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은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여성은 학교는커녕 온 몸을 가리지 않으면 외부 출입조차 할 수 없었다. 어길 경우 매질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잃었다. 문화유적을 파괴하는 행태 또한 홍위병과 흡사했다. 탈레반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다. 소중한 인류 유산이 탈레반 광기에 의해 한줌 먼지로 사라졌다.
홍위병과 탈레반에게 사유하는 능력이 없었다. 인간은 사유하지 않을 때 광기에 휩싸인다. 유대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했다. 2차 대전 당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니 무죄”라고 항변했다.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는 이렇게 정리했다. ‘악인은 정해진 게 아니다. 누구라도 사유하지 않을 때 악인이 될 수 있다.’ 놀라운 통찰이었다. 홍위병과 탈레반도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 무죄일까. 보스니아 내전, 6.25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광기에 휩싸여 날뛰었다. 이들은 완장을 찬 채 어제까지 인사하며 지낸 이웃집 주민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팬덤 정치 또한 홍위병, 탈레반과 궤를 같이한다. 우리 정치에서 팬덤은 특정 정치인과 신념을 공유하는 정도를 넘어섰다. 집단 극단화로 똘똘 뭉쳤다. 내 편은 한 없이 관대하고 상대는 작은 허물도 넘기지 않는다. 팬덤 정치 아래서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 반면 상대는 오류투성이며 개혁 대상이다. 한쪽은 무오류, 다른 한쪽 악마화는 진영대결을 초래했다. 편을 가르는 팬덤 정치는 가장 큰 해악이다. 끼리끼리 편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팬덤은 홍위병, 탈레반과 다르지 않다. 패거리 지어 공격하는 행태도 비슷하다. 민주당 ‘처럼회’에 극단주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신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여론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처럼회 회원 대부분은 초선 의원이다. 이들은 타협과 협치를 굴종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공격과 대결을 미덕으로 삼는다. 처럼회 소속 황운하 의원은 대놓고 자신들이 근본주의자임을 드러냈다. 그는 “처럼회는 계파 모임이 아니다. 정치나 검찰 개혁 과정에 기꺼이 순교자가 될 수 있다는 헌신의 각오가 돼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근본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순교’라는 표현을 국회의원이 들먹이고 있다는 게 놀랍다. 자신들은 절대선이며, 이를 저지하는 세력은 악마라는 대결 구도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가볍게 쓸 표현은 아니다. 민형배 의원 탈당도 연장선상에 이해된다. 자신들은 옳다는 그릇된 열정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꼼수‧편법 탈당이라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처럼회에게 검찰은 악이고, 검찰 개혁은 선이다. 나아가 탈당은 정의를 실현하는 고뇌에 찬 결단이다. 이런 논리 구조아래서 탈당은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전환된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민 의원은 이런 의중을 드러냈다. 그는 “아직 당에서 복당 요청이 없어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당을 위해 희생했으니 당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들에게 민주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새겨들으라고 조언하다면 순진하다. 당을 위해 순교했다고 믿는 그들이다. 이정도면 집단 최면에 빠진 병적 심리상태는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민주당이 상식적인 정당으로 거듭나려면 극단화를 경계해야 한다. 탈레반이나 홍위병 속성을 지닌 팬덤 정치를 극복하는 게 우선 과제다. 팬덤에 편승한 처럼회가 계속 당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렌트가 제시한 ‘사유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쓴 소리할 수 있는 원로와 어른이 절실하다. 민주당 안에서 김원기 정세균 이낙연 문희상 유인태는 원로 정치인이다. 이들이 제대로 어른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논외다. 유인태와 문희상 정도만 이따금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나침판은 끊임없이 떨면서 북극과 남극을 가리킨다. 어른이라면 민주당이 더는 중심을 잃고 치우치지 않도록 나침판 역할을 맡아야 한다.
<엄마를 부탁해> 첫 문장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한다. 소설은 엄마의 부재를 통해 엄마의 역할을 돌아본다. 민주당 상황에 대입하면 “어른을 잃어버린 지 수년째다” 정도가 되겠다. 3연패와 함께 표류하는 민주당에 어른이 필요한 이유다. 원로라면 극단적인 이들에게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와 서초동 윤석열 대통령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에게도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숨죽이고 눈치를 보는 대신 적극 나서야 한다. ‘처럼회’ 또한 자신들이 정의라고 믿는 신념이 얼마나 공동체를 황폐화시키는 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홍위병, 탈레반들과는 달라야하지 않겠는가.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yb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