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스크 대응 모델 '파라메트릭 보험' 도입 본격화…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

손보사 기후보험 협의체 구성·시범 상품 개발...시장 잔압 초기 단계 해외 사례 본 지수형 보험 가능성…업계 "정확한 지표 산정·제도적 신뢰 필요"

2025-09-15     이지영 기자
국내 보험업계가 기후위기의 장기화와 이상기후의 일상화 속에,  '파라메트릭(지수형) 보험’을 새로운 모델로 주목하고 있다. 사진/ 쳇 gpt

|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국내 보험업계가 갈수록 악화되는 기후위기와 이상기후에 맞춰 파라메트릭 보험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보험 가입 시 정했던 조건을 충족했을 때 보험금을 자동으로 지급하는 보험 상품으로 일명 지수형 보험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국내는 손해보험협회의 제도화 추진과 주요 보험사들의 시범 상품 출시에도 불구 제도적 기반 부족과 통계 신뢰성, 소비자 이해도 문제 등 와 같은 해결 과제가 남아 있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이상기후 현상이 일상화되면서 기후 리스크에 대한 경제적 복원력 확보 수단으로 파라메트릭(지수형) 보험이 주목받고 있다. 

지수형 보험은 기후 리스크에 최적화된 상품으로 사전에 설정한 지수(Index)가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된 보험금을 자동으로 지급하는 구조다. 객관적인 보장 기준 덕분에 보험금 청구 절차가 간편하며 신속하고 투명한 보상이 가능하다. 또한 상품 설계의 유연성이 높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정부 역시 기후위기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지수형 보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기후 변화로 인한 금융 시스템 리스크인 그린 스완(Green Swan)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에 지수형 보험 활성화를 포함시켰으며 연내에 자연재해 보장상품 개편과 관련 입법·제도 정비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에 손해보험협회와 손보사들은 기후보험 협의체를 구성하고 기후보험 출시를 위해 상품 담보 등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손보협회가 환경부와 '기후보험 도입 및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오는 2026년 도입을 목표로 폭염특보 발령 시 야외 근로를 중단해야 하는 일용직 건설 근로자의 소득 손실을 보상하는 지수형 기후보험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기후보험은 지수형 보험 형태로 초기에는 특정 담보를 중심으로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 관건이다"며, "피해가 비교적 명확한 야외 근로자 등 취약 계층을 우선 대상으로 삼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초기 상품이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면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담보로의 확장도 수월해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다만 국내 지수형 보험 시장은 글로벌 시장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후재난에 따른 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 관련 상품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 출시된 지수형 보험 상품은 삼성화재·캐롯손해보험·KB손해보험이 선보인 '출국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 특약'이 사실상 유일한 사례다. 

KB손해보험은 국내 민간 보험사 최초로 소상공인을 위한 단체보험 형태의 '날씨 피해 보상보험’을 연내 출시할 예정이다. 기존 풍수해 보험이 실질적 피해 입증을 전제로 보상했다면 이번 상품은 폭염·폭우 등 특정 기상 조건 충족 시 실제 피해 여부와 관계없이 소득 손실을 정액 보상하는 상품이다. 기상청의 공식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설계 중이며, 출시를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업계는 이번 상품이 국내 지수형 보험 시장 확대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보다 다양한 상품 개발과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파라메트릭 보험 시장도 최근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지수형 보험 시장 규모는 2023년 약 148억달러(약 20조6800억원)에서 2032년에는 393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자연재해 위험 보장 상품이 전체의 56%를 차지하며 북미 지역이 약 35%로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파라메트릭 보험은 자연재해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소액 단기보험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RMA 강수보험은 작물 생육에 필요한 강수량 부족을 보장한다. 스위스리(Swiss Re)의 지진보험은 피해자에게 소액 정액급부를 신속히 지원한다. 일본의 '선물하는 보험, 지진 지킴이'는 진도 6 이상 지진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소액 단기보험으로, 가입부터 지급까지 메신저 플랫폼 '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처리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 정착을 위해선 기술력과 제도적 신뢰 기반, 소비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다.

특히 가장 큰 과제로는 보험금 지급 기준이 되는 지표의 신뢰성을 꼽을 수 있다. 통계적 정합성과 예측력이 낮은 지표는 보험금 과소 지급 또는 오지급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 지역별로 기후재난 피해 규모가 상이하고, 지형 및 인프라 조건에 따라 피해 양상이 달라 일관된 보상 기준 마련에 한계가 존재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기상 데이터와 질병 통계의 정확성 확보·투명한 수집 방식·실시간 연동 시스템의 정밀성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지수형 보험 특유의 복잡한 구조로 인해 불완전판매 위험이 높은 만큼 소비자 보호 체계의 신속한 개선도 요구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아직 기후위험에 따른 손실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명확한 지수 산정에 한계가 있다"며, "같은 지역 내에서도 지형과 주요 산업 구조에 따라 피해 편차가 커 손해 여부와 무관하게 보상금이 지급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어 실손 보상의 기본 원칙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기후 데이터 축적과 리스크 분석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타당성 높은 기후보험 모델이 점차 시장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기후 정보 인프라를 강화하고 지역별 특성 및 산업 구조를 반영한 맞춤형 보장 체계를 구축할 경우 국내 기후보험 시장도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기술적·제도적 기반 확충과 함께 소비자 보호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기후위기의 영향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가운데, 기후보험협의체에서 개발 중인 상품들이 향후 다양한 기후보험 출시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객관적인 지표 개발과 그 적용 범위 역시 확대해 나가야할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