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 안정성 점검]① "믿었는데 날아갔다" 문 닫은 상조회사에 못 받은 돈 300억...선수금 10조 누가 지키나 [The SIGNAL]
2022~2024년 8월 사이 8개 상조社 폐업...못 돌려받은 돈 281억 상조회사와 보험회사 헷갈리는 경우 多 ‘보험업’ 금융위·금감원 vs ‘상조업’ 공정위...관리·감독 기관 달라 선수금 공시 의무 없어 ‘깜깜이 운용’ 지적...관련 법·규제 ‘허술’ 공정위 “거래 특성·거대해진 시장 규모에 리스크 여전...입법 추진 中”
지난해 위드라이프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폐업했다. 고객들은 부금의 50%는 거의 환급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50%는 날리게 된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상조는 생활 속 '필수 서비스'가 됐다. 상조업의 가파른 성장세 속에 폐업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규모도 동반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를 보호할 규제나 법안이 부족해 상조 가입 시 회사의 재무상태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상조회사들의 재무제표와 문제점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이채연 기자] 상조서비스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상조회사의 재무상태, 계약 구조나 환급 조건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가입한 소비자들이 과도한 위약금, 불완전 설명 등 피해를 입고 있다.
정상 영업 중인 상조회사의 수보다 망한 회사가 더 많을 정도로 부실기업이 많고, 소비자 피해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 피해를 막을 법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상조회사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등 관련 법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소비자 피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는 76개, 총 가입자 수는 960만명, 선수금은 10조3348억원이다. 상조회사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분류된다. 소비자가 장례·웨딩 등 서비스를 위해 일정 금액을 선납하고, 추후 서비스를 받는 구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상조서비스 관련 소비자 피해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년~2024년)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상조서비스 관련 상담 건수는 총 8987건이며, 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구제 건수는 총 477건이다.
아울러 민병덕 의원실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공받아 가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2024년 8월 사이 폐업한 상조회사는 총 8개이고, 2024년 8월 기준 소비자가 돌려받지 못한 보상금은 약 281억원이다.
또한 한국상조공제조합에서 지급한 피해 보상금만 해도 올해 6월까지 총 2511억원으로 집계됐다. 보상금은 할부거래법에 따라 납입 금액의 50%만 지급하기 때문에 그 피해액 또한 2511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며, 상조보증공제조합과 은행 보증까지 포함 시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76개 상조회사 중 58개 업체가 상조보증공제조합과 은행 보증을 이용하고 있다.
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상조회사는 상조 결합상품을 적금계약 및 사은품이라고 포장하거나 정수기 렌탈 계약이라고 마케팅하는 ‘불완전판매’가 늘고 있다. 특히 계약 해지 시 ‘사은품 가액’을 위약금으로 청구 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공정위 사례에 따르면, 실제로 한 소비자는 애플워치와 에어팟 프로를 사은품으로 준다는 광고를 보고 계약했지만, 알고 보니 상조 결합상품 계약(상조서비스 및 렌탈 계약)으로 200개월을 납입해야 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계약해제를 요구하자 전자제품 비용으로 300만원을 요구받기까지 했다.
한소원·공정위는 “상조 서비스에 가입하면 고가의 전자제품 등을 사은품으로 제공한다거나, 만기 되면 전액 환급되는 상품이라는 구두 설명만 믿고 가입했다가 계약을 해지할 때 위약금을 과하게 물리는 사례가 많다”며 소비자 주의를 당부했다.
◆상조회사는 보험회사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상조회사와 보험회사가 비슷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상조회사와 보험회사는 엄연히 다르다.
보험상품은 대수의 법칙과 수지상등의 원칙을 기반으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위험을 담보로 가입한 다수의 보험계약자가 갖고 있는 잠재적 위험을 집합시키고, 이 위험으로부터 유입된 보험료를 재원으로 한 명의 계약자에게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보다 많은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여기서 대수의 법칙은 관찰 대상인 표본의 수가 많을수록 통계적 추정치의 신뢰도가 향상된다는 법칙이다. 수지상등의 원칙은 미래에 수입될 보험료의 현재가치가 미래에 지출될 보험금의 현재가치와 일치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생명보험에서 보험료를 산출하는 기본 전제로 사용된다.
반면 상조상품은 약정된 상품에 대해 개별적으로 계약자가 지불한 금액에 상응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만을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보험은 일반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제공받지만, 상조상품은 해당 물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또 보험상품은 약관에서 정한 사건이 발생해 보험금을 수령하면 보험료 납입 의무가 사라지지만, 상조상품은 계약한 상품의 대금을 완납해야만 약정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만약 고객이 계약한 상조부금을 완납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 제공 요청 사유가 발생하면, 그 서비스를 받은 후 미납한 부금을 모두 납부해야한다.
아울러 상조업과 보험업은 관리·감독 기관도 서로 다르다. 보험업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상조업은 특수거래 분야로 분류돼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리·감독한다.
재무지표 규제도 다르다. 보험회사는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 등 자본비율 규제가 있다. 현재 금융당국에서 권고하는 킥스 비율은 130%이다. 이 수치에 미달하면 경영개선권고 등 당국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상조회사는 선수금 50% 예치, 최소 자본금 요건 15억원 이상 등의 규제만 있고, 이 외에 자본 규제가 없어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이 많다.
더불어 보험계약자는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금융기관별로 1인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보호를 받는다. 반대로 상조계약자는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할부거래법)에 의해 납입한 금액의 50%만 보호받고, 상조가 정말 필요하다면 ‘내 상조 그대로’라는 대안서비스를 이용해 약정한 상조상품의 100%에 해당하는 상조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보험상품은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출시되지만, 상조상품은 관리·감독 기관의 별도 심사를 거치지 않는다. 보험에 가입할 때는 성별, 연령, 건강 상태 등 다양한 요건에 따라 가입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상조상품은 제한요건이 없다.
◆관련 법은 ‘허술’...“도덕적 해이 방지 필요”
상조회사는 보험회사처럼 금융기관에 가깝지만 관련 법은 여전히 허술하다. 특히 자산운용, 자본비율 등 관리·감독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조회사는 보험회사처럼 고객들로부터 선수금을 받는다. 그러나 상조회사는 고객의 월 납입금을 활용해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데, 보험사와 달리 자금운용 규제가 사실상 없다. 할부거래법에 따라 선수금의 50%를 상조공제조합이나 은행에 보전하거나 보증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50%는 어디에 사용하든 제한이 없다.
이 때문에 ‘깜깜이 운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상조업계는 금융업계와 달리 정부가 정기적으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선수금에 대한 공시 의무도 전혀 없기 때문에 고객이 납입한 선수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일부 기업은 선수금을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대주주가 만든 펀드에 투자하거나 수백억원어치의 관계사 주식을 사들이기도 하고, 관계사에 돈을 빌려준 사례도 있다. 투기등급에 가까운 BBB- 자산에 투자하기도 한다.
일례로 지난 2020년 등록취소된 아산상조의 실소유주는 은행에 예치한 선수금을 빼돌리기 위해 2019년 1~10월 회원 444명의 명의해지신청서 522장을 허위 작성해 은행에 제출했다. 이 수법으로 회원들의 예치금 약 6억6000만원을 유용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회원관리시스템을 독자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본인이 대표로 있는 전산개발업체에 48억원 상당을 고객의 부금으로 지급한 사례도 있다.
또 선불식 할부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정부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는 ‘불완전 상조 결합 상품’ 판매도 성행하고 있다. 상조 서비스와 전자제품 계약이 별도로 체결되는 상조 결합 상품은 문제가 발생하면 선불식 할부거래법을 근거로 위반 행위를 판단한다. 문제는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전자제품 판매업자, 상조 영업사원의 책임이 상조회사보다 가벼워 불완전판매가 확인돼도 처벌이 어렵다.
이에 공정위는 상조업계의 불건전한 자산운용이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관련 규제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나윤경 공정위 특수거래정책과 사무관은 지난 1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900만 상조가입자 보호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선불식 할부거래라는 특성과 거대해진 시장 규모에 따른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며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 회의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제도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고,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도 지난 1월 “현행 할부거래법 체계로는 상조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업체가 계열회사나 오너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선수금을 저리로 대출하는 등의 문제를 막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직도 상조회사의 선수금 유용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현재 50%로 규정된 선수금 의무 예치 비율을 높이거나 나머지 선수금에 대한 투자처를 제한하는 두 가지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1월 토론회에서 규제는 업계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어 추가 논의를 통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업계의 반발보다는 소비자보호가 우선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