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EPC업계, 외형성장-이익부진 ‘엇박자’
국내 에너지 설계·조달·시공(EPC) 및 기자재업체, 외형 성장 중이나 한편으론 수익 부진 소형모듈원전·수소터빈 등 호황에 수주 확대, 자회사 부진·고정비 부담으로 당기실적은 하향 수주건, 1~2년 시차 두고 수익 연결 구조…정부 정책 지원·각 기업 기술력 뒷받침 관건
|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국내 에너지 설계·조달·시공(EPC) 및 기자재 업체들이 외형은 성장 중이나 한편으론 수익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 수소터빈, 차세대 가스터빈 등 호황에 수주 확대가 이어지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다만 이의 수익 전환까지 시차가 있는 데다 자회사 부진, 고정비 부담 등이 겹쳐 당기 실적 측면에선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업계 추이 대표 사례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꼽힌다. 올해 3분기 회사의 연결 기준 매출은 3조8804억원, 영업이익은 1371억원을 나타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3%, 19.4% 증가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경우 시장 예상치였던 2800억원 수준에는 절반에도 못 미쳤다.
메리츠증권은 두산밥캣 실적 감소, 두산퓨얼셀 적자 확대, 인건비 증가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수주잔고는 사상 최대치인 16조4174억원으로 확대됐다. 연간 수주 가이던스 역시 기존 10조7000억원에서 13~14조원으로 상향됐다. 특히 원전·가스터빈·SMR 부문에서 확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두산은 2026년 1분기 SMR 전용 공장 착공을 예고했고 연간 8기 수준인 가스터빈 생산능력도 2028년까지 12기로 확대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백로그(Backlog: 고객 전체 주문량)’가 실제 실적으로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1~2년 시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업 특성상 대규모 프로젝트가 수주된 후 착공, 제조, 시공, 검수, 인도 등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매출로 잡히는 구조라서다. 이로 인해 수주잔고가 늘어도 단기 손익은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모습은 비단 두산에너빌리티뿐만이 아니다. 한전 계열 정비 전문기업 한전KPS도 수익성이 흔들리고 있다.
회사의 올해 3분기 실적은 매출 3937억원, 영업이익 474억원로 모두 전년대비 증가했다. 그러나 외주비 증가, 정비 계약단가 정체 등으로 연간 누적 기준으론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년 전(1686억원)보다 28.3% 감소한 1209억원, 순이익은 전년 동기(1370억원) 대비 23.5% 감소한 1048억원을 나타냈다.
이밖에 현대건설·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도 에너지 EPC 사업을 확대 중이지만 인프라 중심 수주가 건축·주택 부문 실적 부진을 완전히 메우지 못하는 모양새다.
SK에코플랜트의 경우 수소·연료전지, 그린암모니아 EPC 중심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고정비와 환율, 해외 프로젝트 초기비용 부담이 여전하다.
두산퓨얼셀은 수소연료전지 국내 수주 기반은 안정적이지만 매출 성장 대비 영업손실이 지속되고 있다.
에너지 산업 변곡점을 지나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수주 확대-생산설비 투자-실적 전환’이란 정석 경로를 따르지만 현재는 수익 전환 이전 ‘과도기’에 해당한단 평가다.
SMR, 수소·가스터빈, 차세대 원전 설비 등은 기술개발-인허가-조달 과정이 길고 일부는 정부 수주나 국외 수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현 시점 단기 수익보다 미래 비전을 키우는 시기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는 실적 발표 직후 주요 증권사들이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역시 원전·수소 관련 중장기 프로젝트 수주에 따른 ‘가치 재평가(리레이팅)’ 심리가 반영되는 추세다.
다만 시장 기대감이 실적으로 전환되지 않을 경우 관련 사업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적 환경 역시 변수로 꼽힌다. 정부는 탄소중립·에너지안보 기조 아래 SMR 상용화, 가스터빈 고도화, 수소 인프라 구축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화는 민간 여력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제도적 인센티브와 기술 표준화, 조기 실증사업 확대 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주 중심 ‘그린쇼잉(green showing)’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주 확대와 생산능력 증설이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며 “기술력·재무안정성·고정비 구조 등 기업별 체력 차이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