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 내달 23일까지 40일간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노·사 양 측 모두 반발… "책임자 의무 포괄적"·"질병 범위 너무 좁아"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정부 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김준희 기자] 산업재해 사고 발생 시 기업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이 공개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 양 측 모두 불만이다. 어느 한 쪽의 요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이번 제정안을 두고 일각에선 정부가 현실적 대안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이달 12일부터 내달 23일까지 40일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확보 의무에 위반해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사망 시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10억원 이하, 부상·질병 시 징역 7년 이하 또는 벌금 1억원 이하에 처한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번 시행령 제정안에는 중대산업재해의 직업성 질병 범위, 중대시민재해의 공중이용시설 범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 등 중대재해법에서 위임된 내용과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담았다.

 

직업성 질병으로는 급성 중독 등에 따른 질병 24개 항목을 규정했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은 실내공기질관리법상 ‘다중이용시설’을 대부분 적용하되 실내 주차장, 오피스텔·주상복합, 전통시장 등은 제외했다.

 

또 사업주·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구체화하고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교육 이수 및 과태료 부과,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형이 확정된 사업장의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내용 및 방법 등에 대한 규정을 담았다.

 

이날 입법예고에 들어간 시행령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핵심은 법안에 명시된 책임 범위나 의무 등이 ‘모호한 표현’으로 서술돼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논평을 통해 “경영 책임자의 의무 등 많은 부분이 여전히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어느 수준까지 의무를 준수해야 처벌을 면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직업성 질병 목록만 규정하고 중증도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재해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또한 “경영책임자 등이 이행해야 할 의무 범위가 적정한 예산, 충실한 업무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돼있고 법률에서 위임한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등 불명확한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의 구체적 내용으로 ‘적정 인력 배치 의무’, ‘적정 예산 편성 의무’, ‘관계법령은 특정하지 않고 필요한 조치 지시’ 등 특정 기준 없이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노동계는 직업성 질병에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게질환, 직업성암 등 발생 빈도가 높은 질병이 제외된 점을 문제 삼았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급성중독 위주로 한정한 정부의 시행령 초안은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돼 있다”며 “이렇게 되면 중증 직업병 환자가 여럿 발생하더라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한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게 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통해 “2인 1조 작업·신호수 투입 의무화 등 노동시민사회가 요구해온 핵심적인 안전조치를 누락시키고 안전보건 관리상 조치를 외부 민간기관에 외주화하는 길을 열어둬 부실 점검·책임 회피가 가능해지는 등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에 후퇴되는 내용들이 담겼다”고 비판했다.

 

포털 여론도 엇갈린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찬성 입장을 보이는 이용자도 있는 반면 “현장에서 안전규칙을 아무리 우선시해도 피치 못하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무조건 처벌하는 건 가혹한 것 같다”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이용자는 “중대재해법은 기본적으로 형법이므로 고의성이 있어야 하고 인과관계와 처벌받을 사람이 명확해야 하는데 이건 단순히 기업주에게 무한 책임을 지게 하는 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현실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입법에만 급급해 업주들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 씌우는 분위기"라는 의견을 보였다.

 

결국 경영계와 노동계 어느 한 쪽의 요구도 제대로 담지 못한 채 모호한 표현 등으로 산업계에 혼란만 가중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다양한 목소리를 좀 더 듣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중 노·사 등에서 제안하는 다양한 의견을 충실히 검토해 시행령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준희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