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디지털 콘텐츠' 구매했지만 내 것이 아닌 것들

사라질 수 있는 소장품, 디지털 무소유의 역설 온전한 디지털 소유권 이전까지는 아직 갈 길 멀어

2025-08-29     석주원 기자
석주원 산업2부 팀장

|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해 본 경험이 있다면 '내가 산 전자책은 내 것인가' '‘스팀’에서 구입한 게임은 영원히 즐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씩은 떠올려 봤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현재로선 ‘아니다’에 가깝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소비자는 ‘구매’라 믿었던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 유통 플랫폼들은 제품을 판매할 때 ‘대여’가 아닌 ‘소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소비자는 소장이라는 문구를 실물 제품을 소유하는 것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약관을 살펴보면 ‘소유권’이 아닌 해당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최대 인터넷서점인 예스24의 약관을 살펴보면 제8장 제19조의 6항에서 “이북(eBook)은 구매 후 승인된 회원ID로만 이용이 가능하고, 타ID로 사용권한을 양도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실물 서적을 구입했을 경우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되파는 것이 가능한 것과 대조되는 내용이다. 또한 서비스사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에어서만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소비자가 구매한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식에도 제한을 가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6월 예스24가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나흘간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을 때 소비자들은 구매했던 전자책들이 그대로 사라지지는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 서비스가 복구되면서 기존 서비스들을 정상적으로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됐지만 만약 정말로 서비스가 종료됐다면 어땠을까?

전자책 업계에서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여러 해 전부터 많은 논쟁과 연구가 있어 왔다. 이와 관련한 실제 사례도 있다. 국내 출판사 열린책들은 지난 2013년 ‘세계문학APP’이라는 전자책 플랫폼을 출시해 7년간 서비스를 이어갔지만 서비스 상황이 좋지 않자 2019년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당시 열린책들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판매했던 전자책을 다른 전자책 플랫폼으로 이관해 소비자가 구매한 책을 계속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물론 반대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급작스럽게 서비스를 철수한 웹툰 플랫폼 ‘피너툰’은 소비자들이 충전한 포인트는 전액 환불해 줬지만 소장 구매했던 웹툰에 대한 권리 이전이나 콘텐츠 제공은 진행하지 않아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피너툰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해당 플랫폼에서 구매했던 ‘소장 작품’은 더 이상 이용자 소유가 아니게 된 셈이다.

게임업계는 어떨까? 게임 전문 시장조사기업 뉴주(Newzoo)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게임 시장 규모 1843억달러(약 258조원) 중 디지털 게임의 비중은 95.4%인 1758억달러(약 24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실물 패키지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콘솔 플랫폼만을 한정해서 살펴봐도 디지털 게임의 비중은 84%에 달하고 있다.

사실상 디지털 중심으로 완전히 개편된 게임 시장에서도 소유권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실물 패키지만으로 게임을 즐기던 시절에는 게임 유통사가 사업을 접더라도 게임 패키지와 이를 구동할 수 있는 게임기 혹은 PC만 있으면 얼마든지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었다. 기계나 패키지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소장한 게임을 영원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된 요즘 시대에는 온라인 인증 없이는 싱글 게임도 즐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만약 게임 유통사가 사업을 정리해 온라인 인증이 불가능해진다면 더 이상 해당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서비스를 종료한 유비소프트의 ‘더 크루(The Crew)’의 경우 서비스 종료 후 싱글 플레이도 못하게 막히면서 디지털 게임의 소유권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디지털 상품 구매 시 완전한 소유권을 넘기지 않는다면 ‘구매(buy or purchase)’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스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약관을 개정해 이용자가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라이선스를 부여한다고 표시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콘텐츠의 구매가 온전한 소유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례는 해당 계정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도록 하는 약관으로 더욱 명확해진다. 실물 책이나 게임 패키지는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제3자에게 넘겨줄 수 있거나 후손에게 물려줄 수도 있지만 디지털 콘텐츠는 이러한 양도를 약관으로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외국의 한 이용자가 스팀 계정을 상속할 수 있을지 문의를 남겼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으로 가득한 디지털 책장이나 수백 혹은 수천개의 게임이 담긴 스팀 라이브러리를 바라보며 만족감을 느끼지만 정작 디지털 수집가들은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들의 이러한 운영 방침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법복제가 쉬운 디지털 콘텐츠의 특성상 자유로운 데이터 이동을 허용할 경우 큰 혼란이 발생하거나 시장 자체를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온라인 인증 절차를 도입하고 소유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재 디지털 유통의 기술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소비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꾸준히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명확한 기술이나 법제도가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가 ‘디지털콘텐츠이용계약법’을 도입해 서비스 중단 시 대체 제공·환급을 의무화하고 에스크로 시스템을 통해 이용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사업자 파산이나 자진 종료 시 제3자 서버로 콘텐츠를 이관하도록 규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술적·산업적 해결책도 병행해야 한다. DRM(디지털저작권관리) 없는 오프라인 백업 기능을 제공해 플랫폼 장애 시에도 콘텐츠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하고 블록체인 기반 탈중앙화 플랫폼이나 디지털 유산 상속제 도입을 통해 이용자 권리를 제도적으로 확장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이나 OTT 등의 구독 서비스는 어쩌면 디지털 시대에 더 잘 어울리는 콘텐츠 유통 방식일 수도 있다. 게임 분야에서도 구독제 서비스가 도입되고는 있지만 실물 콘텐츠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이용자들은 여전히 온전한 소유를 원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유통 구조는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소비 활동은 아직 온전히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디지털 시대는 우리의 생활 방식뿐 아니라 ‘소유’의 의미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맞춰 소비자가 안심하고 콘텐츠를 구매하고 영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소비자의 권리가 허상에 머물지 않고 진정한 디지털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