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한국 7인제 럭비 대표팀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며 1923년 국내에 럭비가 도입된 뒤 약 100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올림픽 출전 자체가 기적이다. 럭비 강국 일본이 올림픽 개최 자격으로 아시아 예선에서 빠지면서 한국에 기회가 왔다. 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인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는 홍콩에 12-7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에 배정된 단 1장의 도쿄올림픽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한국 럭비의 '위대한 도전'은 26일 막을 올렸다. 서천오(54)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날 도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7인제 럭비 A조 첫 경기에서 뉴질랜드에 5-50(5-14, 0-36)으로 졌다.
한국은 럭비 변방이다. 실업팀 3개(한국전력공사·포스코건설·현대글로비스), 대학팀 4개(연세·고려·경희·단국대)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반면 뉴질랜드는 럭비 월드컵(15인제)에서 9회 우승한 럭비 강국이다. 전통적으로 검은색 유니폼을 착용해 '올블랙스'로 불리고, 경기 전 마오리족의 전통 춤인 '하카'를 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제 럭비를 총괄하는 '월드 럭비'의 2018년 연례 보고서를 보면, 한국 럭비 남녀 등록선수는 987명, 총 선수는 4452명에 불과하다. 뉴질랜드는 인구 500만명 중 16만 명이 선수로 등록돼 있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예상대로 객관적인 전력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패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세계 최강 뉴질랜드를 상대로 역사적인 올림픽 첫 득점을 기록하며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겼다. 대표팀 에이스 정연식(28·현대글로비스)은 0-7로 뒤진 전반전 5분 48초에 장용흥(28·NTT 커뮤니케이션스)의 패스를 받고 코트 오른쪽의 빈자리를 파고들어 쏜살같이 달렸다. 이어 상대 팀 골라인 안에 볼을 내리찍으며 트라이에 성공했다. 이 땅에 럭비가 들어온 지 98년 만에 이룬 쾌거다. 올림픽 첫 득점이 나오자 한국 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듯 서로 부둥켜 안고 역사적인 순간을 자축했다.
대표팀은 이날 오후 호주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도 5-42(0-21, 5-42)로 졌다. 0-28로 뒤지던 후반 2분21초, 귀화 선수 안드레 진 코쿼야드(한국명 김진)가 트라이를 성공하며 영봉패를 막았다. 27일 오전에 열린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선 0-56(0-28, 0-28)로 패했다.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3전 전패로 조별리그를 마무리했다.
럭비인들은 이번 올림픽이 한국 럭비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봤다. 비록 올림픽 무대서 기적을 연출하진 못했지만, 한국 럭비는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럭비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최창렬(51) 서울스컬스 7인제 럭비팀 감독은 27일 본지와 통화에서 "이번 대회 출전으로 우리도 올림픽 무대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며 "우리는 예전보다 경기 수도 적고 팀 수도 적어졌지만, 다른 국가들은 기량이 점점 발전하는 추세다"라고 짚었다. 이어 "이번 올림픽에선 일본이 개최국이서 빠졌지만, 다음 올림픽 때는 일본과 경쟁해야 한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7인제 럭비 대회를 활성화해서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외국인 선수의 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은 27일 아일랜드와 9-12위 순위 결정전서 0-31(0-10, 0-31)로 패했다. 11-12위 결정전으로 내려가며 28일 오전 숙적 일본을 상대로 올림픽 첫 승에 도전한다. 일본 도쿄의 심장인 도쿄 스타디움서 한국 럭비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일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정인 기자 lji20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