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정현 기자] 엔비디아가 장악한 인공지능(AI) 가속기·플랫폼 시장을 노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동맹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에는 자사를 AI 분야 최강으로 만든 AI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과 AI 개발 과정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CUDA)'가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인텔은 각각 가속기를 발표하며 네이버와의 동맹을 밝혔다. 특히 인텔은 개방형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 파트너로 네이버를 지목했다.

지난달 삼성전자는 AI 가속기 '마하1'를 발표했다. 네이버와 공동 개발한 제품으로, 삼성전자가 생산하고 네이버에 납품하는 형태다. AI 가속기는 GPU에 HBM을 붙여 데이터 처리속도를 높인 제품인데, 엔비디아가 H100을 내세우며 관련 시장 90% 이상을 장악한 바 있다. 이번 삼성전자의 마하-1은 HBM이 필요 없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 등 메모리반도체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에서는 대만 TSMC를 쫓아가는 상황이다. AI칩 분야는 삼성전자가 노려볼만 하다. 엔비디아의 H100은 가격이 5000만원 이상에, 수급이 어렵고 AI 추론에 쓰기에는 스펙이 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삼성의 마하-1의 가격은 500만원 정도다. 또 무겁고 전력소모가 많은 H100에 비해 데이터 병목(지연) 현상을 8분의 1로 줄여 가벼운 거대언어모델(LLM) 추론이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의 마하-1이 자리를 잡는다면 수급난을 겪고 있는 AI 반도체 산업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양사는 마하1에 대한 상당한 기대감을 보였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SNS를 통해 "일부 고객들은 1T(1조개) 파라미터 이상의 큰 애플리케이션에 마하를 쓰고 싶어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하1이 나오기 전이지만, 마하2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기대를 보였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AI 시대가 되면서 네이버와 같은 대용량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칩에 대한 비용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라며 "성능 검증 등 안정화 테스트를 올해로 예상하고 있다. 저희로서는 당연히 기대가 큰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이미 마하1은 네이버의 초거대 AI모델 '하이퍼클로파X' 구동에 성공했다. 연말 정도에 실물 칩이 완성되고 내년 초 삼성전자의 칩으로 구성된 시스템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네이버가 손을 잡은 건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네이버는 9일(현지 시각) '인텔 비전 2024'서 새 AI칩 '가우디3'을 공개한 인텔과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을 위한 공동연구 업무협약 체결 및 클라우드 구축 협력을 약속했다.

인텔의 신제품 가우디3은 H100보다 전력 효율이 2배 이상 높고 AI모델을 1.5배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다. 특히 가성비 면에서 유리할 전망이다. 가우디 3은 오는 3분기에 출시되며, 미 서버업체 델과 HP, 슈퍼마이크로 등이 가우디3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양사가 손을 맞잡은 까닭은 엔비디아가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까지 독점했기 때문이다. 현재 AI 가속기 개발 지원 소프트웨어 시장은 쿠다가 단독질주 중이다. 엔비디아는 2006년 100억달러(13조원)를 투입해 개발한 쿠다를 무료 공개했지만, 자사 GPU를 기반으로 가동되는 구조고 오랜 시간 AI 개발자들이 쿠다로 프로그래밍을 해오면서 '쿠다 생태계'가 공고해졌다.

인텔은 이전부터 퀄컴, 구글 등과 '반(反) 엔비디아 전선'을 형성해 AI 앱 개발을 위한 오픈 소프트웨어 구축에 나서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강한 네이버와 새롭게 손을 잡았다. 

팻 갤싱어 인텔 CEO는 '인텔 비전 2024'서 “특정 대형 기업(big player)이 당신들의 시스템을 장악하는 데 질리지 않았나. 이제는 기업용 (AI개발용)오픈 플랫폼을 구축할 때”라며 파트너사로 네이버를 소개했다. 네이버도 GPU 확보가 어려워 초거대AI인 하이퍼클로바X를 업데이트 하고 싶어도 어려웠던 상황이다.

11일 인텔은 서울 여의도서 '인텔 비전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AI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해 KAIST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학과 스타트업들을 참여시킬 것을 밝혔다.

네이버는 인텔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회사 내부에 AI 스타트업, 학계 등과 협력하는 네이버·인텔 공동연구소를 구성했다. 앞으로 가우디3의 전작인 가우디2를 활용한 테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동수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AI 담당 이사는 "쿠다는 좋은 프로그램이긴 한데, 굉장히 어렵다. 쿠다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서 "이번 협력으로 기존 하드웨어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역량 높은 분들을 초대하고, 오픈소스화해서 생태계 확장하자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또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추론 칩 '마하-1' 등과 관련한 삼성전자와의 협력 방향에 대해서는 "삼성과 인텔 모두 저희의 소중한 파트너"라며 "삼성과의 협업은 별도의 얘기"라고 말했다.

박정현 기자 awldp219@spor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