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성노 기자] 한국전력이 수주가 유력했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었다. 영국 정부가 새로운 사업 방식 도입을 추진하자 원사업자인 일본 도시바 측이 과도한 운영비 지출이 부담된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탈원전정책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줬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도시바는 뉴젠(NuGen) 지분매각이 새로운 사업모델 검토로 지연됨에 따라 과도한 운영비 지출 문제 등으로 타 업체와 협상 기회를 갖기 위해 지난달 25일 한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해지를 통보했다.
◇지위 잃었으나 여전히 최우선 협상 대상
다만, 협상과정에서 한전의 실질적 지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도시바는 "한전이 새로운 사업방식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임을 충분히 공감하고, 한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협상을 지속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 정부 역시 "한전에 대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에 준하여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을 위한 한국과 협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업체와 협상을 할 예정이지만, 한전은 여전히 최우선 협상대상자라는 이야기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도시바로부터 뉴젠(도시바 지분 100%)의 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산업부와 함께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의 수익성과 리스크 경감방안에 대해 도시바, 영국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왔다.
하지만 양측의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지난 6월 재정균형을 고려해 신규 원전사업에 새로운 사업방식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도시바는 한전을 비롯해 타 업체와도 협상을 원했고, 결국 한전이 우선협상대상자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애초 영국 원전사업은 발전차액정산제도(CfD)를 채택했으나 지난 6월 민간 재원조달 방식의 규제자산기반(RAB) 모델을 적용하기로 했다. CfD는 사업자가 건설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완공 뒤 30여 년간 영국 시장에서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다. 이에 반해 RAB 모델은 정부 규제기관이 안정적 수익률을 보장하고, 정부지원 등으로 재원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사업 모델이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뚜렷하다. 우선 CfD는 건설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향후 관리까지 떠맡아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 수익 규모 역시 어느 것도 보장된 것은 없지만, '대박'을 기대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모 아니면 도'인 사업 방식이다. 반면, RAB 모델은 CfD와 비교해 수익성은 낮지만 정부의 보증이 있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수익성은 떨어진다.

표면적으로 사업방식이 RAB 모델로 바뀌면서 한전과 산업부가 원하는 투자 리스크와 수익성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전과 산업부 모두 아직까지는 "어떤 사업 방식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업방식 변화로 리스크 감소, 수익성 '글쎄'
한전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 구조에 대해 수익성과 리스크를 검토한 뒤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이번 원전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새로운 모델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검토하고 하고 있다"며 "금융권에선 기존 CfD 방식과 비교해 RAB 모델이 리스크 분산 효과가 있는 만큼 수익률은 다소 낮아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표면적으로는 투자 리스크를 줄이려고 했던 한전과 산업부에 RAB 모델이 적합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단서를 달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산업부에 따르면 RAB 모델은 상하수도 사업에 적용된 사례는 있지만, 아직까지 원전 사업에 적용된 적은 없다. 또한 현재 영국 정부에서 RAB 모델에 대해 위험 리스크와 수익성 보장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발표하지 않은 점도 마냥 'RAB 모델 적용이 협상에 긍정적인 기류'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RAB 모델에 대한 조사와 영국 정부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발표가 나온 뒤에 판단할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산업부와 한전은 지난달 30일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와 RAB 모델 도입에 따른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산업부는 RAB 모델 적용시 수익성 및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한 공동타당성연구 착수회의도 개최했으며 이를 통해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도출할 경우 한전 내외부심의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한전·도시바간 공동연구가 완료되고 수익성 및 리스크 경감방안이 확보되면 한전은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사업 참여를 위한 사내 심의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관은 1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영국 원전사업 수주에 영향을 끼쳤다는 일부 보도에 '사실무근'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는 "6개월간 협상하면서 영국 정부 측이 탈원전이나 에너지전환 정책이 이 사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단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성노 기자 sungro5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