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체육인들의 선택은 이기흥이었다. 근소한 차이도 아니었다. 과반에 육박하는 체육인들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기흥 제41대 대한체육회장 당선인(이하 당선인)은 18일 끝난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46.4%(915표)의 높은 득표율로 강신욱(25.7%), 이종걸(21.4%), 유준상(6.5%) 후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승리했다. 4자 대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압도적 승리다. 이번 선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현장 투표가 아닌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투표로 이뤄졌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4년 전 63.49%보다 훨씬 높은 90.97%(전체 2170명 중 1974명 투표) 투표율을 보였다. 체육의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그 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이런 변화의 목소리가 이기흥 당선인으로 향했다. 왜 그럴까. 왜 체육계는 이기흥 당선인을 선택했을까. 그 이면을 짚어봤다.

◆체육계 적폐로 내몰렸던 이기흥
"지도자들이 선수들에게 부당 행위를 자행하는 것을 뿌리 뽑겠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쇄신하겠다." 이기흥 당선인은 2019년 1월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폭행과 성폭행 사건으로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체육계 폭력 행위를 뿌리뽑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기흥 당선인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 지난해 6월26일 최숙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선수가 감독 등 소속팀 관계자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최숙현 선수는 견과류를 먹었다는 이유로 감독에게 폭행 당했고, 회식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20만 원어치 빵을 삼켜야 했다. 이기흥 당선인은 지난해 7월6일 국회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조직 문화를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2019년과 비슷한 발언이다.
체육계 폭력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3년 수구 선수들이 여자 선수 탈의실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 적발된 일이 있었다. 대한수영연맹은 이들을 영구제명 했지만, 단 3개월 만에 이들의 선수 자격은 부활했다. 당시 수영연맹 회장이 이기흥 당선인이었다. 2015년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여자 선수들을 성추행한 빙상 실업팀 지도자를 영구제명 했다. 하지만 이듬해 선수위원회 재심을 통해 해당 지도자들의 처벌을 3년 자격정지로 줄였다. 이기흥 당선인은 당시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경쟁 후보들이 이기흥 당선인을 '체육계 적폐'로 규정하고 출마 자격을 문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기흥 당선인은 압도적 지지로 역대 대한체육회장 중 세 번째로 연임에 성공했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향한 열망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파문 등 숱한 구설에도 체육인들은 왜 이기흥 당선인을 선택했을까.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파문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이전 박근혜 정권에서도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의 과도한 행정 개입으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후 체육계 폭력•성폭력 파문이 있기 전까지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의 자율성 보장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체육계 폭력•성폭력 파문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도종환 전 문체부 장관은 2019년 조재범 성범죄 파문 당시 체육계 비리 근절 대책 회의에서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균형 육성을 위해 대한체육회로부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검토, 합숙훈련 폐지 등 선수 양성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기조는 현 박양우 문체부 장관 재임 기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KOC와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분리는 불가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체육인도 거들었다.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소년체전은 한국 스포츠의 근간"이라고 맞불을 놓으면서 "적정 수준의 합동 훈련은 필요하다"고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현직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팀 A감독은 이번 선거를 되돌아 보며 체육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는 "체육계 (성)폭력 사태에 체육계 일원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통감하지만 정부 주도의 쇄신은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면서 "올림픽 등 국제대회마다 선수단 메달 수를 국위선양 지표로 주도해 발표한 건 정부다. 체육계 내부에서도 반성과 자정 목소리가 높다. 체육계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해주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정치인 출신의 이종걸 후보와 유준상 후보가 저조한 득표를 한 반면 이기흥 당선인과 단국대 국제스포츠학부 교수 출신의 강신욱 후보가 최다 득표율 1, 2위를 차지했다. 체육계 내부에 퍼진 자율성과 독립성을 향한 열망의 표현으로 읽힌다. 새로운 미래 100년의 한국 체육의 토대를 다지기 위해 체육계 독립과 자율이 보장돼야 한다는 체육인들의 바람을 등에 업고 체육회장에 당선 된 이기흥 당선인이 체육계 변화와 개혁의 선봉장이 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지 체육계 안팎의 이목이 그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박대웅 기자 bdu@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