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만8000명 다녀간 'KBW2025'...블록체인, 모래성 보다 내실 중요
KBW 2025 성료...블록체인 축제지만 기술 논의 부재 법·제도화 지연으로 블록체인 엑소더스 가속화 경고
|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지난 달 26일, 서울을 뜨겁게 달궜던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 2025’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미국 대통령 가족 인사들까지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극찬하고 나선 현장에서 한국이 아시아 블록체인 산업의 ‘선도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목도한 것은 분명 쾌거였다.
스테이블코인의 대중화 실험장으로 한국이 주목받고 글로벌 거물들이 K-디지털 문화와 인프라의 우수성을 인정하며 협력을 제안한 것은 그간 움츠려 있던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씁쓸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 세계 5200여 기업, 2만8000명의 참가자가 몰려든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행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도 정작 우리가 챙겨야 할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KBW기간에 480개가 넘는 사이드 이벤트가 서울 전역 곳곳에서 진행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까지 온라인으로 참석해 "한국이 아시아 블록체인 산업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숫자만 보면 분명 성공한 행사다. 전년도 1만6000명에서 76% 늘어난 참가자 수치는 한국 블록체인 산업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현장 곳곳에서 드러난 민낯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깊이 있는 기술 논의나 정책 토론보다는 기념품을 받기 위한 긴 줄이 더 눈에 띄었다. '세계 최대 블록체인 컨퍼런스'가 '기브어웨이 축제'로 같아 아쉬운 장면이었다. 산업의 대중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기술 허브로 거듭나려면 외형적 흥행을 넘어선 내실이 필요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법·제도화의 지연이다. 민병덕 의원이 KBW 기간 내내 강조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디지털자산 제도화'는 이미 시급함을 넘어선 절박함의 영역에 들어섰다. 민 의원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원화 주권을 지키지 못하면 달러스테이블코인 식민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언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지니어스법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갖췄고 유럽연합도 MiCA 규정으로 디지털자산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 2분기부터 법인의 가상자산 현금화가 가능해진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법제화 없이는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KBW가 한창이던 지난 달 22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급락하며 15억달러 규모의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서울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시장은 혹독한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산업의 낙관적 전망과 불안정한 투자 환경이 이토록 극명하게 대비된 적도 드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민주당이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정책 수립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정치적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글로벌 자본과 프로젝트는 안정된 제도를 갖춘 시장으로 이동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블록체인 기업들이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싱가포르나 두바이로 떠나는 '블록체인 엑소더스'는 이미 현실이 됐다. 우리가 KBW에서 보여준 열정과 관심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국회가 하루빨리 실질적인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역사는 기회를 붙잡은 나라와 놓친 나라를 가른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20세기 말 인터넷에 이은 디지털 혁명의 물결이 지금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 'KBW 2025'가 보여준 화려한 성과를 제도화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이번 기회는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다. 정치권이 머뭇거리는 사이 한국은 또다시 기술 혁신의 뒷전으로 밀려날지 모른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