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쟁' 돌입한 글로벌 카드업계...국내는 아직 '조직신설·효율화' 단계
글로벌 카드사, 결제 인프라 코어 영역에 AI 내재화 국내는 여전히 업무 효율화·고객 경험 개선에 집중
| 한스경제=이나라 기자 | 국내 카드사들이 인공지능(AI)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전문 인력을 대거 영입하는 등 AI 생태계 선점 경쟁에 나섰다. 이는 비금융 확대에 따른 디지털 전환 압박과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 기업들의 선도적 행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그러나 글로벌 카드사들이 이미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거래 승인·사기 탐지 등의 분야에서 AI를 전면 배치한 것과 비교하면 국내는 아직 효율화 중심의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신한·KB·하나·롯데카드 등은 최근 AI 전담 인력 채용을 늘리는 한편 AI 윤리 교육과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 구축에 나섰다.
먼저 신한카드는 국내 카드업계 중 가장 먼저 사내 AI 플랫폼 내재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나(AINa)'라는 생성형 AI 플랫폼을 전사 직원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상담 지원 시스템인 'AI-SOLa'를 결합해 VOC 대응과 업무 자동화를 추진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한카드의 직원들은 보고서 요약·SQL 질의문 작성·문서 검색을 AI로 대체하며 평균 업무 시간이 크게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 실험이 아닌 실질적인 생산성 개선을 입증한 사례로 꼽힌다.
KB국민카드는 올해 7월 AI센터를 신설하고 전무급 인력을 배치하는 것을 비롯해 AI 확대에 나섰다. AI 센터는 사내 흩어져 있던 AI 관련 프로젝트들을 집결시켜 데이터 관리·리스크 통제 표준화를 담당하는 한편, 향후 고객 접점 업무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는 허브 역할을 맡는다.
현대카드는 타 카드사와 달리 AI 기술을 수출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자체 AI 소프트웨어인 'UNIVERSE'의 일본 수출을 시작으로 중동·유럽 등 수출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Agentic AI를 미래 성장 전략으로 제시하며 글로벌 수준의 담론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 외에도 하나카드는 마케팅 특화 AI로 차별화를 꾀했으며 BC카드는 AI 활용을 백오피스·운영 혁신으로 확장했다.
하지만 국내 카드업계의 AI 활용 범위는 여전히 업무 효율화·고객 경험 개선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는 글로벌 카드사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거래 승인·사기 예방 같은 코어 인프라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최근 AI를 효율화 도구가 아니라 거래 신뢰성을 담보하는 핵심 인프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차별점 때문에 글로벌 카드사인 비자(Visa)는 최근 5년간 120억달러 이상을 사기 예방과 AI 기반 승인 시스템에 투자하고 았다. Visa의 생성형 AI 기반 'VAAI Score'는 비대면 거래에서 발생하는 계정 도용·열거 공격을 실시간 차단한다. 또한 Visa는 보안·리스크 전담 인력만 1000명 이상을 확보하는 등 AI를 활용한 네트워크 보안 확대에 나서고 있다.
마스터카드(Mastercard) 역시 'Decision Intelligence Pro'를 도입해 연간 1400억건 이상의 거래를 분석하고 있다. 이는 1조건 규모의 데이터 포인트를 학습한 모델로 사기 탐지 정확도를 높였음은 물론 승인 거절률을 줄이고 있다. 즉 AI가 단순 업무 보조가 아닌 거래 승인 의사결정의 핵심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도 수천 명의 개발자를 동원해 단순한 챗봇이나 마케팅 보조를 넘어, 신용도 평가·크레딧 결정·리스크 관리까지 총체적 AI 알고리즘을 반영하는 등 개발·운영 전 주기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국내와 글로벌 카드업계의 AI 격차는 크게 인력규모·투자수준·활용범위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국내의 경우 인력 규모가 전담조직 신설·수십 명 단위 채용에 그치고 있지만 글로벌 카드사들은 수천 명 규모의 AI 및 데이터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투자 수준은 글로벌 금융사의 경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장기 투자를 공표하고 정례 성과를 발표하는 것에 비해 국내는 그룹 차원의 지원과 개별 프로젝트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하다보니 규모가 제한적이란 평가다.
마지막으로 활용범위의 경우 국내는 행정·마케팅·고객 응대가 중심인 반면에 글로벌은 거래 승인·사기 탐지·보안 등 결제 인프라 코어 영역에 AI를 내재화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카드업계의 AI 활용은 이제 막 조직을 세우고 효율화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일부는 수출 성과까지 거두는 단계에 진입했다"면서도,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네트워크 차원에서 AI를 '거래 신뢰성 엔진'으로 전환한 점을 고려하면 격차는 여전히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관련 전문가들은 국내 카드사들의 AI 역량이 글로벌 수준에 도달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먼저 세계경제포럼(WEF) AI TF는 보고서에서 AI 성과 지표(KPI)를 단순 업무 효율에서 승인율, 사기 차단액 등 거래 수준 성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경영진이 투자 효과를 명확히 인식하는 한편 대규모 투자 명분이 확보된다는 설명이다.
이어 한국금융연구원(KIF)은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 전환과 금융산업 구조 변화 보고서'를 통해 데이터 규모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네트워크처럼 수백억 건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 업계는 공동 데이터 허브 구축이나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모델을 통해 스케일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신용평가·프라이싱·리스크관리 등 고객분석을 통한 금융상품 추천·담보물 가격결정·시장분석 등이 AI의 핵심 가치가 될 것이다"면서도, "금융회사들이 AI 도입 시 제도적 대응과 책임성 확보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