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그녀(폭스바겐 골프)는 첫사랑이었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여자(자동차)다. 용기가 없어서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거리에서만 봐도 행복해지는 그런 존재였다.
10년여가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해볼 수 있었다. 1년 전 큰 사건(디젤게이트)으로 세상과 작별(판매정지)당해 가질 수도 없게된 그녀. 세월 때문인지 이제는 약간은 촌스럽고 어수룩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에 심장은 다시 뛰었다.
우선 그녀의 모습부터 천천히 훑어봤다. 귀여운 얼굴에 통통하면서도 굴곡있는 몸매가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시대가 지났어도 여전한 미모였다.
풍만한 뒤태는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유독 내수 시장에서는 인기가 없는 해치백. 하지만 이만큼 보기 좋고 쓸 데 많은 차종도 찾기 어렵다.
보기만 하고 있자니 지루했다. 그녀의 트렁크를 활짝 들췄다. 가까이 다가가 깊은 곳까지 열었다. 명불허전. 소형 SUV가 부럽지 않다. 게다가 지상고가 낮아서 짐을 싣기도 훨씬 편하다.
내친김에 뒷문도 열어봤다. 사실 해치백 특성상 2열 사용 빈도가 많지는 않다. 그런데도 잘 꾸며진 모습이 의외였다. 고급 시트에 편안한 착좌감. 생각보다 긴 레그룸이 갖춰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를 느껴볼 시간. 운전석에 앉았다. 갈색 버킷시트가 몸을 단단하게 조여줬다. R라인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옵션이다. 커다랗게 새겨진 R자가 특별함을 더해준다.
시동버튼을 눌렀다. 작은 떨림과 함께 낮은 소리가 났다. 2리터짜리 디젤 엔진치고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두 손에 D컷 스티어링 휠을 가득 움켜쥔 후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뗐다. 그녀의 18인치 휠이 아스팔트 바닥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움직였다.
그녀는 최고출력 150마력에 최대토크 32.6kgf·m로 제원상으로는 평범한 편이다. 하지만 몸무게가 1,410kg에 불과해서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열정을 숨기고 살기에는 아직 젊은 우리. 참지 않고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고속도로다. 기어봉을 한 번 뒤로 슬쩍 젖혀 스포츠모드로 바꾸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기기만 하면 스포츠 모드와 일반 모드로 바꿀 수 있다. 강력하게. 또 부드럽게. 자유자재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녀는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강력하게 몰아붙여도 흔들리지 않았다. 차체 안정성이야 둘째치더라도 4기통 엔진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반응성이다. 습식 DSG 6단 변속기 덕분에 이 힘이 극대화된다. 디젤 답지 않게 고속에서도 가속력을 잃지 않는다.
숨이 찰 만큼 많이 달리는데도 그녀는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엔진소음은 물론이고 풍절음도 꽤나 잘 막아줬다. 고성능 차량인만큼 서스펜션이 단단한 편이었는데도 노면음만은 잘 걸러줬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한껏 힘을 내보기로 했다. 잠시 차를 세웠다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속도계가 100km/h를 가리킬 때까지 걸린 시간은 8~9초 정도지만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그녀를 바래다 주는 길. 에코모드를 놓고 천천히 시내를 움직였다. 연비는 11km/ℓ 정도가 나왔다. 공연 연비는 15.5km/l. 쉴새 없이 몰아친 것 치고는 양호하다. 마지막으로 근처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워줬다.
그녀가 떠난지 벌써 1년. 언제쯤 돌아올 거냐고 물었다. 일단은 준비중이라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성형수술을 하고 돌아올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가 돌아온다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다시 해치백에 대한 관심도 돌아오고, 디젤엔진에 대한 오해도 조금은 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