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톡신 ‘국가핵심기술’ 족쇄 풀릴까…정부 규제 완화 가능성 촉각
수출 지연 등 글로벌 경쟁력 저하 우려 국가핵심기술 해제 요구 확산 산업부 전문위원 교체 앞두고 변화 가능성
| 한스경제=김동주 기자 | 10여 년간 국가핵심기술로 묶여온 보툴리눔 톡신 제조기술과 균주에 대한 규제 완화 요구가 제약바이오 업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수출 승인 절차로 인한 장기 지연과 글로벌 경쟁력 저해 문제가 지속 제기되면서 정부의 규제 완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19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보툴리눔 톡신 제조 기술과 균주의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높은 기술적·경제적 가치를 갖거나 산업 성장 잠재력이 큰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경쟁력에 중대한 악영향이 우려될 때 지정된다. 우리나라 보툴리눔 톡신 제조기술은 지난 2010년, 균주는 2016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문제는 국가핵심기술로 묶일 경우 이를 해외로 수출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평균 4~6개월, 길게는 1년까지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업계는 이 같은 규제가 톡신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해제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 독일 등 선도국가가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고 국내 기업들이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축적했음에도 불필요한 규제로 발이 묶여 있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애브비의 ‘보톡스’가 점유율 약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웅제약, 메디톡스, 휴젤 등 국내 기업은 5~10% 수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시민교육연합이 제약사 17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도 82.4%에 해당하는 14곳이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관련 생산 기술과 균주가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확산된 만큼 ‘국가 차원의 핵심기술 보호’라는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보툴리눔 균주가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며 이미 다양한 상업화 균주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국가핵심기술로 보호해야 할 독점적 기술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대웅제약의 경우 올해 2월 토양 유용 미생물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보툴리눔 A형 균주를 발견하고 이를 분리동정했으며 상업용 톡신 생산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대웅제약이 확보한 균주는 국내외를 합쳐 7종에 이른다.
수출 규제로 인한 문제점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국내 한 업체가 해외 판매 과정에서 다른 톡신 브랜드 라벨을 무단 도용한 정황으로 검찰 압수수색을 받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K-톡신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국가적 망신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제도 완화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달 말 산업부 생명공학 분야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 위원 15명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보툴리눔 톡신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에 대한 가능성이 관측된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위원회는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 심의 핵심 창구로 꼽힌다. 다만, 일부 위원이 5차례 연임하며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오면서 공정성과 전문성 문제가 수차례 지적됐다.
이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은 일부 전문위원의 장기 연임 문제를 ‘카르텔’이라고 표현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고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어떻게 한 분이 유임을 다섯 차례나 할 수 있었는지 저도 깜짝 놀랐다”고 답변한 바 있다.
김 장관은 지난 9월 국회 토론회 축사에서 “국가핵심기술 제도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시대에 맞지 않거나 산업 경쟁력을 제약하는 제도는 과감히 개선하겠다”고 밝힌 만큼 전문위원 교체와 함께 제도 개편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지난 2024년 약 12조원 규모에서 오는 2030년 31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산 톡신은 이미 품질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수출 규제가 완화될 경우 성장 속도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후발 기업과 벤처의 시장 진입 기회가 확대돼 산업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보툴리눔 톡신을 기술유출을 방지하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보면서 오히려 기술이 후퇴하거나 활성화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이제는 기술개량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해지하는 것이 적절하고 앞으로 글로벌 시장으로 더욱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체계나 연계방안 등을 검토하면 더 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