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깃한 유혹] ⑥ 300억원의 착각: 증권 지점장 출신의 뼈아픈 교훈

2025-11-16     전유문 대표
전유문 대표

| 한스경제 | 증권회사 지점장 출신인 박민에게도 '욕심'이라는 감정은 낯선 손님이 아니었다. 수많은 투자 사례를 분석하고 시장의 냉정함을 경험했던 그였지만, 지인의 달콤한 속삭임 앞에서는 잠시 이성을 잃었다. 상장(ICO) 전 코인을 법인배정 물량으로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은, 경험 많은 투자가의 귀에도 황금빛 유혹으로 들렸다. 그는 투자 전문가로서의 이력보다 눈앞에 펼쳐질 폭발적인 수익률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인은 깔끔하게 복제된 유명 코인 거래소와 유사한 인터넷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화면 속 숫자는 자신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박민은 그 정교함에 의심을 접었다. 코인 투자가 활발한 이 시대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국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2천만 원이라는 종잣돈을 송금했다. 그 순간, 그의 믿음은 찰나의 희망을 넘어 맹신으로 변하고 말았다.

기적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불과 일주일 후 그가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의 잔액은 무려 12억원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한달후에는 300억 원에 달했다. 1000만원이 1,500배로 불어난 것이다. 박민은 믿을 수 없는 이익에 도취되어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했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흥분 속에서 투자를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미 성공한 거물이 된 듯했다. 이 가상의 성공은 그의 자존심과 판단력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하지만 환희는 인출 시도에서 멈췄다. 300억 원 중 1억 원을 인출하려 하자, 시스템은 '출금액의 20%를 보증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라는 황당한 조건을 내걸었다. 박민은 잠시 주춤했지만, 1억원을 손에 넣기 위해 1억원의 20%인 2천만 원쯤이야 하는 생각에 주저 없이 돈을 보냈다. 그는 곧 자신의 손에 잡힐 듯한 300억 원 때문에, 사기의 가장 기본적인 징후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보증금까지 입금했으나 인출은 여전히 막혔다. 그때서야 박민은 자신이 확인했던 '거래소'가 실체가 없는 가공의 인터넷 사이트였음을 깨달았다. 화려한 숫자가 가득했던 그 페이지는 그저 데이터를 조작한 허상이었고, 300억 원은 단 한 푼도 존재하지 않았다. 1억 원을 찾기 위해 넣은 보증금 2천만 원은 물론, 애초의 투자원금 2천만 원까지, 총 4천만 원을 속절없이 날리게 된 것이다.

증권 지점장 시절 수없이 고객들에게 경고했던 '고수익을 미끼로 한 사기'의 덫에 자신이 걸려들 줄이야. 박민은 그의 경험과 지식, 심지어 명예까지도 탐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는 냉혹한 진실을 깨달았다. 그의 눈앞에 남은 것은 허황된 300억 원의 잔상과, 텅 빈 통장만 바라보는 막대한 후회뿐이었다.

전유문 오코글로벌 대표, 전 KB국민은행 지점장, 채권시장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