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 감축 ‘대수술’ 시작…고용 불안 두고 갑론을박
산단 중심 구조조정, 노사갈등 뇌관…법적 위험성·지역사회 여파 대비해야 산업부, 고용 감축 최소화 당부…“생태계 전환 등 통합적 관점 필요”
|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대규모 설비 감축에 돌입하며 구조조정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기초 석유화학 설비를 최대 25% 감축하겠다는 자율협약을 맺었고 고부가 제품 중심 사업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설비 조정이 곧 인력 재편과 직결된다는 데 있다.
단순히 설비만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정규직 해고·전환배치·계열사 통합 등 고용·노동 법제와 맞물린 파장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산업통상부는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연간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기초 석유화학 설비를 270만~370만톤 규모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설비 대비 최대 25% 수준이다.
산업부는 이번 구조조정안이 정부 명령이 아닌 업계 자율적 사업 재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글로벌 공급과잉과 업황 침체 상황이 맞물린 불가피한 수순이란 평가다.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은 중국·중동발 증설 공세로 인한 공급 과잉 직격탄을 맞았다.
2025년 기준 중국 주도 석유화학 신규 증설 규모는 약 3500만톤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는 세계 전체 NCC 증설 규모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의 연간 생산능력(약 1500만톤)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국내 공장 가동률도 하락 추세다. 석화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NCC 평균 가동률은 75%를 밑돌았다.
범용 플라스틱 수요 위축으로 올레핀·폴리머 가격도 20~30%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기업들 역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상반기 총 371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천NCC는 공장 가동률을 60% 수준까지 낮췄다.
문제는 구조조정이 설비 감축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규모 NCC 감축은 인력 재편과 그로 인한 지역경제 위축으로 이어진다.
특히 여수·대산·울산 등 산단 중심지의 경우 설비 운영 인력 외에도 정비, 협력업체, 인근 생계형 자영업까지 고용 연쇄 효과가 크다.
정부가 고용 감축을 최소화해달라는 입장을 기업에 당부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희망퇴직·재배치 등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법적 리스크도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다.
노동관계법상 해고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야 하고 인력 전환배치 역시 근로계약 본질적 변경을 수반할 경우 노사 간 협의가 필수적이다.
특히 설비 통합이나 공정 폐쇄 등 구조적 조정은 해당 지역 사업장 폐쇄로 이어질 수 있어 단체협약·산업안전보건법 등 다층적 법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 당시 해고 무효 소송, 산재 인정 갈등이 반복됐듯 석유화학 업계도 향후 유사한 충돌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노동계에서는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이 일방적인 인력 정리로 이어질 경우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특히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은 석화업종 특성상 해고 요건 충족 정당성을 놓고 노사 간 충돌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정부의 고용 유지 지원금이나 전직교육 지원 등 제도적 장치가 미흡할 경우 후폭풍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편 업계는 고부가 스페셜티 화학·친환경 원료 전환을 구조조정 대응 전략으로 삼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수지·전자재료 쪽 고기능 제품 비중을 2027년까지 6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LG화학도 2030년까지 전지소재·바이오 등 친환경 소재 투자에 1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다만 이 같은 전략이 단기적 인력 구조조정 충격을 보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페셜티 설비는 자동화 비중이 높고 인력 대체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업종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단순 감축·해고 중심이 아닌 고용 전환·재교육·산단 생태계 전환을 포함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이 물리적 설비 축소에 그친다면 업계 체질 개선은커녕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공동화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