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에 봄오는 소리...전기차·셀·양극재 바닥 탈출 신호 [The SIGNAL]

미국·유럽 전기차 판매량 증가세 전환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수입 급감...우리 기업에 ‘기회’ 북미 ESS 시장도 기회 LG엔솔 잠정실적 ‘흑자전환’...한솔케미칼·에코프로비엠 실적 견조 예상

2025-04-23     신연수 기자
봄볕드는 이차전지 산업. / 연합뉴스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미국과 유럽의 전기차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배터리셀 대표업체인 LG엔솔의 1분기 실적도 기대치를 크게 상회하는 흑자를 달성했다. 중국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미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한국 이차전지 업계의 턴어라운드가 빨라질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전기차용 양극재 기업들도 적자 폭을 줄였고, 관련 기업의 실적도 턴어라운드 하면서 이제 바닥을 박차고 반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길었던 전기차 캐즘...실적·주가도 '하락'

전기차 시장은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길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차전지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성장 둔화는 높은 전기차 가격과 줄어드는 보조금, 트럼프 정부의 반(反)친환경 정책 기조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전기차 판매량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320만대로 급격히 증가한 후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2023년 1380만대까지 늘었다. 이후 2023년 하반기부터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캐즘이 시작됐다.

이 기간 업체들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022년 11월 62만90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는데, 전기차 캐즘이 본격화한 2023년 12월 42만7500원으로 1년 사이 주가가 32.05% 하락했다. 최근에는 31만원선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삼성SDI도 2021년 주가가 81만원으로 고점을 기록했지만, 이후 등락을 반복하다가 2023년 말 45만원 선으로 절반가량 떨어졌고, 에코프로비엠도 주가가 58만원에서 28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실적도 부진했다. LG엔솔은 2023년 매출액 33조7455억원, 영업이익 1조4864억원을 기록했는데, 전기차 캐즘이 길어지면서 2024년 매출액은 25조6196억원, 영업이익은 904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도 2023년부터 영업이익이 줄기 시작했다. 2023년 1조5455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이는 지난해 2734억원으로 1년 사이 무려 82.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 美·유럽 전기차 판매 ‘기지개’

그러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캐즘 흐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로 모션(Rho Motion)에 따르면, 1분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9% 늘어난 410만대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 판매량은 170만대로 2월보다 40% 많아졌다. 이 수치는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량을 합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본사 전경 / 사진=LG에너지솔루션, 김근현 기자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3월 미국 전기동력차 판매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시장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8.2% 증가한 15만3145대로 집계됐다. 이 중 순수전기차(BEV)는 11만5309대로, GM·스텔란티스·혼다·토요타·BMW·볼보 등의 판매 증가에 힘입어 전년 동월 대비 19.2% 늘었다.

유럽은 올해 초부터 3월까지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다. 폭스바겐의 ID.4, 폴스타3 등이 견고한 상승세를 보였다. 국가별로 보면 1분기 독일 전기차 시장은 37%, 이탈리아는 64% 성장했으며, 영국은 3월에만 10만 대가 넘는 전기차가 판매돼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량 성장세도 뚜렷했다. 현대차의 1분기 전기차 판매량은 1만6913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8% 증가했다. 지난해 말 출시된 캐스퍼 일렉트릭(유럽명 인스터)이 4518대 판매되며 성장세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별 양극재 수출액, 수출량 및 수출 가격 / 표=한화투자증권

◆ 中 배터리 수입 ‘급감’...양극재 수출량 증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양극재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산 배터리 수출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1~2월 전 세계적으로 등록된 전기차에 사용된 양극재 총적재량은 약 28만600t(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6% 성장했다. 특히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28.0% 증가한 10만9900t을 기록했다. 양극재 총적재량은 순수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하이브리드차에 사용된 양극재의 총량을 말한다.

삼원계 양극재 적재량은 12만82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하며 지속적인 확장세를 보였다. 리튬인산철(LFP) 시장의 총적재량은 15만2400t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90.4% 증가했다. 특히 전체 양극재 적재량 가운데 LFP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반이 넘는 54.3%로 시장 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가는 모습이다.

한국의 양극재 수출도 늘었다. 지난달 양극재 수출량은 1.9만t으로 전달 대비 8.1%, 전 분기 대비 11% 증가했고, 수출액은 2월보다 8.3% 늘어난 4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NCM 양극재 수출량은 전 분기보다 4%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NCA 양극재 수출량이 전 분기대비 무려 39%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한화투자증권은 “양극재 수출량이 늘어난 것은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미국 공장 가동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음극재 역시 비슷한 수준의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에 사용된 음극재 총적재량은 104만3000t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30% 늘어났다.

다만 리튬 가격은 하락세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흐름을 같이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리튬 가격 하락은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핵심 시장인 중국에서 관세 영향으로 수요가 위축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양극재의 원가 중 60~70%를 차지하는 핵심 원료다. 리튬 시세는 전기차 캐즘 여파로 지난 2022년 11월 571.45위안을 찍고 2년 만에 약 90% 급락했다. 양극재 판가는 판매 시점 당시의 광물 가격에 따라 결정된다. 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미리 저렴하게 구매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래깅 효과를 얻는다. 반면 가격이 급락할 경우, 반대 현상인 역래깅 효과로 손해를 입는다. 리튬 시세가 장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양극재 업계의 수익성을 떨어뜨린 역래깅 효과는 사라졌다.

반대로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수입은 급감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USITC) 무역 통계 분석 결과, 올해 1~2월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수입액은 2억8900만달러로, 전년 동기(3억8300만달러) 대비 24.4% 감소했다.

2월까지 미국의 전체 배터리 수입은 23.1% 늘었는데, 중국 외 한국·일본·폴란드 등 다른 나라로부터의 수입이 128%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 전체 수입액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68.8%에서 42.3%로 줄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펜타닐 불법 유입 등을 문제 삼으며 지난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에 10%씩 총 20%의 관세를 적용했다. 이후 34%의 상호관세가 발효됐다가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84%로 올리고 이후 다시 125%로 올렸다. 관세는 중첩되기 때문에 중국에 적용되는 관세율은 기존 20% 관세에 125%가 더해지면서 145%로 훌쩍 뛰었다.

당분간 중국산 배터리는 미국 시장에 발 붙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기업과 한국 기업의 미국 ESS 시장 배터리 인도량 비교표 / 표=IBK투자증권

◆ 美 ESS 시장도 우리 기업에 기회 될 수 있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중국 업체들이 장악해 온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도 우리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ESS는 생산된 전력을 저장해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다. 전력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을 위한 필수 인프라다. 특히 태양광, 풍력 등 간헐적인 재생에너지원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전력 댐’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ESS 시장은 2023년 185GWh(기가와트시)에서 지난해 301GWh로 1년 사이 62.7% 증가하며 고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IBK투자증권은 이차전지 시장에서 ESS 시장이 전기차 다음으로 중요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최근까지 미국 ESS 시장은 중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저렴한 LFP 배터리를 내세운 중국 기업의 ESS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지만, 국내 기업은 6%로 10%가 채 되지 않는다.

ESS는 고정된 장소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보다 가격, 안정성, 수명에서 장점이 있는 LFP가 삼원계보다 유리하다. IBK투자증권은 “LFP의 KWh당 가격은 60~70달러, 삼원계는 100달러로 추정되는 만큼,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을 견제하며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한국 업체 및 소재기업들에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면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보조금 45달러를 받아 삼원계 배터리의 KWh당 176달러에서 131달러로 중국산 수입 가격보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LG엔솔은 전기차 캐즘으로 잠시 쉬고 있는 생산라인은 ESS용으로 전환했고, 삼성SDI는 미국 최대 전력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에 ESS용 삼원계(NCA) 배터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SK온도 LFP소재 기반 ESS 개발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고, 조직 개편 등을 통해 사업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최근 배터리 업계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ESS 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정책 금융 제공 등 지원을 건의했으며, 정부는 관련 기관과 함께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차전지 기업들의 예상 잠정실적(LG엔솔은 1분기 잠정실적) / 표=신연수 기자

◆ LG엔솔, ‘어닝 서프라이즈’...‘볕들 날’ 오나

이렇게 전기차 시장이 다시 성장세를 보이면서 전방 산업과 이차전지 산업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잠정실적 공시를 통해 영업이익이 3747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흑자 전환했다고 밝혔다. 1분기 매출은 6조265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2.9% 감소했으나,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2.2% 증가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효과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AMPC 금액은 4577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21% 증가했다. 이를 제외하면 830억원 적자이지만, 지난 분기 AMPC 제외 적자(6028억원)보다 크게 개선된 수치다. AMPC 효과는 전기차 생산업체와 나눠갖는 구조이기 때문에 영업이익에서 세액공제를 전부 제거하고 영업수익성을 판단하는 것은 오류가 크다. 즉, AMPC가 없었더라도 흑자 전환했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얘기다.

LG엔솔 관계자는 “공장 가동률이 향상됐고, 투자와 생산에 대한 세액공제가 더해지면서 흑자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에코프로비엠도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온 중심의 재고 확충 효과로 판매량이 전 분기 대비 26% 증가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연간 영업이익 기준으로도 지난해 341억원 적자에서 올해는 803억원 흑자를 기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주 연구원은 “올해 전기차 시장은 미국보다 유럽 중심의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 포인트도 유럽 시장에 맞춰야 한다”며 “에코프로비엠의 유럽 판매 비중은 60% 내외로 추정돼 유럽 시장 회복에 따른 실적 개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한솔케미칼도 1분기 실적이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키움증권은 한솔케미칼의 1분기 매출액이 전 분기 대비 9% 증가한 2049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83% 급증한 41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대로 삼성SDI와 SK온은 1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에서 예상한 삼성SDI의 영업손실액은 3386억원이다. BMW 등 주요 고객사의 재고 조정 여파가 컸다. SK온도 고정비 부담과 판매 가격 하락 등으로 3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두 기업의 미국 내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IRA 수혜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조지아 공장 내 생산 라인 일부를 현대차그룹용으로 전환해 현대차그룹과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말부터 인디애나주에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이차전지는 전기차 캐즘으로 인해 주가 하락과 실적 부진이 길게 이어져 바닥을 쳤다. 올해 전기차 수요 회복과 미 정부의 중국 견제 반사이익 등에 힘입어 이차전지 기업들이 다시 뛰어오를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