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G성동조선, 삼성重 수주 유조선 전선 위탁 건조...품질 관리·협업 안정성이 중요

양사 수에즈막스급 탱커 2척 위탁 건조계약서 서명 삼성중공업 품질·공정인력 다수 통영 야드 파견·협업 거제조선소 도크 포화·품질 관리·장기적 협업 안정성 품질·납기 일정 관리 ‘관건’...범용 상선 고부가화 숙제

2025-11-18     임준혁 기자
경남 통영에 위치한 HSG성동조선 야드./HSG성동조선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경남 통영에 위치한 HSG성동조선(옛 성동조선해양)이 8년 만에 유조선 전선(全船) 신조를 개시한다. 조선3사에 선박 블록만 납품해 온 HSG성동조선이 선박을 완전체로 건조하는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삼성중공업이 그리스 선사로부터 수주한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을 HSG성동조선에 위탁 건조계약(통하청) 방식으로 선박 전체를 맡긴 것이다.

지난 2003년 설립된 이 회사는 조선 호황을 타고 2007년 수주잔량 기준 세계 8위까지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 급감과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투자에서 큰 손실까지 입으면서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18년 기업회생 신청 이후 사실상 신조선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후 창원에 기반을 둔 조선·해양플랜트 업체인 HSG중공업이 2019년 성동조선해양을 인수하고 이듬해 ‘HSG성동조선’으로 사명을 바꾸며 재건에 나선 이 회사가 과거처럼 신조 시장에 다시 진입할지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과 HSG성동조선은 지난 14일 그리스 선사가 발주한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을 HSG성동조선이 위탁 건조하는 내용의 계약서에 최종 서명했다.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은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원유운반선으로 13만~15만DWT(재화중량톤수)급 선형이다.

이미 삼성중공업의 품질·공정 인력 수십명이 통영 HSG성동조선 야드에 상주하며 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선 위탁 준비에 따라 파견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양사는 앞으로 1년여간 상세 설계와 주요 기자재 발주, 공정 시뮬레이션 등을 마친 뒤 내년 12월 선박 건조의 첫 공정인 강재 절단(Steel Cutting)에 들어간다. 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에 추가 발주된 동형선 2척도 HSG성동조선이 전선 위탁 건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삼성중공업이 이번처럼 이례적으로 국내 중견 협력업체(조선·해양플랜트 반선 건조사)에 원유운반선 전체 건조를 맡긴 것은 건조 능력 대비 수주 물량의 포화 상태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도크 가동률은 116%로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이에 최근 삼성중공업은 거제조선소를 기술 개발 허브로 육성하는 한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친환경 컨테이너선, FLNG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건조 중심으로 특화하고 있다. 동시에 원유운반선 등 범용 상선은 설계와 주요 장비 구매·조달은 삼성중공업이 수행하고 전선 건조는 중국은 물론 동남아 및 국내 조선소에 하청을 맡기는 ‘글로벌 오퍼레이션’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전략의 주요 파트너는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조선소였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 중견 조선업체가 전선 단위 위탁 대상이 된 것이다. 단순한 생산 단가 경쟁력만 보면 중국이 유리하지만 품질 관리와 장기적 협업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는 국내 조선소가 더 적합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전선 단위 위탁 건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계약이 아니라 수년간 이어지는 구조인 만큼 지리적으로 가깝고 공정 관리가 용이한 국내 중견 조선업체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며 “국내 조선 생태계가 전성기 대비 다소 약해진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이 국내 중견사를 택한 건 장기적으로 조선 밸류체인 유지까지 고려한 결단”이라고 분석했다.

지리적 근접성과 공정 관리의 수월함뿐 아니라 HSG성동조선의 대형 설비도 삼성중공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원인으로 해석된다. 옛 성동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거치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건조 설비 등 핵심 자산은 그대로 유지돼 있다. 120만㎡(약 36만평) 규모의 통영 대형 야드와 골리앗 크레인 등 육상 건조 설비는 여전히 정상 가동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전까지 성동조선해양의 육상 건조 방식은 이 회사의 전매특허나 다름 없었다. 이를 통해 이 회사는 벌크선, 탱커(유조선), 컨테이너선, 심지어 해양플랜트 설비까지 수주한 바 있다.

성동조선해양은 2020년 HSG중공업에 인수된 뒤 해상풍력 하부구조물과 선박블록 제작을 수행 중이다. 1989년 설립된 HSG중공업은 1990년 삼성중공업 사내업체로 입주해 사업을 시작한 삼성중공업의 오랜 파트너사다. HSG중공업 인수 후 삼성중공업은 최근 수년간 HSG성동조선에 블록과 반선 물량을 맡기며 협업 관계를 쌓아 왔다.

양사간 위탁계약을 통해 전선 건조가 이뤄지지만 해당 선박은 계약서상에 삼성중공업이 짓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따라서 품질 관리와 납기 일정 점검이 이번 협력의 핵심 변수다. 삼성중공업이 공정·품질 담당 인력을 팀 단위로 파견해 통영 야드에 상주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사, 용접 품질, 공정별 검수 등 주요 관리 분야는 삼성중공업이 직접 챙기며 통하청이 이뤄진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선주사 측 승인 아래 진행되는 만큼 주요 품질 점검과 납기 일정은 삼성중공업이 수시로 관리·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기존 중국향 통하청 건조 방식에서 ‘국내형 전선 위탁’ 모델로의 전환에 있어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물론 대형 조선사들의 도크 포화 상태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렵고 HSG성동조선, SK오션플랜트 등 국내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언제든 신조 사업을 할 수 있는 관련 업체가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전선 단위 위탁 물량이 해외가 아닌 국내로 향하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조선산업의 체질 향상 측면에서도 양사의 협업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조선산업 전문가는 “중국의 수주량, 수주잔량 시장 독식과 최근 조선업 부활을 서두르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고부가 선종의 시장 주도권을 사수함과 동시에 벌크선·탱커·컨테이너선 등 범용 상선의 고부가가치화 전략도 필요하다”며 “이런 전략이 실행돼야 대형 조선소의 물량이 중형 조선소로 흘러갈 수 있다”고 말해 HSG성동조선의 신조 재개가 국내 조선업 재도약의 주춧돌로 작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