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도 '병역 의무'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다. 과거 리그 대표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았다. 대표팀에 뽑히지 못해도 실력이 있으면 상무(국군체육부대)나 경찰야구단에 입대해 복무 기간에 퓨처스리그(2군)에서 야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경찰야구단이 해체되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야구의 입지가 불안정해지면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선택지가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실전 경험과 현역 복무를 병행할 수 있는 상무의 경쟁률은 수직 상승했다. 올 초 상무 서류전형에 합격한 32명 중 최종 합격한 선수는 14명에 그쳤다.
과거엔 현역 입대가 선수 생활에 손해라는 인식이 강했다. 2년 가까운 실전 공백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상무와 경찰야구단에 합격하지 못한 선수들이 어쩔 수 없이 현역으로 복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역 복무기간이 줄어들면서 선수들의 현역 입대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물론 상무에 입대해 실전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막연히 상무 입대를 고집하기보단 차라리 빨리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역병을 선택하는 선수가 많아졌다. 수도권 A구단 관계자는 "병역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줄어들고 현역 복무 기간이 줄어들면서 분위기가 예전과 달라졌다"며 "구단에서도 당장은 1군에서 경험을 쌓기 어렵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육성해야 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현역 입대를 권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선수 생활을 꽃피우는 선수들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LG 트윈스에는 서건창(32), 채은성(31), 김용의(36) 등 현역병 출신이 3명이나 있다. 서건창은 육군 31사단에서 복무했고, 채은성과 김용의는 큰 키와 마른 몸매 덕에 의장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KIA 타이거즈 박찬호(26), 롯데 자이언츠 정훈(34), KT 위즈 박시영(32)도 대표적인 현역병 출신이다. 박찬호는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청와대 외곽 경비를 맡았고, 정훈은 육군 9사단에서 81mm 박격포병으로 복무했다. 박시영은 최전방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올 시즌 후반기에도 '진짜 사나이'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전차대대 출신 김태연(24)은 후반기 한화 이글스의 최고 히트 상품이다. 15일 1군 등록된 이후 24일까지 7경기에서 타율 0.462에 1홈런, 8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209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22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선 5타수 3안타 4타점으로 대활약 했다.
지난 5월 전역한 김태연은 실전 공백이 무색하게 더 강해져 돌아왔다. 카를로스 수베로(49) 한화 감독은 "김태연이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다는 점이 놀랍다. 상무와는 다르게 야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빨리 적응해서 1군에서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게 놀랍다"고 혀를 내둘렀다.
2019시즌이 끝난 뒤 현역으로 입대한 김태연은 군대에서 전차 탄약을 들고 나르는 탄약병으로 일했다. 현역으로 복무하면서도 야구를 잊지 않았다. 그는 TV로 야구 중계를 볼 때도 '저 상황에서 투수는 어떤 공을 던질까?', '내가 타석에 있었다면 어떤 공을 쳐야 할까?'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부대장님이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하셔서 나름대로 야구 감각은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바다 사나이' 최보성(23)은 초토화 된 NC 내야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후반기 들어 처음 1군에 올라온 그는 15일 대전 한화전서 2-2로 팽팽하던 9회 초 첫 안타이자 첫 타점을 기록하며 역전을 만들어 냈다. 20일 창원 LG전에선 2회 초 1사 1,2루의 위기에서 김재성(25)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 병살로 처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8년 2차 7라운드 69순위로 입단한 그는 1년을 뛰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해군 상륙함인 노적봉함에서 갑판병으로 복무했다. 최보성은 갑판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절치부심했다. 어린 나이에 군 문제를 해결한 그는 "군에 다녀와서는 생각이 잡혀서인지 더 집중력을 가지고 열심히 하게됐다"며 "빨리 다녀오면 신경 쓸 것이 없으니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