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두려운 K-철강, EU 관세·NDC 상향...돌파구는
美 관세 정책 강화 움직임...대미 관세부담 4000억원 EU 세이프가드 대체 TQR 도입...관세 50% 인상 검토 NDC 53~61% 상향...업계 “2035년 목표 현실성 결여” “日 GX 추진전략 중 ‘경제이행채’ 발행 벤치마킹 필요”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국내 철강업계가 미국의 고율 관세와 수요 둔화 등으로 어느 해보다 힘든 2025년을 보낸 가운데 내년에도 대내외적 불확실성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 나와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현행 50%인 대미 관세율 인하가 무산된 상황에서 유럽연합(EU)마저 보호무역주의에 기반, 미국과 유사한 관세 부과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고 최근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상향 조치까지 겹치며 철강업계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2026년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공동 팩트시트에는 자동차 관세 인하 등 양국의 주요 합의사항이 담겼지만 철강은 아예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미국이 철강을 ‘안보 핵심 품목’으로 지정하며 팩트시트 작성 과정부터 논의가 배제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3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했고 6월에는 철강 관세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 이에 따라 한국산 철강에는 6월부터 적용된 50% 고율 관세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관세 적용 품목을 더 늘리는 것을 고려 중이란 점에서 비롯된다. 미국 정부는 철강이 포함된 제품에 부과하는 품목별 관세를 기존 407개에서 최대 700여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철강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가 부과된 이후 수출 감소는 피부로 직접 체감하는 단계에 이미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철강 수출량은 218만9490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3% 감소했다. 올해 들어 월간 수출량 기준 첫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으며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던 지난 2021년 9월(전년 동월 대비 19.1% 감소)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대미 철강 수출은 관세율이 25%였던 3~6월 월 20만톤 수준이었으나 50% 관세가 적용된 7월부터는 10만톤대로 하락해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실이 포스코와 현대제철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두 회사가 올해 미국에 납부해야 할 관세는 총 2억8100만달러(약 4000억원)로 추산된다. 관세율 25%가 적용된 3~8월 누적 납부액은 1억4700만달러였으나 50% 관세가 적용된 9월 이후 연말까지 추가 납부액은 1억3400만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과 함께 국내 철강의 최대 수출처인 EU 시장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EU는 기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대체할 저율관세할당(TRQ)을 도입해 물량을 축소하고 쿼터 밖 수입에 고율 관세를 예고했다.
지난달 EU 집행위원회는 수입 철강 제품에 적용하는 글로벌 무관세 할당량(쿼터)을 작년 기준 연간 3053만톤에서 1830만톤으로 47% 축소하고 쿼터 외 초과 수입 물량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작년 국내 철강 수출 물량은 2835만톤으로 이 중 13.4%인 381만톤이 EU로 향했다. 아직 EU 집행위에서 검토 중이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는게 업계 안팎의 관측이다. 올해 1~10월 대EU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7% 감소했고 6~10월 기준으로는 22% 이상 줄었다.
이같은 대외 악재에 산업통상부는 국내 철강업계에 덮칠 고율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5700억원 규모의 특별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이 패키지는 ▲중소·중견기업 대상 이차보전사업 신설 ▲무역협회를 통한 200억원 긴급 저리 융자 ▲미국 입찰·계약 보증 수수료 50% 감면 ▲수출 공급망 강화 보증상품 도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성분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는 파생상품의 ‘함량가치 산출·증빙’ 컨설팅도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지원책이 단기 유동성 보완에 머문다는 ‘미봉책’이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탄소 규제·경쟁 심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환경에서 체계적인 수출 지원과 공급망 관리 기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확정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르면 산업계가 2018년 대비 53~61% 감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같은 정부의 요구가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에서 제시해 온 수소환원제철의 상용화 시점이 2037년 이후인 만큼 시간적으로 탄소감축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이번에 확정된 NDC를 업계에서 2035년까지 달성하려면 다른 생산 혁신 대안에 대한 과도기적 성격의 투자가 1~2년 안에 결정돼야 기술적으로 감축이 가능하다”면서 “기업 입장에서 이런 투자를 단기간에 걸쳐 실행에 옮기기에는 경영환경이 불확실하고 투자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실장은 “일본의 NDC 수준이 우리보다 약하지만 당국의 탄소중립 전환 비전은 확고하다”면서 “일본 정부는 2023년 화석에너지에서 청정에너지로의 산업 및 사회 구조 전환을 의미하는 녹색전환 분야의 총괄 정책인 ‘GX 추진전략’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GX 추진전략에는 향후 10년간 150조엔 규모의 GX 투자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 방안의 일환으로 ‘GX 경제이행채’ 발행을 통한 선행 투자지원이 포함돼 있다”며 “녹색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투자 비용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자금 지원을 포함해 GX 경제이행채 발행 등을 우리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