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中, WTO 개도국 특혜 포기 선언...‘두마리 토끼’ 노려

中 ‘책임있는 개도국’ 선언...한국 경제, 기회와 부담 공존 미·중 정상화딤 앞둔 외교적 제스처 분석...다자무역 체제 수호 강조

2025-09-29     강은수 기자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 AP 연합뉴스 제공

| 한스경제(상하이)=강은수 특파원 |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을 자처해온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개발도상국에 부여되는 특별대우(SDT)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중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향후 미·중 정상회담을 위한 외교적 제스처와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경제 또한 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기대와 동시에 새로운 경쟁 압박이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세계개발구상(GDI) 고위급 회의에서 “책임 있는 개도국으로 WTO 향후 협상에서 새로운 특별 대우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와 미래의 WTO 협상에서 새로운 특별·차등 대우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2001년 WTO 가입 이후 2010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며 약 150여개의 특혜를 누려왔던 중국이 그 혜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WTO는 개도국에 무역 자유화 의무 완화, 기술·재정 지원, 농업 식량 안보, 규범 이행 유예 등 일부 분야에 대한 보호조치 등 특혜(SDT)를 제공한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에 관한 공식 기준이  없어 약 160개국 가입국 스스로 개도국 지위를 선언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

다만, 중국 상무부는 특혜는 포기하지만 ‘개도국 지위’ 자체는 유지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리청강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은 베이징에서 개최한 브리핑에서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개도국이고 그 지위와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며 “중국은 언제나 개도국들과 한편”임을 강조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다자주의 체제를 흔드는 미국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리더십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리창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일방주의와 보호주의가 고조돼 국제개발협력이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하며 "우리는 국제 시스템을 수호하고 다자주의·자유무역을 견지하며 개방형 세계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다자무역 체제 수호에 중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이번 결정은 미국의 지속적 압박을 일정 부분 수용한 동시에, 오는 10월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외교적 제스처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19년 7월 1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WTO 체제에서 개도국 혜택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발언하며 압박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중국의 지위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2023년에는 미국 의회 상하원에서 중국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중국의 개도국 특혜 포기로 한국 경제에는 기회와 부담이 교차하고 있다. 중국이 특혜를 포기하면서 관세와 보조금 등에서의 불평등이 완화될 경우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고, 미·중 갈등 완화 기대감도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AP통신은 “중국의 발표는 향후 협상에만 적용되고 기존 합의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해외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 확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중국의 WTO 내 영향력이 강화되면 한국은 전자상거래, 디지털 무역, 보조금 투명성 등 새로운 의제에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순한 양보가 아닌,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주체적인 결단이라 평가하고 있다.

허야둥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중국의 이번 결정은 WTO 개혁을 촉진하고, 글로벌 개발 이니셔티브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행하며 유엔 2030 지속가능 개발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주요 개도국인 중국인 다자간 무역 체계를 확고히 수호하고 글로벌 개발 및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진전이다”라고 강조했다.

리청강 부부장는 “현재 및 향후 WTO 협상에서 새로운 특별 및 차등 대우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은 다자간 무역 체제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뒷받침하는 주요국으로서 중국의 확고한 입장과 책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법학부 교수이자 WTO연구소 연구원인 지원화 교수는 “중국이 WTO 협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특별 및 차등 대우를 추구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다자 무역 협상을 촉진하고 국제 협력을 증진하려는 중국의 적극적인 입장을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수출입 화물이 쌓여 있는 부산항 신선대부두, 감만부두 / 연합뉴스 제공

특히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양슈이칭 부연구원은 중국의 이번 발표가 “정확하고 제한적이며 자율적인 정책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결정이 ‘현재 및 미래 협상’에 국한된다고 밝혔다. 이는 농업협정, 보조금, 상계조치협정 등 이전에 체결되고 효력을 발휘한 모든 WTO 협정에서 중국이 누리고 있는 특별·차등 대우 조항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의미다.

또한 그는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국이 ‘규칙 수용자이자 권리 옹호자’에서 ‘규칙 공동 형성자이자 책임 부담자’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라며 “이번 정책 발표가 중국이 세계화의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다자간 무역 체제의 수호자이자 구축자임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