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아베 없는 3번째 아베 내각' 평가…극우성향 등 아베 측근 요직에 포진
강제징용·위안부합의 등 과거사문제 해결없이 수출규제 풀지 않을 듯
지난달 29일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이 도쿄 자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일본의 100대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가 4일 공식 취임했다. 일본 내에서도 '아베가 없는 3번째 아베 내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과거사 문제와 일본정부의 불합리한 수출규제 등으로 냉랭해진 한일관계가 당장 개선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기시다 신임 총리는 일본 정치권에서 대표적 '정치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과거 박근혜정부 시절 '한일위안부 합의'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이러한 배경을 적용하면 '아베-스가-기시다'로 이어지는 3번째 '아베 내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문에 관련 전문가들은 '한일관계 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번 기시다 내각에는 '아베 측근'으로 알려진 정계 인사들이 요직에 포진했다. 지난 3일 요미우리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과 아베-스가 정권을 거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을 유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총리관저 2인자인 관방장관에는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이 내정됐다. 마쓰노 전 문부과학상은 지난 2012년 당시 아베 자민당 총재 등과 미국 뉴저지주 지역지 '스타레저'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는 광고를 실은 인물이다. 그가 문부과학상이었던 2017년에는 일본정부가 초등·중학교 사회 과목에 '다케시마(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교육을 의무화하는 학습지도요령을 확정하기도 했다. 

 

새 재무상은 아베의 '맹우(盟友)'로 불리는 스즈키 순이치 전 환경상이, 경제산업상에는 아베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자민당의 정책을 관장하는 정무조사회장은 아베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아 총재 선거에 출마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기용됐다. 그는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 "적기지 무력화를 위해 헌법의 정비가 필요하다" 등 발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극우성향을 드러내왔던 인물이다. 

 

이영채 게이센여학원대학교 교수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기시다 총리가) 총재 선거에서 자신의 힘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고, 실제 막후 세력은 아베·아소 세력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단기적으로는 아베·아소파의 지지를 받으면서 11월 중의원 선거를 통해 자기 세력이 확대됐을 때 한국과의 관계 개선 등 '자기 정책'을 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시다 총리 취임을 시작으로 일본은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돌입한다. 14일 국회를 해산한 뒤 내달 7일, 또는 14일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의원 선거가 끝나면 내년 7월에는 참의원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기시다 총리로서는 이번 중의원선거가 '자기 정치'를 펼치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으로 만약 패배한다면 사실상 '단기 내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호사카 유지 세종대 대우교수는 지난달 3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기시다 후미오라면 배후는 아베이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아베 정치가 연장되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가 조금 있다"며 "야당 측은 (그 부분을) 알고 있어서 (이번 총선을) 해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호사카 교수는 "기시다도 (자신을 대중들이 반기지 않는다는 평가) 그것을 의식해 어제(9월 29일) 고노 다로와 노다 세이코 등 인기있는 사람들을 내각에 기용하겠다 (고 밝힌 것)"이라며 "고이즈미 신지로라든가,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여야만 중의원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기시다의 전략"이라고 짐작했다. 

 

또한, 호사카 교수는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이어온 공명당이 "연립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왜냐하면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와 스가 (전) 총리가 사실상 공명당과 자민당의 '파이프라인'이었지만, 아베는 공명당과 실질적인 '파이프라인'이 없다. 아베와 공명당은 노선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기시다 후미오 집권 자민당 총재가 1일 오후 도쿄도 소재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임시 총무회에서 주요 간부와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왼쪽부터 엔도 도시아키(遠藤利明) 선거대책위원장,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 총무회장, 기시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간사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 / 연합뉴스 

'기시다 내각'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결국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YTN 라디오 '생생경제'에 출연해 "(기시다 총리가) 아베-아소라고 불리는 자민당의 기득권 세력이 뒤에서 지원해줌으로써 당선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아베-스가 노선과 다른 노선을 걸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원덕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내건 것은 '아베노믹스'를 일부 계승하고 성장에 동력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분배 쪽으로 초점을 맞춰서 가겠다는 것"이라며 "여전히 비관론이 높다고 본다. 일본산업의 경쟁력이 과거보다 약화됐고,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되면서 일본기업·경제의 활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져있는 부분을 한 두개 정책으로 성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수출규제 문제에 관해서는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결국 내려놔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은 된다"며 "(다만) 그 이전에 수출규제를 왜 하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징용문제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띠고 나온 것이다. 결국 징용문제와 위안부합의 문제를 링 위에서 (패키지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일본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개선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는 지난 1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국민들이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실망하고 있지만 기시다 총재는 스타일이 다르다"며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니시노 교수는 "기시다 총재가 중의원 선거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이겨야만 안정적으로 정권 운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특히 한국에서도 대선이 있기 때문에 다음 정부 출범까지는 관계개선보다 관리 국면으로 갈 것"이라며 "다만 국제질서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점은 변수다. 한·미·일 협력이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일이 어떻게 보조를 맞출지 (기시다 총리도) 고민은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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