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ON:위험OFF] '산재 사망 근절‘ 외치지만 산업안전 비용은 ‘불투명’
중대재해처벌법 강화...기업 ESG정보 공개 비중있는 항목으로 떠올라 산업안전보건비 공개 움직임, 기업들의 속사정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기업 현장에는 구조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안전관리는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직결된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기획에서는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추진 중인 리스크 관리 체계, 스마트 안전시스템 도입 사례, 내부 조직문화 변화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개선 시도와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산재 사망 근절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 산업 현장의 실태와 변화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편집자주]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반복적으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을 강하게 질타하며 후진적 산업재해를 사회에서 영구히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PC, 포스코이앤씨 등 같은 기업에서 지속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 사고를 겨냥한 것이었다.
국내 산업현장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기업들은 안전보건관리비용 대폭 상승,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 위험성 평가와 인력 확대 등 실질적 시스템 재정비 등을 구축하며 안전 관리 시스템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산업안전보건 비용 내역이나 안전관리 투자현황의 별도 세부 내용에 대한 공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대기업의 ESG 보고서나 재무제표만 들여다봐도 산업안전보건 비용 내역 또는 안전관리 비용을 별도로 명확하게 공개하는 사례가 드물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예산 편성 및 집행의무를 강화했지만 구체적 비용 내역을 별도로 공개하도록 법률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의무화된 영역은 산업재해가 공표 대상이 될 때 사후적으로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실 및 원인’을 사회에 공개하도록 한 부분일 뿐, 사전적·상시적 비용내역 공개는 의무가 아니다. 공개 수준과 범위 역시 자율적이라 업종별·기업별로 차이가 크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각 사업부문별로 안전보건관리체계 및 안전보건 활동 투자, 사고 예방, 위험시설 개선 등 관련 투자 규모를 주요 지표로 공개했다. 다만 구체 금액은 여러 해에 걸친 총액 또는 지출 추이로 나타나며 세부 내역까지 모두 분리돼 있진 않다. 또한 보고서 내에서 삼성전자는 안전·보건 관련 투자를 '환경안전 투자'로 통합 공시하고 있다. 보호장구, 시설 보강, 교육, IoT·AI 인프라 투자, 비상대응 훈련 등 세부 내역까지 분류한 표는 외부 공개 보고서 기준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상기 환경안전 투자 규모(2024년 삼성전자 환경안전 투자 2조3488억원)에 대부분의 산업안전보건 관리비용이 포함돼 있다.
SK하이닉스도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산업안전보건 투자 및 활동 예산을 항목별로 공개하고 안전보건관리 실적, 리스크 관리 투자 등을 보고서를 통해 공개했다. 그러나 세부 항목별 금액은 전체 예산(예: 연간 안전보건 투자액 등) 위주로 제시되며 세목별 구체 금액 표시는 제한적이다.
LG전자는 생산사업장 RBA(Responsible Business Alliance) 관리 프로그램, ISO 45001 등 국제 안전보건 경영시스템 도입, 협력사 ESG 평가·교육 실행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 정책, 주요 활동 및 관리 목표 등을 투명하게 보고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 관리비용’이나 ‘안전관리비용’의 구체적 액수, 세부 비용 항목, 연도별 증감액 등 정량적 재무 수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2023-2024) 공개본에서 별도 표기로 공시되고 있지 않다. 안전·보건 교육, 인증, 심사 등 활동 투자 내용만 언급돼 있다.
2024년 재무제표(연결·별도손익계산서), 요약재무상태표, ESG 핵심 데이터 등 공개 자료 어디에서도 산업안전보건 관리비용 또는 안전관리비(직접적인 비용 총액, 세부 집행 내역) 계정이 별도로 구체적으로 구분·공시되지는 않는다. 재무상 '관리비', '기타 원가성 비용', 'ESG 관련 투자', '연구개발비' 등은 별도 항목으로 표기돼 있다.
현대자동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의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면 임직원 및 협력사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강화, 안전보건 관련 위험 및 비용에 대한 관리,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 중지·보상·재발방지 등을 위한 안전관리비용(예: 법적 준수, 작업환경·직원 안전 보장 비용 등)에 대해 중대성 평가와 비용 발생 가능성, 리스크·관리 전략 차원 등을 다루고 있다. 아쉬운 건 그 외 세부 비용이 일목요연하게 표로 명시되지는 않았고 안전보건에 투입되는 자원, 비용, 예방 활동 등이 기술적으로 표기돼있다.
이 밖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오토에버,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현대모비스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안전보건 경영·관리 체계 구축, 안전보건 교육훈련, 안전설비 도입 등 활동 기술과 함께 안전관리 관련 비용 내역을 범주별로 명시하거나 위험 인식·관리, 법적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보고서에 기재하지만 구체적인 금액까지 상세 분리 표기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대부분의 기업 재무제표에서는 안전보건 관련 비용이 '판매관리비' 또는 '기타경비' 등 포괄적인 계정에 포함돼 집계되며 별도의 '산업안전보건비' 혹은 '안전관리비'라는 계정명을 분리해 명시돼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 활동 내역을 공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도 사업장 안전보건 투자를 개략적으로 서술하거나 ‘예산 투입 확대’, ‘법적 리스크 케어’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고 대다수의 기업들이 회계상 계정 또는 주석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비용 내역을 왜 공개하지 않는가.
비용 공개 시 ▲법적 책임 부각 ▲경쟁사에 내부정보 노출 ▲투자자 신뢰 하락 ▲추가 비용 상승 압력 등이 우려되서다. 이러한 점들이 언론과 시민단체, 투자자 요청에도 정보를 미공개하는 이유다.
산업안전보건 비용 구조가 드러나면 경쟁사에 자사의 관리역량, 인력 배분, 투자성과 등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어 정보 공개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또한 공개 이후 안전비용이 적다고 비판받거나 일정 이상 높으면 오히려 현재 현장상황이 위험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만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및 사용기준’에 따라 예산 계상·이행이 의무화되어 있을 뿐 정부 역시 법상 ‘적정 수준의 안전보건관리비용’이나 인력, 시설, 장비의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지 않아 대다수 업종의 공개는 의무가 아닌 ‘자율’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기업 입장에선 굳이 리스크를 안고 공개를 할 이유는 없다.
특히 기업이 안전 예산을 충분히 썼음에도 사고가 발생하면 규탄과 처벌 대상으로만 부각된다는 현실적 목소리와 책임 회피, 비용 절감 유인이 공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투명하게 공개해도 ‘안전불감증 기업’이란 오명만 남는다는 볼멘소리도 크다.
안전 전문가에 따르면 “정부 당국의 대응 강화로 기업 현장 곳곳에서 산업안전보건관리와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노력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제 제대로 공개하고 수용해 책임지는 기업문화에 대한 사회적 담론 수준을 함께 올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형 산업안전 모델이 ‘근절 원년 선언’을 진정한 시작점으로 만들 수 있을지,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의 묵직한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