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속도·안정' 시동…서울시 규제 풀고, 국토부 공사비 기준 의무화

서울시·국토부, 정비사업 활성화 카드 재개발·재건축 시장은 '속도전 vs 안전' 기로에

2025-08-14     한나연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 연합뉴스

| 한스경제=한나연 기자 |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건설사들의 선별수주 기조와 중대재해 여파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실제 속도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1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13일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의 대상 지역과 높이 규제를 대폭 손질하는 것을 골자로 주택·건설 분야 규제 3건을 완화·폐지하기로 했다.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은 상업·공업지역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도심부의 도시 기능의 회복 및 환경 개선을 위해 시행하는 사업이다. 이번 규제 완화에는 창동·상계(동북권), 강남·잠실(동남권) 광역중심을 새로 사업 대상에 추가하는 것이 담겼다.

또 중심지 위계에 맞춰 높이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최고높이 제한은 없앴다. 영등포 도심은 기준 높이를 삭제했으며, 광역 중심 및 마포·공덕 지역은 기준 높이 150m로, 다른 지역 중심은 기준 높이 130m를 일괄 설정해 규제를 완화했다. 이를 통해 대규모·복합개발과 공공공간 확충을 유도하며, 노후 중심지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SH 신축약정 매입임대주택사업에서 사업자의 재정적 피해를 사전에 막고, 조경공사 원가 산정 시 물값·기계경비를 반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창현 서울시 규제혁신기획관은 "이번 규제 개선은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시민과 건설업계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도 11월부터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입찰 단계에서 '공사비 변동 기준'을 의무적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시공사 선정 이후 공사비 협상에서 갈등이 빈번했고, 이로 인해 공사·입주 지연 사례가 이어졌다. 앞으로는 시공사 입찰 시 사업참여제안서에 물가 변동 기준, 마감자재 규격·성능, 건설업자의 재무상태 및 시공능력 등을 사전에 기재하게 해, 조합이 입찰 단계에서 조건들을 비교·검증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공사비 검증 건수는 제도 도입 초기인 2019년에 3건에서, 지난해에는 36건으로 늘어 도입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최근 강북구 미아4-1구역, 대전 변동A구역 재개발 등의 사업장은 단 한 곳의 시공사도 입찰하지 않는 '무응찰'로 유찰되면서 시공사 선정 재추진에 나섰다. 인건비·자재비 상승,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 환경 악화로 사업성이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더해 최근 포스코이앤씨, DL건설 등에서 잇따른 중대재해가 발생하며 안전 리스크도 부각됐다. 포스코이앤씨는 전국 103개 현장, DL건설 모회사인 DL이앤씨는 80여개 현장의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이로 인해 해당 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 중인 사업지는 물론, 입찰 가능성이 있던 현장도 공정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정부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공공입찰 자격 박탈, 영업정지, 인허가 취소 등 강력 제재를 시사하면서, 조합들은 시공사 선정 시 사업 조건뿐 아니라 안전관리 역량과 신뢰도까지 평가에 포함하는 경향이 강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두 가지 시각이 엇갈린다.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이 병행되는 만큼 "하반기 정비사업 시장에 활력이 돌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안전 리스크와 시장 불확실성으로 "대규모 사업일수록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성수, 여의도, 압구정 재건축 등 하반기 시공사 선정을 앞둔 초대형 사업지도 '속도보다 안전'을 우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규제 개선이 속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건 맞지만, 최근의 중대재해와 사업성 저하로 조합과 건설사 모두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는 공사비와 브랜드뿐 아니라 안전관리 체계가 시공사 선정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