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해수부 부산 이전”...부산·인천항 ‘기싸움’ 재점화
해운·물류 공공기관 이전·해사 전문법원 신설 공약 발표 부산 시민단체·항만물류업계 “해양 수도로서 지극히 당연” 인천 경제단체·항만업계 “해양물류 체계·정책 효율성 훼손”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고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를 대한민국 해양 수도로 만들겠다는 영남 지역 발전 공약을 밝히면서 부산항과 인천항 관련 업·단체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산시와 시민단체, 부산항 물류업계는 환영의 메시지를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반면 인천항 물류업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해양물류 기반의 약화와 지방분권의 취지를 훼손한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의 해양강국 도약과 현장 중심 정책 집행을 위해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면서 "해운·물류 관련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해사 전문법원도 신설해 해양 강국 기반을 탄탄히 다지겠다"고 발표했다.
이 후보는 "가덕도 신공항과 동남권 철도 사업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대륙철도 연결 기회를 더해 부·울·경을 융합 물류 중심지로 키우겠다"며 "쇄빙선 등 전용 선박 건조를 지원하는 한편 항로 최적화 연구와 물류 운송로 확보, 북극항로 비즈니스 모델 개발까지 북극항로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 연합은 21일 "이재명 후보가 발표한 공약은 부산시와 시민단체, 학계, 상공계 등을 비롯한 부산시민의 숙원 과제였다는 점에서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문제는 이전에도 여러 대선 후보가 유사한 공약을 약속했지만 당선되고 나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라며 "따라서 해수부 부산 이전, 해사 전문법원 부산 신설, 해운물류 관련 공공기관 이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 일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부산항발전협의회 등 지역 해운·항만·물류 관련 단체도 이날 성명을 내고 "현업 및 현장 부처인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등 타 부처에 분산된 조선, 물류, 해양플랜트 등 해양 관련 기능을 가진 더 강한 해수부가 부산으로 와야 설득력 있는 공약의 완성"이라고 덧붙였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대한민국의 해양 수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항에서 처리된 컨테이너 화물은 전년 대비 5.4% 증가한 244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에 달한다. 이같은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은 부산항이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항만뿐 아니라 해양 유관 기관도 현재 부산에 대부분 위치해 있다. 선원들을 양성하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과 한국해양대는 비롯해 한국선급,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선원복지고용센터,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이 모두 부산에 자리하고 있다.
10여년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리포트를 통해 해양 수도로서 부산이 갖고 있는 강점으로 ▲한국의 제 2도시이자 ▲우수한 해양 관련 인프라 및 업체 집적화 ▲국내 최대 해양연구 수요 및 공급처 ▲세계 6대 조선소 인접 ▲부산항의 지정학적 입지조건 등을 제시했다.
부산이 객관적인 요소에서 ‘해양 수도’로 기능하는데 별다른 흠결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부의 부산항을 제외한 인천, 울산, 광양항 등 국내 타 항만 개발 계획이나 정책 수립에서 이른바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인천 지역과 인천항 관련 업·단체에서 부산항 위주의 해운항만 정책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인천항발전협의회와 인천항만물류협회, 한중카페리협회 등 인천지역 항만업계 및 경제 시민단체 등 16개 단체는 이 후보의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이 발표된 이틀 후인 20일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날 발표된 공동 성명서에 따르면 해수부 부산 이전 사안은 특정 지역의 이해를 넘어 국가 전체의 해양물류 체계와 정책 효율성, 균형 발전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 결정인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인천항은 단순한 지역 항만이 아니라 수도권 2700만 인구와 수도권 산업단지를 잇는 수출입 물류의 핵심 거점으로서 대한민국 전체 물동량의 상당 비중을 담당하고 있다. 또 북중국과의 최단거리 물류 루트, 북극항로의 거점 확보 가능성 등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산항 못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후보의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은 지역 편중이며 지방분권의 본래 취지를 거스르는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지방분권의 취지가 행정기능의 ‘수도권 집중 해소’와 전국 단위의 균형 발전을 의미하는데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해양 관련 주요 기관과 인프라가 이미 집중된 부산·울산·경남에 또다시 권한을 몰아주는 행위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또 해수부는 인천항, 평택항, 여수항, 광양항과의 유기적 협업과 정책 조율을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부산으로의 물리적 이전은 인천항 뿐만 아니라 타 항만과의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물류현안 대응과 긴급 정책조율에 현저한 한계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천지역 사회와 인천항만 업계의 이러한 우려 섞인 불만은 1985년 수립된 정부의 부산항, 광양항 위주 개발 정책인 ‘투포트(Two Port)’ 정책에서 출발한다. 투포트 정책은 제4차 국토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기존의 부산항 외에 광양항을 동북아 물류 중심 항만으로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87년 광양항 1단계 개발사업 착공으로 본격 추진된 이 정책은 광양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2018년 정점을 찍은 후 계속해서 감소하며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정부가 중점 지원, 개발한 광양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15년 인천항에 추월당했다. 이후 인천항은 부산항에 이어 물동량 2위 자리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인천지역 사회와 인천항 유관 단체는 투포트 정책의 최대 희생양이 인천항이라고 주장한다. 인천항이 정부의 항만 개발과 항만배후부지의 조성 우선 순위에서 항상 부산, 광양항에 밀려났으며 역으로 항만배후부지 임대료는 부산, 광양항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수도권인 평택항보다 더 비싸 ‘임대료 높은 항만’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천항 관계자는 ”항만 개발 예산만 봐도 중앙 정부의 인천항 홀대는 드러난다“며 ”해수부의 3차 항만기본계획에 부산항은 4조3000억원의 예산을 배당받았지만 자력으로 물동량을 창출해 성장세를 보이며 광양항을 추월한 인천항은 1조8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입에서 나온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은 인천지역 해운항만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며 재점화됐다. 향후 해양 거버넌스를 둘러싼 인천, 부산지역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