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에는 12월 9일 첫눈이 내렸다. 전날 KBS는 “늦어도 너무 늦다. 서울에 내일 새벽 첫눈이 올까요?”라며 늦은 첫눈 소식을 전망했다. 지난해 첫눈은 한 해 전(2019년 11월15일)보다 25일, 평년(1981∼2010년 30년 평균)보다 19일 늦었다. 기상청은 서울지역 첫눈은 2000년 이후 가장 늦었던 2003년(12월8일)보다 이틀 더 늦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올해 첫눈은 도대체 얼마나 늦은 걸까. 어제(18일) 기말시험 출제를 위해 학교에 갔다가 선물 같은 첫눈을 만났다. 주말임에도 첫눈이 내린 캠퍼스는 학생들로 떠들썩했다. 올해 첫눈은 지난해보다 9일 늦었으니 2019년보다는 34일, 평년보다는 28일 늦은 셈이다. 역대 가장 늦다.
눈이 내리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설렌다. 첫눈이라면 더 그렇다. 그 순간만큼은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다. 어수선한 대선 정국에서 올해 첫눈이 주는 효능감은 더욱 크다. 유력 후보와 가족을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는 탓에 첫눈 소식은 더없이 반가웠다. 눈은 정서적으로도 유용하지만 기후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한데 갈수록 눈을 보는 게 이전만 못하다. 유년시절에는 첫눈도 빨랐고 한 겨울이면 무릎까지 눈이 쌓였다. 텅 빈 들판이 순백으로 변하면 온 동네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며 한겨울 추위를 잊었다. 인간의 탐욕에서 초래된 지구 온난화로 지연된 첫눈 소식과 이상기후는 어느덧 일상이 됐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기후재앙이 심했다. 산불이 세 달 넘게 타고, 극지방 빙하는 녹아내리고, 큰 비가 내려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엊그제 미국 동남부는 사상 최대 규모 토네이도로 100여명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폭염, 산불, 폭우, 홍수, 한파, 태풍까지 기상재해와 기후재앙은 흔한 일이 됐다. 이 모든 걸 인간이 초래했다. 산업화 이전 1800년 동안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 사용량보다 산업화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에너지 사용량이 100배 이상 많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자연환경과 생태가 파괴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상기온과 기후재앙은 지구가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신음이자 경고음이다.
“그린란드 빙상에서 처음으로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 깊은 바다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전 세계가 황폐해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기상기구(WMO) 2021년 ‘기후 현황 보고서’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기후재앙은 히말라야 오지부터 잘 사는 유럽 대도시까지 무차별적이다. 올해 언론은 150년 만의 폭염, 100년 만의 폭우, 불타는 동토 시베리아, 물에 잠긴 유럽 소식을 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세달 넘게(7월 13~10월 25일) 불탔다. 마을까지 덮친 산불을 피해 탈출하는 자동차 행렬과 뿌연 연기와 재로 뒤덮인 현장은 끔찍한 재난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인도 북부에서는 2월 홍수로 83명이 숨지고 121명이 실종됐다. 따뜻한 날씨로 인한 ‘빙하 붕괴’가 원인이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 빙하가 녹아 호수로 유입되면서 발생했다. 해양학자들은 빙하가 다 녹을 경우 해수면 상승으로 수많은 도시가 물에 잠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주불능 2050>에서 저자는 물에 잠길 도시를 실감나게 제시하고 있다. 영국 남극자연환경연구소는 남극에서 가장 큰 스웨이츠 빙하가 3~5년 이내 산산조각 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둠스데이(지구종말)’로 불리는 스웨이츠 빙하(19만2,000㎢)는 한반도 전체 면적과 맞먹을 만큼 거대하다. 지난 30년간 스웨이츠 빙하는 녹는 속도가 두 배가량 빨라졌다.
학자들은 “스웨이츠 빙하만 녹으면 60㎝가량, 주변 빙하까지 가세하면 3m 이상 해수면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경우 섬나라 투발루는 가장 먼저 물에 잠기는 나라가 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북극권 온도가 섭씨 38도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베르호얀스크’가 지중해 날씨로 변한 것이다. 이상고온 탓에 시베리아는 올 여름 16만1,356㎢이 불탔다. 한반도 전체 면적의 4분의 3에 달하는 광활한 땅이다.
반면 지난 2월 따뜻한 미국 텍사스에는 30년 만의 한파가 찾아왔다. 폭설과 함께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면서 인명 피해는 물론 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었다. 그 즈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폭염으로 일주일 만에 719명이 숨졌다. 같은 북미대륙에서 북쪽은 폭염으로, 남쪽은 한파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기후재앙 외로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서유럽 독일과 벨기에는 ‘100년 만의 폭우’로 최소 240명이 숨졌다. 이처럼 지구온난화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독일 메르카토르 기후변화연구소는 “이미 전 세계 인구의 85%가 폭염과 폭우, 가뭄 등 기후재앙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가 실체적 위협이 된지 오래지만 우리사회는 둔감하다. 생태적 상상력은 결여된 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미덕으로 삼고 있다. 역대 최고 비호감이 된 20대 대선에서도 환경정책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고나면 불거지는 후보와 가족을 둘러싼 추문 때문에 정책 선거는 실종됐다. 국민들은 언제까지 이런 선거를 지켜봐야하는지 자괴감이 깊다. 국민들 눈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나 둘 다 도덕성에선 마찬가지다. 이제라도 ‘도낀개낀’ 네거티브 선거를 중단하고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지 생산적인 담론에 주력하는 게 맞다. 생명과 직결된 기후변화 정책을 우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첫눈의 설렘을 미래세대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다른 어떤 정책보다 의미 있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yb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