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이현아] 배우 박하나는 두 편의 드라마로 악녀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바꿔 말해 캐릭터에 빙의했다고 할만큼 100% 이상 소화한 것. 독한 여자로 변신했던 ‘빛나라 은수’, ‘천상의 약속’과 주연으로 발돋움했던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 때도 역할에 몰두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박하나에게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 됐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됐고, 시청자들에게는 특정 캐릭터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박하나 역시 이 고민을 계속 해왔고, 때마침 선입견을 깨트릴 수 있는 연극을 차기작으로 챙겼다. 일본의 유명 극작가이자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미타니 코키(三谷幸喜)의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의 홍일점 ‘이브 댄버스’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박하나가 지난 5월 26일 종영한 KBS1 일일극 ‘빛나라 은수’를 끝내고 휴식기를 짧게 가진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 재충전보다 연기를 하며 얻는 보람이 커서다.

“늘 연기하고 싶다고 (소속사에) 보채요. 과거에 일이 없던 시간도 있어봤고, 사실 배우는 비정규직인 동시에 개인사업자이거든요(웃음). 쉬는 것보다 연기가 더 즐거워요. 연극은 ‘빛나라 은수’가 끝나고 제안을 받았는데 마침 공연을 하고 싶던 찰나였으니 주저하지 않았어요.”

박하나는 정태영 연출자의 뮤지컬에 출연한 인연으로 이번 연극에 캐스팅이 됐다. 박하나가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에서 맡은 이브는 지킬 박사의 약혼녀로 19세기 사회적 분위기로 내숭을 떠는 여성이다. 하지만 와일드하고 스릴 넘치는 사랑을 꿈꾸는 뜨거운 내면을 가지고 있다. 연극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킬 박사와 하이드 원작에서 착안, 미타니 코키 특유의 유머와 소동극이 접목된 유쾌한 작품이다. 선과 악의 분리를 연구하던 지킬 박사는 연구가 실패하자 연극배우를 기용해 악한 하이드를 대신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리허설 도중 약혼녀의 등장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는다. 원작을 각색한 영화, 뮤지컬, 연극 등이 무섭고 무겁다면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을 잡으며 웃다가 극장을 나온다.

박하나는 국내서 세 번째로 막을 올린 이 연극에서 선입견을 깨부술만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다. 스테파니와 더블 캐스팅이라 비교가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매 무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너무 사랑스런 캐릭터라 제안을 받자마자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여성스런 느낌보다 발랄하고 쾌활하고 말괄량이의 느낌을 가져가고 있어요. 하루하루 너무 재미있는 걸 보니 정말 잘 한 것 같아요.”

극중 이브는 조신한 척을 일삼다 지킬 박사가 꾸민 대역 하이드를 만난 뒤 숨겨왔던 본능을 보여준다. 곱게 빗어 올린 머리칼을 마구 헝클고, 꽁꽁 싸맸던 상체를 내보이는 등 과감함을 보여준다.

“사실 엊그제까지 성숙한 척했는데 이번에는 섹시한 모습에 집중해봤어요. 여러 번 봐주는 팬들의 모니터링을 참고해 매일 다르게 연기하고 있거든요. 여성 관객들은 여성스럽고 조신한 모습보다 남자를 주무를 수 있는 섹시함을 더 원하더라고요. 그런 연기를 어떻게 할지 찾아보고 있어요.”

박하나가 자평하는 이번 연극의 결실로는 악역 이미지의 해소다. 악역이라 해 봤자 두 편 출연뿐인데 대중은 못된 애로 기억한다. 평범해서 기억을 못하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악역의 이미지가 낫겠지만 특정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게 아쉽다. 그래서 박하나는 대화마다 “악역 이미지를 벗을 수 있어 좋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악역의 경험을 역할에 살짝 녹여내고 있다. 이브가 악한 내면의 하이디로 변신해 거친 말투와 행동을 할 때 그 경험을 참고한다.

“하이디를 연습할 때 되게 어려웠어요. 영상을 보면서 연습하는데 나와는 다른 톤이더라고요. 와일드한 모습도 안 어울렸고요. 조금씩 나만의 색깔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이 연극은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등장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브라는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다. 내면을 깨트린 이브는 약혼자를 떠나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난다. 박하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터.

“사실 연기에 있어 보수적인 편이에요. 그동안 과감한 연기를 주저했거든요. 이 연극을 통해 어깨가 드러나는 옷도 입고, 남자의 엉덩이도 주저 없이 만지고 있어요. 안 해본 연기를 보여주는 게 이브처럼 제 벽을 뚫는 일이죠.”

사진=티앤비컴퍼니 제공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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