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반도체' 시장 열리는데...'한국형 반도체' 지원 방향은 [The SIGNAL]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 독보적 기술력...인공지능 반도체 주 공급자 나설 기회 한국, 반도체 제조 위주...설비 투자 집중하고 대출보다 직접 보조금 필요 미국 중심 반도체 가치 사슬...협력 체계 내 한국 전략적 위치 강화 지원
[한스경제=이호영 기자] 연평균 10조~20조원 신규 투자와 1년 단위의 기술 진화, 1등의 선순환 등을 지속적으로 겨냥해야 하는 반도체 생태계 특성과 글로벌 경쟁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의 반도체 산업엔 정부의 직접 보조금 형태의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덕파 고려대학교 교수는 2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국형 반도체 지원정책의 방향과 과제' 토론회에서 '반도체업 현황 및 정책 제언'을 통해 "한국은 전통적인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라며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인공지능 시대에 창출될 새로운 반도체 시장에서도 주요 공급자로서 참여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반도체산업은 부가가치 창출 1위, 수출 1위로 한국 제조업 중 가장 중요한 산업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제조업 수출의 22.3%, 약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라며 "글로벌 시장은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글로벌 정부 간 경쟁 심화, 중국 등 경쟁국 기술 추격이 격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정책 방향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지난해(2024년) 6월 약 26조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어 "부족한 비메모리 부분을 메워주거나 경쟁 우위가 있는 메모리 쪽을 더 지원해주거나 두 가지 중 하나일 텐데 최강대국끼리 경쟁하는 첫번째보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 완성이라는 경제안보 관점에서도 두번째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제조 위주이기 때문에 설비 투자에 지원해야 한다"며 "대출보다는 직접 보조금을 줘야 한다. 보조금일 때 투자수익률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했다.
무엇보다 김 교수는 "한국은 메모리 분야를 제외하면 자립적인 반도체 공급 능력이 부족하다. 반도체 경쟁력은 한국의 경제안보를 위한 중요한 전략적 자산인 셈"이라고도 했다. 이어 "글로벌 미중 패권 경쟁 가운데 한국은 HBM 등 메모리 분야 기술적 우위와 제조력을 기반으로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가치 사슬(칩스 4)을 이루고 있는데, 이 협력체계 내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1997년 36조원 규모(250억달러)에서 2023년 기준 약 864조원(6000억달러) 규모로 같은 기간 전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1.5배 가량 빠르게 성장해왔다. 시장 전망치를 보면 현재는 전통적인 메모리 분야가 이 HBM 분야보다 크지만 3~4년 내로 HBM 분야가 전통 메모리 분야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연평균 10%를 웃도는 24.9% 성장세로 새로운 반도체 시장으로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는 인공지능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로 인공지능 서버에 들어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이 일례다.
인공지능 서버는 대규모 작업 수행에 대용량 메모리가 필요해 통상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을 결합해 사용하게 되는데, HBM 시장을 이끄는 한국은 이 시장 공급망에서도 우위를 가져가리란 전망이다. 최근 각광받는 고대역폭 메모리에 한정하면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시장 98%를 점유한다. 현재 이 시장은 두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는 체계다.
김덕파 교수는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확대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등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현재의 국내총생산과 국세 수입을 감안할 때 정부가 GDP 1% 약 22조원 정도를 반도체 산업에 투입하면 추가적인 GDP 성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대략 5~6년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용한 데이터는 HBM이 크지 않았던 시기를 기반으로 추정한 것"이라며 "현재 HBM은 굉장히 고수익으로 시장이 잘 되면 회수시점은 2~3년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 매니징 디렉터 & 파트너도 직접 보조금 형태의 정부 지원책을 강조했다. 김 파트너는 "연간 투자비만 10조, 20조원인데 지원이 법인세로 가면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라며 "기업의 꾸준한 투자와 1등 달성 등을 돕겠다면 직접 보조금을 줘야 한다"고 봤다. 이어 "이 보조금은 해외 반도체 팹 유치, 해외 인재들을 국내 머무르도록 한다는 데도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반도체 산업의 첨단 제조 역량과 직결된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지원을 요청했다. 고 실장은 "일부 인프라는 수요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업이 직접 구축하고 비용과 인허가 지연 등 부담이 있었다"며 "글로벌 설비 투자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기업이 첨단 반도체 팹 구축에 집중하도록 산업 인프라의 공급 주체가 국가인 만큼 혁신 인프라 구축을 전담해 처리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