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메디톡스의 그림자’ 갇힌 식약처
보툴리눔 톡신 허가 취소 5년째 법적 분쟁 최종 패소에도 추가 행정처분…억대 과징금 부과
| 한스경제=김동주 기자 |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메디톡스(대표 정현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도 높은 행정처분이 오히려 스스로의 신뢰를 흔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보툴리눔 톡신 ‘메디톡신(클로스트리디움보툴리눔독소A형)’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둘러싼 식약처와 메디톡스의 분쟁은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식약처는 메디톡스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메디톡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무허가 원액을 사용하고도 허가된 원액으로 생산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 약사법을 어겼다며 지난 2020년 품목허가 취소 및 제조·판매 중지를 명령했다.
또한 같은 해 메디톡스가 수출용 메디톡신과 코어톡스를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고 국내에 판매했다는 혐의로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다. 보건위생상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생물학적 제제의 안전성과 유효성 확보를 위해 국내에 판매하기 전 식약처장의 제조·품질관리에 관한 자료 검토 및 시험검정 등을 거쳐 제조단위별로 출하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약처가 내세운 두 가지 처분 사유 중 하나는 1·2심에서 모두 패소했고 올해 3월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최종 패소로 결론 났다. 국가출하승인 관련 나머지 한 건 역시 1·2심 모두 메디톡스가 승소하며 대법원 판결만을 앞두고 있다. 행정 판단의 근거가 법적 검증을 거치며 연이어 뒤집히고 있는 셈이다.
식약처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 9월 메디톡신 각 단위에 대해 제조업무 정지에 갈음하는 과징금 총 4억 5605만원을 부과하는 추가 행정처분을 단행했다. 대법원의 판단 취지는 ‘품목허가 취소 및 제조판매 중지 처분’이 과도했다는 것으로 메디톡스의 일부 위반사항은 인정됐다는 주장이다.
메디톡스가 이 역시 불복하기로 하면서 또 다시 법정 공방이 예고된다. 회사는 “이번 식약처의 행정 처분과 관련해 향후 법적 절차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식약처의 강경한 태도가 국내 제약 산업 보호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위법 행위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 식약처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행정의 목표가 처벌 그 자체로 전락하는 순간 규제의 신뢰는 무너진다. 규제는 산업을 억누르는 장치가 아니라 산업의 투명성과 품질을 높이는 수단이어야 한다.
반복되는 소송 패소는 단순한 법리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과 판단의 합리성 부재를 드러내는 신호다. 행정처분은 제재의 수단이 아니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 법원이 반복해서 절차가 부당했다고 지적했다면 그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제도적 허점을 고치는 것이 공공기관의 책무다.
이제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다. 국민 안전을 위한 규제는 투명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할 때만 존중받는다. 식약처가 ‘메디톡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면 과거의 결정을 합리화 하는 대신 제도와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